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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담(談)
2018.03.09 23:23

에티오피아 여행기-Timket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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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여행기-Timket Festival

 

비움, 여행의 시작

 

우리는 필연코 여러 사람과 만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갈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눈뜨면 만나는 가족이나 직장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설 때 만나는 이웃부터 직장에서 만나는 여러 동료, 퇴근길 만원 전철 속에서 서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까지, 타인이 있을 때 사람의 삶은 완성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이 타인들과 만남 속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은 사람 사회의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당연히, 나도 사람이니 아내와 자식, 직장 동료와 사회적 관계로 얽혀진 사람 등 저를 둘러싼 타인을 만나며 살아간다. 그냥 밋밋하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희로애락을 오가는 곡선 위의 배처럼 때론 사랑하고, 때론 으르렁대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상한 것을 본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견고하고 날카로우며 경계가 뚜렷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치자면 마치 커다란 그릇과 같다. 개인적 경험과 생각을 쌓아 올려 만들고,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커다란 그릇 말이다. 그런데 깊게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그릇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 경계를 세우고, 이를 견고히 하는 마음의 그릇을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고 이야기한 것은 가끔 자신 마음속 그릇의 내용만 고집하며 타인의 생각과 마음마저 자신의 그릇에 가두려 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이 자신이 가진 마음속 그릇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몹시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서로 자신이 가진 마음의 그릇으로 타인을 가두려 하고, 그것이 사회적 질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회는 사람의 사회가 아닌 짐승의 사회가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홉스(Hobbes, T.: 1588~1679)가 이야기했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발생할 것이고, 그 투쟁에서 승리한 힘센 이들이 타인을 지배하는 세상 말이다.

우리가 짐승의 사회에 살지 않고 좀 더 사람다움을 유지하고, 서로 존중받는 사람의 사회에 살기 위해 위해서는 내 마음속 그릇의 내용물을 조금씩 덜어내야 한다. 그러면 비워진 마음속 그릇속으로 타인의 마음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나의 마음은 더 풍부하고 아름답게 변화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는 것이다.

자신 마음속 그릇을 비우고 타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공자(孔子:BC 552BC 479)가 자공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慾勿施於人)”이란 말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 마음속 그릇의 기준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폭력이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 마음속 그릇을 인정하면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강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 그릇을 꽉 채우기보다 어느 정도 비워 두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빈 부분은 타인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

국가와 국가 문화와 문화 사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사회(나라)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회는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다른 배경과 문화를 접하면서 무작정 기존 자신이 가졌던 문화의 그릇에 담으려 한다면 존중과 존경보다는 멸시와 차별이 남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문화의 경계를 헐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타 문화를 위해 배려할 때 자신의 문화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더 커지고 내용은 풍부해진다.

이렇듯 마음속 그릇의 일정 부분을 비우는 것이 여행의 시작점이다. 비우고 시작하는 여행은 타인의 마음을 담고 그 크기를 조금씩 키우며 좀 더 풍부하게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타국의 문화를 만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우연히 시작된 에티오피아 여행

 

지난 1, 우리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가족이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Cape Town), 볼더스 비치(Boulders Beach), 크루거 파크(Kruger National Park) 등과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 등을 여행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항공(Ethiopian Airlines)’에서 케이프타운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매하고 며칠 후에 항공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용은 116일 에티오피아를 거치는 승객 중에 18일 시작하는 ‘Timket Festival’에 참석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18~19일 양일간 이루어지는 ‘Timket Festival’에 참석하면 날짜 변경과 Stopover 비용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전화했더니, 17일부터 20일까지 34일간 4인 가족의 여행비용이 946달러 정도라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했다. 그렇지 않아도 커피의 나라라고 알려진 에티오피아를 한 번쯤 가보고 싶었고, 계획했던 여행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잠비아 외에 다른 아프리카 나라도 가보고 싶던 차였다. 게다가 ‘Festival’이라고 하니 뭔가 재미가 더해질 것 같아 ‘Timket Festival’에 참석하기로 했다.

원래 우리 가족의 일정은 17일에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 도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Timket Festival’이 열리는 18~19일과는 일정이 딱 맞지 않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항공사에서 17일과 20일 숙소 등도 배려해 주어서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출발 전에 미리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짐도 꾸리고, 인터넷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기후, 아디스아바바의 맛집, 커피 전문점, 문화시설 등을 알아보는 등 여러 준비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116일 두 번째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2050, 홍콩 경우 아디스아바바행 비행기로 오르려는데, 에티오피아 항공(Ethiopian Airlines)OOO 이사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깜짝 놀랐다. 게다가 좌석도 좀 더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비상구 쪽 가장 앞자리를 배정해 주셨기에 무척 감사하기도 했다. 놀람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는 ‘Timket Festival’이 에티오피아에서 중요하고 큰 행사일 것이라 짐작하게 되었다.

1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여행할 때는 홍콩을 거쳐 남아프리카 항공(South African Airways)’을 타고 갔는데, 당시 항공기보다 에티오피아 항공(Ethiopian Airlines)의 항공기는 비교적 신형인 듯 보였다. 개인 좌석에 USB 포트도 다 설치되어 있고, 스크린도 깔끔했으며, 좌석도 비교적 넓어 보였다. 다만, 청결 상태는 아주 아쉬웠다. 항공기 내에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아이들이 놀랄 정도로.

타 국적의 항공기라 기내식이 우리 입맛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나와 큰아들은 비교적 잘 먹었다. 특히 기내식과 더불어 나오는 맥주는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1620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 0615분에 아디스아바바의 볼레(Bole) 공항에 도착했다. 6시간의 시차를 고려하면 13시간 이상의 비행이다. 참 멀고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시내 관광-17, 에티오피아 여행 첫날

 

아디스아바바에 도착, 호텔 셔틀을 기다리면서 잠시 환전을 했다. 공항 입구 주변에서 환전해 준다는 사람이 있어서 달러를 현지 화폐인 비르로 환전을 했는데, 생각보다 후하게 환전을 해 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개인에게 환전하면 나중에 현지 화폐가 남을 때, 다시 달러 등으로 환전할 수 없었다. 남는 현지 화폐를 달러 등으로 환전하려면 처음에 달러를 현지 화폐로 환전한 영수증이 필요했다. 짐작건대, 아마 현지 화폐의 신뢰도가 에티오피아 정부가 생각하기에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인을 통해 환전했다면 반드시 현금을 다 쓰고 귀국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셔틀 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디스아바바의 “Bole Ambassador Hotel”.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숙소 정보를 봤더니 Ambassador 호텔 체인은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서울 장충동에 있는 Ambassador 호텔의 행사에 몇 번 참석해 봤기 때문에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빗나가기 일쑤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후미진 곳이었고 몹시 쌀쌀한 데다, 화장실이나 침실 천정에 곰팡이가 끼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샤워기가 잘 작동하지 않고, 문틀이 떨어져 나가고 벽은 갈라졌으며, 출입문 손잡이는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에티오피아의 가장 큰 항공사에서 준비한 호텔이어서 그 실망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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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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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출입문>

 

호텔 Reception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방을 바꿔 달라고 부탁했으나 우리를 맞은 직원은 그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 방도 샤워기가 망가지고 좀 허술해 보이긴 했지만, 햇볕이 잘 들어 따듯하고 그나마 좀 더 좋아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 방에서 네 가족이 자야겠다.’라는 생각에 더 이상의 방 바꾸기는 포기했다.

이래저래 호텔 체크인을 끝내고 잠시 아이들 방에서 잠시 쉬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쳐있던 차에 약 두 시간 정도 쉬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Timket Festival은 다음날(18)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 첫날(17)은 가족끼리 시내 관광을 했다.

호텔을 통해 택시를 불러 타고 시내 관광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1인당 100달러를 요구했다. 하지만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4인 가족 100달러로 조정해 주었다. 결과적으로는 125달러를 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4시간 시내 관광에 125달러는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면 좀 더 나은 조건의 여행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우리가 원하는 여행 장소를 이야기했다.

가장 맛있고 유명한 전통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장 오래된 교회, 국립 박물관, 가장 맛있고 유명한 커피 전문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시장

처음 우리가 찾은 곳은 ‘2000 Habesha cultural restaurant’라는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에티오피아의 대표적 전통음식을 먹었는데, 마치 메밀로만 부친 전과 같은 인제라위에 다양한 고명과 소스를 얹어 먹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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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전통음식 인제라>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과 세제를 주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맨손으로 인제라를 뜯어 먹기 때문이다. 인제라의 맛이 약간 시큼하다. 발효식품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양한 고명을 얹어 먹기 때문에 영양소를 골고루 먹을 수 있고, 먹고 나서 소화도 잘 되어서 훌륭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다양한 향료에 익숙지 못한 사람은 자주 먹기 힘들 듯했다.

식사 후 우리가 들른 곳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본산인 트리니티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 이었다. 트리니티 대성당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두 가지의 키워드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나는 에티오피아의 종교분포다. 우리를 안내한 택시 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약 70% 이상의 국민이 정교회를 믿으며, 25% 정도가 이슬람교, 나머지는 민속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종교분포를 이야기하면서 택시 기사가 몇 번이고 강조했던 것은 ‘Peace!’였다. 종교가 다르지만, 에티오피아 국민은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이야기, 에티오피아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에티오피아에 도착해서 만나는 사람을 보면서 가지는 첫 느낌은 순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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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대성당>

 

트리니티 대성당을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한국전쟁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알다시피, 1950년 북한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이때, 세계 16개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파병하게 되는데, 그 참전국 중 에티오피아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파병국 중 열두 번째로 많은 3,518명을 파병했고, 그중 121명이 전사했으며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젊은이가 타국에서 피를 흘린 것이다.

트리니티 대성당과 한국전쟁이 관련 있는 것은 트리니티 대성당 지하에 한국전쟁 때 전사한 121명의 전사자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대성당을 안내했던 가이드는 한국전쟁에서 에티오피아의 참전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에티오피아와 형제의 나라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택시 기사도 한국에 대해 자주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전쟁을 돕기 위해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되어 일어나기 어려워 보였을 것 같은 나라. 그 나라가 이제는 세계 무역량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국민이 한국을 봤을 때 뿌듯함과 함께 부러움도 느끼지 않을까.

가이드와 함께 트리니티 대성당을 둘러보면서 에티오피아도 좀 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가 성숙하여 더 많은 국민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장, 그리고 이제는 문화에서 세계적 한류까지 이뤄낸 우리나라 사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트리니티 대성당을 둘러본 후, 우리는 에티오피아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 박물관이기에 우리나라의 그것을 생각했는데, 실제 본 아디스아바바의 국립 박물관은 큰 대학의 부설 박물관 정도의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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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국립 박물관>

 

아디스아바바의 국립박물관은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루시의 화석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정확히는 지상 2, 로비, 지하 1)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층마다 에티오피아의 민속이나 역사와 관련된 유물, 그리고 일부 현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인류 최초의 화석이라 불리는 루시는 지하 1층 선사시대와 관련된 곳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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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모형인 듯>

 

트리니티 대성당이나 국립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다.

먼저 좋았던 점은 에티오피아는 훌륭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과 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국립 박물관에서 본 선사시대의 여러 유물 특히, ‘루시같은 경우 한 층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을 통째로 사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해도 좋을 듯했다. 반면,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좋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관리가 허술하고 빈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한국사회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전시해 놓은 유물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고정한 것을 보고 가족들이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국립 박물관을 떠나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맛있고 유명한 커피 전문점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던 아내는 토모카 커피(Tomoca café)라는 곳이 가장 유명하다고 했고, 택시 기사 또한 그렇다고 하기에 커피점 토모카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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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카 커피 입구>

토모카는 유명세와 비교하면 외관이 매우 허름했다. 입구는 문을 여닫을 필요 없이 개방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입식 테이블 두세 개 있고, 왼쪽에 계산대와 진열대, 커피 가는 곳, 그리고 정면에 커피를 내리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토모카를 나갈 때 출입구 상단을 보면, 'When you drink a cup of coffee ideas come in marching like an army'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걸려 있다. 토모카 커피도 체인점인 듯한데, 우리가 찾아간 곳은 ‘Wawel’ 거리에 있는 토모카 커피였다.

토모카의 커피 맛은 여행 후 석 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그 향과 맛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더 매력적인 것은 그 매력적인 맛에 비교해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커피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0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토모카 커피까지 구경한 후 전통시장이라고 하는 곳을 들렀는데,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는지, 택시 기사가 대로변에 있는 허름한 옷 가게로 우리를 안내했다. 특별하게 볼 물건들도 없고, 여행 첫날이라 피곤이 몰려와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Reception에 들러 방의 상태를 이야기한 후 다른 방으로 바꿔 줄 수 있겠느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마침 나를 맞이한 직원은 아침에 남는 방이 없다.’라며 딱 잘라 말하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 이 직원은 방을 확인한 후 다른 방으로 바꿔 주겠다며 또 다른 직원을 불러 방 상태를 점검하게 하였다. 한참 방 상태를 점검한 후 마침내 방을 바꿔주겠다며 다른 방을 보여주었다. 아침에 배정받은 방의 상태가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는 따듯한 방 분위기를 보자마자 더 따지지도 않고 그 방을 선택했다.

 

Timket eve 18, 에티오피아 여행 둘째 날

 

Timket Festival

처음 ‘Timket Festival’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Timket Festival’을 에티오피아에서는 ‘ET holiday’라고도 불렀는데, 기독교에서 예수가 당신의 신성(神性)을 일반 대중에 드러낸다는 뜻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 ‘주현절’, 또는 공현절로도 불린다. 다만,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 기독교 분파마다 그 시기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종파에서는 동방박사가 예수를 찾은 때로 보기도 하고, 어떤 종파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때로 보기도 한다. 70% 정도가 정교회를 믿는 에티오피아에서는 후자를 주현절로 본다. 정교회의 주현절인 19일이 바로 ‘Timket Festival’인 것이다. 따라서, 19일 주현절 당일에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처럼 물로 세례를 받기 위해 많은 군중이 몰린다.

에티오피아에 온 지 둘째 날. ‘Timket Festival’ 전날이다. 아침에 식사를 끝내고 혹시 항공사에서 Timket Festival 관련해서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Timket Festival’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9시가 다 되어도 소식이 없기에 호텔 로비로 내려가 물어봤더니 벌써 사람이 호텔 강당에 모여 사전 안내(Orientation) 중이라고 한다. 허겁지겁 호텔 강당으로 갔더니 항공사 직원 및 여행사 관계자들이 여행자들을 모아놓고 사전 안내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행사가 진행되는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아무런 안내도 없었는데, 이렇게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평소 한국에서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행사를 진행하면 사전에 일정을 나눠주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데, 행사 시작을 모를 정도로 안내가 없다니....’

한국의 문화와 비교해보니 무척 허술한 것 같아 일순간 짜증이 올라왔지만 이후 행사에 참여하면서 그런 짜증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처럼 어떤 일의 진행이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사 직원이나 여행 가이드 등 진행하는 사람 모두가 친절하고 최선을 다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일찍 일정이라도 알려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사전 안내가 끝내고 오전에는 버스 두 대로 나눠 탄 사람이 시내 관광을 했다. 그런데 관광 장소가 트리니티 대성당과 국립 박물관이었다. 행사의 내용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제(17)의 가족 시내 관광은 오늘(18)의 행사와 달리 계획했을 텐데, 행사 내용을 미리 알지 못하는 바람에 겹치게 된 것이었다. 출발할 때는 시내 관광이 어제의 일정과 겹쳐 조금 아쉬웠지만, 두 번째 방문해 보니 더 여유롭고 친근하게, 그리고 더 자세히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아쉬움이 금세 사라졌다. 트리니티 대성당에서는 놀러 나온 어린이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나름대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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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따라다니던 어린이>

 

이틀간 아디스아바바를 여행해보니 에티오피아 사람의 외모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 사람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에티오피아 사람은 보통 두상이 크고 동글동글하며 다리가 길어 몸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보였다. 실제 키는 큰 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볼 때는 다리가 쭉 빠진 것이 제법 커 보였다. 큰아들의 표현을 빌자면 미인’, ‘미남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오후엔 Timket eve 행사를 관람하였다. Timket eve에는 예수를 찾는 동방박사를 재현한 듯한 모습 등 다양한 종교적 상황을 표현하는 행진이 펼쳐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행진에 참여한 사람이나 주변에서 그 행진을 따라가는 사람 모두 노래(아마 정교회의 찬송가인 듯해 보였다.)를 하고 손뼉을 치면서 지나가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또한, 경찰들이 나와 질서유지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행사에 참여하고 즐기는 사람들 모두 자발적 힘으로 질서를 지키며 안전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Timket 행사에 참여하는 이 순간, “경제적 비교의 관점으로만 보았을 때 우리보다 나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에티오피아 사람이 행복 비교의 관점에서는 좀 더 나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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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ket eve 행사에 나온 시민>

 

우리가 한참 동안 Timket eve 행사를 보면서 그 광경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에티오피아 사람 한 명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누굴까?’하고 의아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5년 이상 생활한 외국인처럼 한국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자기는 대학생이고,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 드라마 등을 보면서 한국말을 배웠다고 한다. 친구들과 Timket eve 행사에 참여했다가 우리를 한국인인 줄 알아보고 실제 말을 걸어봤다는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이 대학생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에서 만나는 대부분 사람은 한국과 한국 사람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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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했던 대학생과 친구들>

 

Timket Festival 19, 에티오피아 여행 셋째 날

 

드디어 오늘은 ‘Timket Festival’ 본 행사가 있는 날이다. 어제(18)도 그랬듯이 오늘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도 가이드의 첫 이야기는 소지품 등을 조심하고, 길 잃지 않도록 가이드를 잘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행사에서는 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타국인지라 약간 긴장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훨씬 안전한 행사였다.

행사장으로 이동하면서 보니 어제보다 훨씬 많은 거리에서 차량통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탄 차량은 비표가 있어서 왕래할 수 있었다. ‘Timket Festival’이 국가적으로 큰 행사이고, ‘에티오피아 항공사에서 준비한 이번 패키지가 특별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대의 버스를 나눠 탄 ‘Timket Festival’ 패키지 참석자들은 행사장 근처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보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행사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행사장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깜짝 놀라고 다소 긴장해야 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수천 명 이상 되어 보이는데(실제는 수만 명일 수도 있음.), 출입구는 차 한 대 들어갈 수 있는 폭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좁은 출입구로 모여들어서 혹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살짝 올라오기도 했다.

좁은 출입구에서 거의 떠밀리다시피 해서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마치 축구장 네다섯 개 정도의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이 ‘Timket Festival’을 진행하는 본 행사장이었다. 공터를 가로질러 10여 분 정도 더 이동한 후에야 주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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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ket Festival’ 행사장이었던 공터>

 

주 행사장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동상이 있는 작은 건물을 중심으로 축구장 하나 반 정도의 크기를 줄로 둘러쳐 있었다. 그리고 그 줄을 따라 주 행사장 주위에는 경찰들이 둘러서서 일반 시민의 접근을 막으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행사장 중앙에는 3m 정도의 주 단상과 좌우로 1.5m 보조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각 10여 평의 넓이에 의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주 단상에는 종교 지도자나 국가 지도자 등이 자리 잡은 듯해 보였고, 보조 단상에는 에티오피아 항공의 ‘Timket Festival’ 패키지 참석자 등 초대된 사람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보조 단상 옆 평지에도 천막을 치고 의자를 나열해 놨는데, 그곳에도 초대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중앙의 단상 주위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어 단상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목에 걸린 명찰을 보면서 출입을 통제했다. 우리는 행사 오리엔테이션 때 나눠 준 목걸이 명찰이 있어서 주 단상을 제외한 모든 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Timket Festival’을 관람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행사 주최 측에서 많은 준비와 배려를 해 준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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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최 측에서 나눠 준 Timket Festival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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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받는 예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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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모습>

 

세례받는 예수 동상 뒤편에서는 예수의 세례를 재현하듯 대용량의 성수가 뿌려졌는데, 그 성수를 몸으로 맞거나 물통으로 받아가려고 아이에서 노인까지 많은 시민이 몰려들었다. 종교적 의미가 큰 성수인지 많은 사람이 서로 성수를 맞으려 하였고, 성수를 맞으면서 너무나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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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를 맞는 시민>

 

약 두 시간 정도 진행된 ‘Timket Festival’과 여기에 즐겁게 참여하는 에티오피아의 여러 시민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에티오피아 사람의 긍정성이다. 어린아이나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그리고 남녀 불문하고 많은 시민이 Timket에 자율적이고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은 에티오피아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Timket Festival’의 발전 가능성이다. 현재는 단순한 종교행사로서 ‘Timket Festival’이지만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홍보하고 준비한다면 자신들이 가진 전통문화를 세계적으로 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행사를 위해 따가운 햇볕 아래 너무 오래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이나, 어수선한 행사 진행, 너무 좁은 행사장 진입로로 인한 사고 위험 등 에티오피아 정부의 좀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더불어, 행사 후 엄청나게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면서 시민의식이 좀 더 고양되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오전 ‘Timket Festival’과 오후의 휴식시간을 마친 후 에티오피아의 전통 식당에서 그들의 전통 예술을 감상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음악은 같은 코드를 반복하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따라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예술을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춤이었다.(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지 못해 참 아쉬웠다.^^) 예술가들은 동물 사냥 내용을 표현하는 듯하거나 경작을 하는 듯한 내용의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동작이 어깨나 목, 허리 등을 너무나 격렬하게 흔드는 것이어서 혹시 다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저녁 식사를 위해 전통식당에 온 에티오피아 시민은 익숙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연을 관람하던 다른 사람도 하나둘씩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매우 흥겹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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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 활동을 표현하는 듯한 춤>

 

Timket Festival 20, 에티오피아 여행 마지막 날

 

어제의 에티오피아 전통식사와 민속공연을 끝으로 ‘Timket Festival’ 패키지여행을 모두 끝내고 오늘은 아침 일찍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디스아바바 여행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여행지인 케이프타운으로 떠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과 여행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비워야 담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우리는 비우기보다 채우는 데만 더 열중하며 삶을 살아간다. 비우지 않고 꾸역꾸역 채우기만 하다 보면, 그것과 비례하여 더 타인들에게서 멀어지고, 타인들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삶은 사람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진다.

비움은 아름다운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고 행복한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그 크기만큼 타인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기에, 사랑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남은 삶이나 여행도 조금씩 더 비워가며 사람을 만나야겠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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