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과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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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이라는 주제로 작년 6월에 열린 "2010 교육철학 국제 학술대회" 자료집 속의 글들입니다. 참고하세요.
아래 글은 첫번째로 기조강연입니다.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과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
목 영 해(교육철학회장, 신라대학교)
1. 문명의 지속가능성 위기와 서양의 지적 전통
‘생태계 파괴’, ‘이상 기온’, ‘지진 과 태풍 등 대규모 자연재해’, ‘비번해진 대형 테러’, ‘대량 실업’, ‘극심한 양극화’. 이것들은 최근 우리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매일 접하는 현재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과연 인류의 문명이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 배인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연 재해를 과장하는 영화 등의 대중매체가 이 두려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하며, 따라서 인류문명이 계속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인간 삶의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인류 문명이 ‘지속 가능 여부’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해진 주원인이 18세기 서양에서부터 시작된 ‘산업화’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한다. 그리고 이 산업화에는 17세기 서양에서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이 강력한 이론적 후원자로의 역할을 하였고, 이 자연과학은 서양인 주류 사고방식의 결정체이다. 자연과학과 산업화를 가져온 서양식 사고방식이 인류문화의 지속성을 걱정하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라는 것이다. 설명컨대 내면적 마음을 탐구하는 동양의 전통과는 달리, 서양의 주류적인 지적 전통은 ‘인간으로부터 외재해 있는 그 무엇’을 탐구하는 데 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데아와 같은 ‘완벽한 논리체’를 탐구하였고, 중세시대에는 인간 외부의 하늘 세계에 존재하는 ‘신’을 탐구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근세기에는 인간으로부터 외재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칙’을 탐구한다. 산업화의 강력한 이론적 후원자인 자연과학은 외재하는 본질의 탐구하는 서양의 지적 전통을 계승 ‧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신, 자연, 인간을 한 몸으로 보는 동양의 전통과는 달리, 서양식 사고방식은 신 ‧인간 ‧ 자연은 엄격히 분리되는 것에 더하여 신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고 보는 바, 이러한 서양식 사고방식에서 자연을 지배하기 행위의 일환으로서 연구주체와 연구객체를 엄격하게 분리하여 탐구하는 자연과학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연구대상을 전일적으로 직관하여 그 본질을 통찰하는 동양의 전통과는 달리, 연구대상을 분리하여 연구한 후 각각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면 전체 대상에 대한 연구 결과가 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연구 대상을 분리하여 연구하는 자연과학이 등장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가변적 상황성을 인정하는 동양적 사고와는 달리, 완벽한 논리적 귀결이나 신의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서양식 사고에서 특정 원인에 대한 특정 결과의 발생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사건의 초기 조건을 정확하게 안다면 미래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자연과학의 인과율적 결정론이 등장하였다. 요컨대 주객체 분리관, 분리적 환원관, 인과율적 결정관을 핵심적 특성으로 가진 자연과학은 서양 주류 사고방식의 결정체인 것이다.
지난 세기 후반 자연과학 및 산업화가 가져오는 여러 부정적인 측면들을 인식한 일단의 사람들이 자연과학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했었다. Ferguson이 주도한 ‘The Aquarian Conspiracy’나 Capra가 주도한 ‘New Science Movement’ 등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 운동들은 지금은 거의 중단된 상태에 있다. 대중적인 지지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자연과학 및 산업화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주된 이유는 이 노력들이 기업의 활동에 반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국가가 사회의 중추기관이자 권력의 중심이었다면, 20세기 후반기의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사회의 중추기관이자 권력의 중심은 기업 특히 다국적 대기업이다. 역사적으로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회의 중추기관이자 권력의 중심에 대한 도전활동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이는 산업화에 도전하는 활동이었던 The Aquarian Conspiracy나 NewScience Movement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양식 주류 사고방식의 계보를 이은 이념체계로서, 기업을 지존의 위치에 올려놓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 운동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는 더 더욱 없었다. 논리체, 신, 그리고 자연법칙이 아닌 상품을 추구하고, 경제 주체들이 분리되어 따로 놀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전체의 조화가 예정되어 있다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아이디어는 서구인 주류적 사고방식의 산물이고, 이러한 서구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The Aquarian Conspiracy나 New Science Movement는 실패가 예정된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학은 그 자체가 곧 교육철학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The Aquarian Conspiracy나 New Science Movement와 그 기본 아이디어가 일치하는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는 교육철학의 입지가 강했던 반면, 인류 문화의 ‘지속 가능 여부’를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이끈 서양식 사고에서의 교육철학의 입지는 언제나 약하였다. 서양에서의 교육철학은 여타 논리학, 신학, 정치학 등에 종속된 하위 학문 혹은 도구 학문이었던 것이다.
제한된 범위 내이기는 하지는 나름대로 입지를 가지고 있던 교육철학은 서양의 주류적 사고방식이 약간은 악의적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남아있던 그 나마의 위상마저도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활동이 모든 사회활동의 중심이자 준거가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로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체계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교육’도 시장에서 사고 팔수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소비자’, 교사와 학교는 ‘교육 공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교육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은 교육이란 ‘가치추구 활동’이라 굳게 믿는 교육철학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들의 연구활동을 매우 위축시켰다.
이는 곧 교육철학자들이 사회의 중심 권력인 기업과 소원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상품을 팔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록 교육에 한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상품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교육철학자들을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고, 교육철학자들 또한 아무리 기업이 사회의 중심 권력이라 할지라도 교육을 사고 팔수 있는 상품으로 보는 그들의 견해에 동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의 중심 권력에서 멀어진 만큼 교육철학은 쇠퇴하였고, 그 쇠퇴의 정도는 여타 인문학 즉 일반철학, 역사학, 문학보다 더 컸다. 사람들이 인류문화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교육철학자들은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교육과 기업의 공동 관심사로서의 생태
그런데 21세기 특히 2008년의 국제금융위기 이후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고, 이에 교육철학을 위축시킨 교육철학과 기업의 이해관계에 있어 변화를 가져올 여지가 생겨났다. 다시 말해 소위 선진국과 다국적 대기업 기업들은 20세기 후반기에 굴뚝산업을 신흥 산업국가에 넘겨주고 그 대신 금융산업에서 큰 이윤을 남겼다. 세계 굴지의 대기업인 GM 자동차가 자동차 판매 금융업에 몰입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선진국과 대기업들은 2008년 일어난 세계금융위기를 당하여 금융업에서 더 이상의 이익 창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고 금융업을 대신할 새로운 사업 영역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린 산업’, ‘에코 산업’, ‘환경 산업’, ‘녹색 산업’으로 불리는 산업영역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주목하였다. 생태 ‧ 환경영역에서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이명박 정부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서 ‘저탄소녹색성장산업’을 주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선진국과 대기업이 큰 수익을 창출할 새로운 미래 사업영역으로 인식한 바로 이 ‘생태’에서 교육철학은 현대사회의 권력 중심인 기업과의 관계를 조정하여 새롭게 도약하고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설명컨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건강한 유기적 상태를 지칭하는 ‘생태’는 교육철학자도 지향해야 할 가치 있는 상태이다. 생태의 유지를 전제로 한 지속가능한 인류문화의 확립은 교육철학자들도 피할 수 없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이에 ‘생태’를 교육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부 교육철학자들은 ‘생태’를 회복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교육론으로서 ‘생태교육론’, 그리고 생태적 관점을 교육의 장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교육생태론’을 주장한다. 교육을 생태유지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생태교육론’ 이라면, 현재의 교육문제는 학교교육이 비생태적으로 전개됨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교육을 생태적인 것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생태학’이다.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위한 생태’가 교육철학자와 기업 모두가 추구하는 공동의 관심사인 한, 교육철학은 기업과의 불편한 관계를 완화 또는 해소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설명컨대 기업이 생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일차적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이윤의 창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업인들도 인류문화가 지속되어야 생존할 수 있고 동시에 기업도 생존할 수 있다. 문화 구성원으로서 기업인 자신이 포함되어있는 인류의 미래, 인류문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기업이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이다. 비록 ‘생태’를 거론하는 교육철학자와 기업의 속내는 서로 다르겠지만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위한 생태’는 분명히 교육학자와 기업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고, 이 점에서 교육철학은 사회의 중심권력인 기업과 보조를 같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생태, 디지털 정보화, 동양의 지혜와 교육
그런데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위한 생태’를 지향하는 교육을 한다 하여 그 교육이 중세적 농민을 기르는 형태의 것이라면 적절하지 못하다.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위한 교육이라 하더라도 ‘농업화 - 산업화 - 정보화’ 혹은 ‘구술적 정보양식 - 인쇄서적 정보양식- 디지털 전자 정보양식’이라는 시대의 흐름, 문명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위한 생태교육’도 ‘디지털 정보화’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실제로 디지털 정보화에는 그러한 요소가 많이 있다. 예컨대 현재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인쇄서적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모두 바꾼다면 종이 제작에 사용되는 많은 나무들이 절약 - 물론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데에 비생태적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될 수 있으며, 현재의 학교를 SOHO 시스템의 것으로 변경한다면 학교를 짓는데 사용될 많은 자원과 학생들이 매일 통학하는 데 들어가는 자원들을 절약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생태론자들은 인류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주원인이 서구 지성사의 원자적 분리관, 인과율적 결정관이기 때문에 개체성이 아닌 관계성, 결과성이 아닌 과정성 중심으로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 뿐 아니라 우주 내의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 사건은 그 얽힘의 전개에 따라 언제나 변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인류문화가 지속 가능한 형태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신망에 연결되지 아니한 컴퓨터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는 웹문서는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네트웍적 관계성, 구성적 과정성은 디지털 정보화의 핵심논리이다. 생태주의와 디지털 정보화 둘 다 네트윅적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을 그 중심 논리로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디지털 정보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인류문화의 구축 가능성은 열려 있다. 디지털 정보화는 물자를 절약하는 일차적 차원을 넘어서 지속가능한 인류문화의 구축에 필요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의 변화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네트윅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은 동양사상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유학, 도학, 불학 모두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을 강조한다. 동양사상에서는 분리되어 원자화된 상태, 정지되어 있는 상태는 정상적이지 않은 병든 상태인 것이다. 동양사상은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을 중심으로 삼천여년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생태주의자를 포함한 서구문명 비판론자들에 의하여 동양사상은 인류문화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가진 사상으로 평가되었다. 공격적이다 못해 파괴적이기까지 한 서구문명의 대안을 찾는 서양 사상가들의 대부분이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동양사상에서 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와 같이 생태주의와 디지털 정보화 그리고 동양사상은 네트윅 관계성과 구성적 과정성을 중시하는 논리 혹은 관점을 공유하고 있고, 이 관계성과 과정성은 지속가능한 인류문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관점이자 논리이다. 그러므로 유학 ‧ 노장 사상 ‧ 불학의 핵심 아이디어를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재해석하는 일을 중심으로 교육학적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교육철학을 구축하는 일이자 동시에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된다.
4. 마무리
교육학자들은 교육을 경제와 결부지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교육철학자들은 특히 그러하다. 그렇지만 교육사적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융성한 시대는 교육이 발전하고 교육철학도 융성한 반면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대에는 교육도 쇠퇴하고 교육철학 또한 심하게 위축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과거에 경제와 관련성이 적은 종교기관 혹은 국가가 사회의 중심 권력기관이었던 시대의 교육철학은 그래도 학문적 위상을 제법 가질 수 있었지만, 기업이 중심 권력기관인 되어버린 현 시대의 교육철학은 학문으로서 지속가능성을 염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교육철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로서의 ‘지속가능성’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과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교육철학자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 회복과 함께 교육철학의 지속복가능성 회복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생태’는 두 과제의 해결을 원하는 교육철학자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화두’이다. 생태적 안목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안목이자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안목인 것이다.
인류문화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철학을 한다고 하여 교육철학자 모두가 생태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는 없다. 원자적 개체성이 아닌 네트윅적 관계성, 인과율정 결정성이 아닌 구성적 과정성을 강조하는 관점을 생태학과 공유하고 있는 동양사상이나 디지털화 또한 넓게 보아 인류문화의 지속가능성과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교육철학적 탐구대상이 된다. 사람은 결코 혼자일 수가 없으며, 타인, 자연, 더 나아가 상품, 심지어 자본과도 네트윅적 관계망을 갖고 있음에 기반을 두는 연구, 그리고 이 관계망은 완성됨이 없이 언제나 구성과정중임에 기반을 두는 연구라면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과 교육철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교육철학적 탐구가 되는 것이다.
●?Who's 영구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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