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책인 『공중부양의 인문학』이 출간된지 보름이 다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장애를 극심하게 느끼는 학생들,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왜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궁긍해하는 분도 있었다. 굳이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인 건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가 장애를 많이 느끼든, 조금 느끼든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극심하게 많이 느끼는 사람과 장애를 조금 느끼는 사람을 '과학적'으로 분류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 분류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눈다.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눈 후, 장애인에게는 그에 따른 적절한(또는 '적절하다고 여기는') 배려와 각종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실상 곰곰히 들여다보면, 이는 종종 친절을 뒤집어쓴 '웃는 차별'로 변한다. 우리 삶이 차이를 차별화시키고, 그 차별에 '친절한 차이'라는 표식을 남기지 못하도록 극단적 과학과 신화의 영역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은 신화를 신적인 것, 또는 미신으로 치부한다. 과학이 그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과학적이고 체계적·조직적인 '친절한 차별'에 작은 균열이라고 내고 싶은 마음에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다. 앎을 아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는 마뚜라나의 이야기에 힘 입어 '인문학'의 이름으로 과학적이고 친절한 차별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보려 했다.
『공중부양의 인문학』을 쓰기 위해 좋은 책들을 많이 참고하고, 인용했다. 이것들을 모두 참고문헌으로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발매가 된 이후에야 아쉬움이 올라온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공중부양의 인문학』을 읽은 독자의 이해를 좀 더 넓히기 위해 참고한 책 중 몇 권을 수 주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 첫째,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기제와 우리의 인식능력에 대한 물음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
- 둘째, 우리가―사랑을 바탕으로―타인들과 함께 산출한 세계만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이며 따라서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 (p15)
양립할 수 있는 한, 환경과 개체는 서로 섭동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상태변화를 유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이 처음 생겨난 뒤 수백만 년 동안 세포들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산소를 퍼뜨려 지구 대기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런 역사의 결과로 오늘날 산소는 애기 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대기 안에 산소가 있게 됨에 따라 여러 종의 생물들 가운데에서 구조변이들이 '선택'되어 산소호흡으로 살아가는 형태들이 계통발생을 거쳐 생겨났다. 이처럼 구조접속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유기체와 환경 모두가 변화를 겪는다.(p120)
<그림 1. 진화나무>
마뚜라나와 발레라의 자연'표류'에 의한 진화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그림 2 생물들의 자연표류에 대한 '물방울 비유'>
이 그림은 물방울들이 산에서 다양하게 자연적으로 표류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표류는 물방울들이 불규칙한 바닥과 바람과 그 밖의 모든 요인들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 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계통들의 진화는 유기체들과 그것들에 의해 정의된 그것들의 환경(적소 Nische) 사이의 구조접속이 어던 경로를 따라 보존되는가에 달렸다.
자연표류에서는 '더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을' 뿐이다. 적응은 필요조건의 문제이며 그것을충족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서평을 쓰면서 책 한권의 내용을 다 쓸 테세다. 진화에 대한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이들에 의하면 진화란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그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면서 실 한 가닥, 깡통 하나, 못 하나, 돌 한 개 등을 주웠다. 그리고 그것들의 구조와 주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들을 합친다. 그가 그렇게 합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계획도 없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가운데 생겨났을 뿐이다. 우리 모두도 이와 같이 생겨났다.(p135)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상당히 수동적이다. 유기체가 아닌 자연(또는 환경)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면 마뚜라나와 바렐라가 이야기하는 자연표류에 의한 진화는 상대적으로 유기체의 주체성이 느껴진다.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접속에 의한 진화이니 말이다. 이를 사람의 삶에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그 환경 속을 살아가는 유기체인 우리 인간의 상호접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뿐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우리는 이 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