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6.09.05 18:28

니는 지금 부장 안하나?

(*.247.18.75) 조회 수 4104 추천 수 44 댓글 0
며칠 전 대학 친구 놈에게 전화가 왔다. 함께 대학 4년을 보내고 지금 경남에서 벌써 15년째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건강하게 지낸다는 소식이 정겹고 교사로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이 반갑다.
다른 동기 아무개는 장학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 나이 정도면 이제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올라갈 때도 되었다는 이야기, 이번 특수교육정보화대회에 자기가 정보부장이라 서울 가니 한 번 보자는 이야기.
“니는 지금 부장 안하나?”
나는 이번 정보대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에 되묻는 친구의 말이 조금은 생소하게 들렸다.

부장교사.
벌써 아이들과 함께한지도 15년이다. 이 정도의 경력이 되면 많은 교사들이 부장도 하고, 연구학교도 해서 점수와 진급에 신경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점수와 진급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점수관리를 잘 해 진급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삶을 잘 관리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그럼에도 아직 어떤 삶이 바르고 행복한 삶인지 잘 몰라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부장교사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연초에 아내가 조금 아쉬워 한 일이 있었다. 2년간 해 오던 ‘정보부장’자리를 내 놓는다고 해서 생긴 일이다.
학년말에 올해 업무분장과 관련해 교감선생님께 올해는 부장교사를 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극구 만류하셨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정보부장’이 어려우면 다른 부 부장이라도 한다고 지원하지 그래.....”
교감선생님은 진심으로 부하 교사의 앞날을 걱정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마운 말씀이기는 하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이 들어 계속 평교사로 남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지금은 젊으니까 깨물고 때리며 달려드는 힘센 아이들 데리고 여러 활동도 하고 그렇지만 좀 나이가 들면 그것도 쉽지 않잖아.”
집에 들어와 올해부터는 부장교사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니 아내가 섭섭함을 말한다.
내심 부장도 하고(부장교사를 7년 동안 하면 부장 점수가 꽉 찬다. 교감이나 그 이상으로 진급하려면 학교장으로부터 평점도 중요하지만 딸 수 있는 점수-부장 7년, 대학원, 각종 연구점수, 자격증 등-는 다 따 놓는 것은 기본이다.) 대학원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그런 일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할 것 같다.
더구나, 아내가 봤을 때 남편은 늘 학교장과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 평점도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터이니
‘이 사람 평생 평교사로 늙겠구나......’
하는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걱정하는 것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벌써, 남을 때리고 깨무는 덩치 큰 아이들을 제지하다보면 힘이 부쳐 내심 겁이 나기도 하고, 우리사회에서 평생 평교사로 늙는다는 것은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테니까.
현실적으로 보면, 결과가 평가의 중심이 된 우리사회에서 평교사로 정년을 바라보는 사람은 약삭빠르지 못하고 우둔해 성공하지도 존경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지위로 인해 존경받을 뿐, 존경받음으로 지위에 오르기란 쉽지 않은 출세 지향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평교사가 좋다.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숨 쉬는 생활이 참 좋다.
어쩌면 사람들은 희노애락의 곡선(파동)을 그리며 살아갈 지도 모른다. 단지 그 폭과 깊이가 다를 뿐, 느끼는 삶의 애환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정신지체 정서장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들은 같은 표정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의미 없어 보이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몸은 자라지만 정신이나 마음 등은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마음이 자라는 모습도 그와 같으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자라는 모습도 일반 사람들의 그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자란다.
평교사가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보려고, 삶을 함께 나누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스스로의 마음과 정신도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몸을 부딪치며 함께 숨 쉬는 것이 때론 슬프고, 때론 아프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삶이 아닌가.
물론, 부장교사라고 해서 모두 아이들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장교사를 하면서도 진급에 관심을 두지 않고, 아이들의 삶에 열중하면서 조금 덜 경쟁적인 삶을 사는 이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부장교사를 2년 해 보니 그래도 아이들의 삶과 좀 더 밀접하게 접근해 있고, 아이들의 마음을 볼 여유를 더 가질 수 있는 것이 평교사임은 분명한 것 같다.

“니는 부장 안하나? 국립에 있으면 빨리 점수 받아서 나가야지.... ”
생소하게 들리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슈타이너학교처럼 학교장은 교사들이 그 교사집단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고, 이렇게 선출된 학교장은 학교를 대표하는 심부름꾼의 역할만 하는 형태라면...... 교장을 포함한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을 충분히 돌아보고 가르치는데 집중하는 제도라서 누구도 부장교사나 교장을 잘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면 모를까...... 아직은 부장교사 생각 없다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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