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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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 대 중반까지도 세상 누구보다 잘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가득했죠. 그 무슨 근거라도 있는 자신감이었는지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다면 그때 하죠.^^

  여하튼, 이십~삼십 대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온 사람도 부럽지 않다는, 시쳇말로 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존심, 자신감, 자만심 모두 빵빵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와 다른 의견이 있으면 격렬히 토론을 붙어 깨버려야 속이 풀렸죠. 말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으니까요. 좋게 표현하면 줏대가 확실하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독선적이었습니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조금 기계적이었다고 할까…. 사십오 세 정도까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주관이 뚜렷했죠.

  그런데, 사십 대 중간이 꺾어질 무렵 어느 순간부터 ‘나 이외 다른 이의 세계’에 점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남성도 갱년기가 있다던데, 사십 대 중반부터 벌써 남성 갱년기에 여성호르몬이 풍부하게 분비되는지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 자꾸 찔끔거렸습니다.

 

  ‘나 이외의 다른 세계’를 안다는 건 무엇일까요? 나 이외 다른 세계를 안다는 건 결국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얕게 들여다보면 자신 이외에 ‘타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여도 그 껍데기만 보이죠. 하지만 자신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많은 사람, 다양한 환경이 보입니다. ‘타자’에 대한 깨달음은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가슴 울렁이는 공감을 일으키고, 이것은 외형적으로 눈물이 나거나 몸서리치게 만들죠.

  젊었을 때 그냥 머리로만 이해하던 ‘타자’는 나의 외벽에 말라붙은 매미 껍질 같은 거예요. ‘그’의 삶이나 이야기에 ‘나’의 마음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때, 그때 진정 ‘나’와 함께하는 ‘타자’를 이해하게 됩니다. 진정 사랑하게 되는 거죠. 

  올해는 최근 30년 만에 가장 어린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만나 자주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제가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미처 다 해주지 못한 이런저런 것들이 생각나면 더욱.

 

 계절은 가을. 아이들 교육 농사도 가을. 수확할 것이 얼마나 될지 설렘과 두려움의 계절입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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