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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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 또는 현실을 투영한 상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예술 장르입니다. 영화는 현실의 삶을 기반으로 존재하기에 영화 속 이야기는 우리 현실과 떨어질려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림, 영화, 드라마, 시, 문학, 음악 등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예술 형태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숨 쉬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은 예술가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제공하는 화수분입니다. 피카소나 달리 등이 아무리 초현실적인 예술을 한다고 해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예술에서는 이를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합니다.

  모든 예술은 현실을 투영한 재현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은 예술을 통해 즐기고 감동하며 다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이란 것이 우리 삶의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지 곧 현실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술가는 자기 생각을 표현할 때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도 있지만 이도 사진 같을 뿐이지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지는 못합니다. 예술은 예술가가 현실을 자신의 감정과 정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새롭게 구성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필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세계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게 완전한 진공상태의 가공도 아니죠. 예술의 세계는 현실을 가공했지만, 현실이 아닌 세계입니다. 재현된 세계입니다.

  예술의 재현(Representation)은 현실을 표현했지만, 완전한 현실이 아닙니다. 재현된 세계는 작가의 생각과 정신이라는 필터로 현실을 변형하고 왜곡함으로써 새로 구성된 세계입니다. 마치 우리의 기억이 완전한 현실을 내놓지 못하고 뇌를 거쳐 새로 "구성된" 현실을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도 예술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현실을 변형하고 왜곡하여 구성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영화에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한 다양한 다양한 장치가 있습니다. 기승전결의 흐름,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을 나타내는 대사, 한 인물이 가진 평면적 또는 다면적 성격, 그리고 현실보다 더 현실다운 연기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영화적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또는 웃기거나 감동적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승전결이라든지, 재구성한 빛, 영화 속의 여러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기승전결. 우리 일상에 그런 게 있나요?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후(사후)에 뒤돌아보면서 그 사건을 기승전결로 꾸밀 수는 있어도 어떤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 속에 기승전결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장면이 있을 뿐입니다. 배우가 그리는 인물의 성격은 어떤가요? 현실 속의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나 성격은 가히 스펙트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 때문에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을 영화 속에 그대로 복사해 붙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화 속에서 한 인물의 성격을 아무리 다면적으로 그린다고 해도 실제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다면적 인간을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승우, 김미숙 주연의 『말아톤(2005)』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죠. 특히 "장애"라는 말과 관련 있는 모든 사람에겐 더욱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입니다. 저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 영화를 보면서 몇몇 장면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중에 초원이가 지하철역에서 어떤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은 아직도 목에 걸린 가시입니다.

 우리는 장애를 규정하고, 사람에게 장애 딱지를 붙여 장애인이라 부릅니다. 그중에 제가 30년 이상 만나왔던 발달장애인. 많은 1반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을 "자라지 않는 아이", "영원한 한 살(또는 세 살)"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위 "장애 이해하기", 또는 "장애 체험"이라는 공식 비공식 연수나 교육을 통해 그렇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배우며 실제로 그렇게 대접합니다.

  약 7~8년 전에 우리 반 학생의 신변 처리 때문에 동료 교사와 한바탕 언쟁을 한 적 있습니다. 그이와는 아직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

남성 체육 교사가 학생과 체육관에서 수업하고 있었습니다. 여성 실무사가 함께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수업 중에 한 남학생이 똥을 쌌습니다. 그러자 체육 교사가 그 남학생의 신변 처리, 그러니까 옷을 벗기고 씻긴 후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여성 실무사에게 요청했습니다.

  나이 스물이 다 되어가는 남학생을 여성이 씻긴다는 게 가능한가요? 물론 교사와 실무사 모두 여성이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성 보호자가 없고 여성 보호자만 있다고 똥 싸서 혼자 처리하지도 못하는 학생을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요. 또는 여성 보호자가 신변처리를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아주 특별한 상황(그런 상황이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면 당연히 여성 보호자가 신변처리를 도와줘야죠.

하지만 엄연히 남성 보호자(남성 체육 교사)가 있는데, 여성 보호자가 입학 유예로 스무살이 다 된 남자 고등학생의 몸을 벗기고 성기를 포함한 아랫도리를 씻긴다는 게 있을 수 있나요? 만약 여학생이 똥을 쌌다면 남성 보호자가 그 여학생을 발가벗기고 씻겨줄 수 있나요? 1반 학교에서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아니, 어린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이의제기를 했더니 당시 체육 교사는 신변처리는 실무사의 일이고, 만약 자기가 신변처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남아있는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이의제기를 했을 때, 거의 대다수 교사는 체육 교사 편이었습니다. 신변처리는 당연히 실무사의 일이라는 거죠. 남학생이 바지에 똥을 싸면 남성 교사가 있더라도 여성 실무사가 뒤처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해당 교사는 심지어 제 이의제기가 명예훼손이라는 겁니다. 압도적 분위기와 학교장의 중재 때문에 저는 직원 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유감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특수교사와 실무사의 업무 범위 등 여러 논의 거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 비판의 핵심은 "특수교사든, 장애인 부모든 모든 1반인은 발달장애인을 '자라지 않는 아이'로 본다."는 것입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 "영원한 한 살(또는 세 살)". 1반인에게 발달장애인은 그런 존재입니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장애를 조금 느끼든, 많이 느끼든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으로 성장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곱 살 전후에 이갈이하고, 3세 정도에 언어의 폭발기를 지나 13세 정도에 언어 구조의 발달이 끝나며, 13세 전후에 호르몬의 변화로 사춘기를 겪으면서 신체 구조가 변합니다. 예외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인간의 자람을 '발달장애인'이란 이름표가 붙은 이들은 구차하게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발달장애인의 몸이 자라고 몸의 자람과 함께 그들의 심리적 상황이 변한다는 그 빤한 현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1반인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순간 인정하기도 하지만 1반인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아, 이 아이들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지!'라며 말입니다.


  『말아톤(2005)』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초원이는 왜 얼룩무늬 치마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을까요?

  저의 해석은 "모른다."입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이기 때문에 얼룩무늬에 심취해서 얼룩말을 만져보고 싶어서였는지, 성적 호기심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도 인간이며 인간 누구나 가진 성장 단계에 따라 발달한다는 걸 다시 생각합니다. 자폐 스펙트럼이든, 지적 장애든, 염색체 이상이든 사람은 누구나 성장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 시기가 되면 이차 성징이 나타나고 남성은 몽정하고, 여성은 생리를 시작합니다. 제가 30년 이상 만나온 학생들의 경험을 기준을 봤을 때, 신체적 성장과 더불어 성적(性的) 발달을 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인간의 발달이 이러한 걸 발달장애인이기에 이걸 또 증명해야 하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발달장애인은 인간이 아닌가?)

   감독이 구성한 『말아톤(2005)』의 세계에서 발달장애인 초원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심하게 느끼고 있어서 여성의 엉덩이를 단순히 얼룩말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그 여성과 애인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순수한 자폐 학생'인 초원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입니다. 이때, 감독은 평소 초원이 어머니의 말인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를 초원이가 외치게 함으로써 관객들을 감독이 구성한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감동적으로.

  말아톤의 세계관 속 초원이는 자폐 스펙트럼의 아주 "특별"한 아이이지만, 말도 하고 규칙이 있는 운동도 합니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의 아주 "특별"한 아이라서 특별히 얼룩말이 생각날 때만 순수한 한 살 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어떠한 성적 호기심이 없는 순수한 천사의 세계로 돌입하게 되지요. 하필 얼룩무늬만 보면.

  하지만 이는 감독이 구성한 새로운 세계일 뿐입니다. 만약 현실에서 우리 반 학생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저는 단언컨대 "그 행동은 성희롱이니까 절대 해서는 안 돼!!"라고 강력하게 제지할 겁니다. 그리고 그 여성에게 사과하게 할 겁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으로 말아톤의 초원이 정도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느끼는 학생이라면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전철 소리에 반응해서 전철을 보기 위해 선로로 뛰어가는 정도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느끼는 학생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초원이를 제지한 이후에 초원이를 때린 그 여성의 남자친구에게도 사과받을 겁입니다. 사과하지 않으면 법에 따른 제재를 받아야겠지요. 여하튼, 현실이라면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1반인들이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말 속에 '인권의 기본 생각'이 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도 사람이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정치인, 장애인 부모, 특수교사, 치료사, 장애 운동가 등 장애인을 둘러싼 1반인들이 "발달장애인은 영원한 아기"라는 생각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장애인권이란 말은 장사꾼의 장사수완 말고는 별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말짱 도루묵입니다.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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