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특수교육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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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哲學

The Korean Journal of Philosophy of Education

2001, Vol.25, pp.17-35


듀이의 교육적 경험론에 내재된 Transaction의 의미


김 무 길(성균관대 강사)



Ⅰ. 문제의 제기


듀이(J. Dewey)는 벤트리(A. F. Bentley)와의 공저인 그의 최종 저서 Knowing and the Known(1949)에서 ‘transaction’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transaction은 우리말로 일반적으로 ‘거래’라고 번역되며, 상업적인 용어로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교환의 과정을 뜻하는 말이지만, 듀이는 이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즉, transaction의 과정이 인간의 상호 관계적 활동일 뿐만 아니라, 인식과정 그 자체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임한영, 1987 : 203-205)1). 듀이에 의하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개별적인, 집단적인 transaction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그러한 transaction을 통하여 타인은 물론 주변의 물리적 사물들과도 함께 한다(Dewey, 1949 : 243). 이러한 transaction의 개념은 그의 경험의 개념과 항상 결부되어 인간의 지식 획득과 교육적 경험 그 자체를 성립 가능하게 하는 기초적 원리가 된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지식 획득과 교육적 경험은 그 밑바탕에 유의미한 인식과정인 transaction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듀이의 교육적 경험론에서 transaction이 차지하는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그 개념은 비교적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주로 ‘상호작용’(interaction)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경향이 있다. 생각컨대, 그 이유는 transaction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그의 후기 저작에서 체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2) 그 개념을 다룬다고 하여도 주로 일반적인 상호작용과 유사한 개념으로 간주한 데에 있었다고 파악된다. 더욱이, 우리말 표현에서도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관례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transaction’을 ‘상호작용’과 혼용해서 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명백히, 듀이가 비교적 후기 저작에서 transaction이라는 말을 쓰게 된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그것은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의미가 제한적, 국부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듀이의 본래 의도가 왜곡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을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상호작용을 뜻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느낌을 강하게 부각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듀이는 ‘transaction’이라는 용어를 직접 쓰기 시작한 그의 후기 저작 “Conduct and Experience”(1930)에서 “interaction은 원천적 사실(primary fact)이고, 그것이 transaction을 구성한다.”(Dewey, 1930a : 220)라고 말하고 있다. 듀이의 이 말은, 단편적인 상호작용은 단지 기초적인 사실 또는 자료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transaction과 동일한 지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까지 듀이의 경험 이론에 대한 통념적 해석, 예컨대 그가 ‘반지성주의자’(Quinton, 1977)였다든가, 그의 ‘경험’의 의미가 오직 ‘생활적응교육’이나 ‘흥미중심교육’에만 있었다든가 하는 ‘표피적인’ 수준에서의 그릇된 이해들은, 그의 경험의 개념 밑바탕에 들어 있는, 이러한 transaction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고, 그것을 단편적인 상호작용과 혼동한 데에도 그 한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transaction과 단편적인 상호작용은 명백히 다를 뿐만 아니라, 양자를 혼동할 경우, 그가 규정하는 경험의 원리가 자칫하면 아동의 즉각적인 욕구나 흥미 충족만을 강조하는 직접적인 교수의 원리로 받아들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확실히 듀이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본 연구자의 이러한 문제 의식이 타당한 것으로 성립될 수 있다면, 이 개념에 대한 탐구는 이때까지 듀이의 경험의 의미를 둘러싸고 일어난 여러 가지 오해나 논란의 원천을 밝혀 줄뿐만 아니라, 듀이가 그의 교육적 경험 이론을 통해 참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구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듀이가 규정하는 transaction의 올바른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그의 교육적 경험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를 고찰함으로써, transaction에 기초한 교육적 경험론이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하,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transaction의 개념은 무엇인가?

둘째, transaction은 interaction의 개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셋째, 교육적 경험론에서 transaction의 위치는 어떻게 파악되는가?

넷째, transaction에 기초한 교육적 경험론이 오늘날 교육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Ⅱ. Transaction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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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action에서 접두어 ‘trans-’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across’, ‘beyond’ 등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우리말로 ‘가로건너서’, ‘교차하여’, ‘-이상으로’, ‘-을 초월해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action’이라는 말이 붙으면 듀이가 규정하는, transaction이라는 독특한 의미가 형성된다. 사실상, 접두어 ‘trans-’는 듀이가 규정하는 transaction의 의미를 다소간 간접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것은 상업적 의미의 거래 이상의 뜻을 가진 것으로서, 인간과 환경간의 광범위한 상호관계적 활동인 동시에, 거기에 수반되는 일체의 인식과정을 가리킨다. 즉, transaction의 개념은 활동과 인식과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각각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명을 위한 개념상의 구분일 뿐, 사실상으로는 상호 분리가 불가능한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실제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 등 일체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하는(정건영, 1995 : 171) 듀이의 통합적인 관점에서는 일체의 유의미한 활동에 인식과정이 들어 있으며, 인식과정은 또한 활동과 상보적 결합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Transaction이라는 용어가 학문적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물리학자 맥스웰(C. Maxwell)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그 용어를 처음으로 쓰면서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이라는 물리학적 현상을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과학에 있어서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Miller, 1963 : 14). 즉, 그것은 이때까지 세계가 소유한, 가장 견고한 탐구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뉴턴 역학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조망을 열어주는 것이었다(Dewey, 1949 : 99). 그러나, transaction의 이론이 이러한 물리학의 이론적 성과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서, 듀이 이론의 기초가 순전히 물리학적 접근에만 있다고는 볼 수 없다. transaction의 이론은 사실상, 인간이 살고 있는 다양한 자연 세계의 재료들을 인간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 인간과 그 재료들과의 관계를 통일성있게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衫峰英憲, 1973 : 81).


1. 상호 관계적 활동으로서의 Transaction


듀이에 의하면, transaction은 “개인과 그를 둘러싼 상황 사이에 작용하는 어떤 것, 즉 외부상황의 매개를 통하여 효력을 발생하는 활동”(Dewey, 1939 : 206)을 가리킨다. 우리의 삶은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간에 이러한 transaction, 즉 개인과 상황 간의 밀접한 상호관계성의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땅을,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기반을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듀이는 인간의 삶과 transaction의 불가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인이 세상에 산다는 말은 구체적인 장면의 연속 안에서 산다는 것을 뜻한다. ······ 이것은 개인과 사물,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경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개인과 그 당시에 그의 환경을 구성하는 것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transaction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이다(Dewey, 1938a : 25).


위 인용에서 드러나듯이, 삶 그 자체에 transaction의 요소가 들어 있다. 누군가가 그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은 곧 그가 transaction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transaction에 참여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transaction에 기여할 수 있고, 또 거기에 무엇인가 수정을 가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직, 그가 transaction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Dewey, 1949 : 243). 이것은 그야말로 고립적인 개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표면상으로 어떤 유기체의 경우에는, 그것이 transaction으로부터 이탈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관찰은 피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유기체이든 근본적으로 유기체를 둘러싼 환경과의 transaction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기체는 공기와 물, 음식물 섭취나 열의 발산 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즉, 유기체는 신체 내부의 과정을 넘어선, 외부 환경과의 transaction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심지어는, 인간의 호흡도 공기를 그 상대자로 하는, 일종의 생리학적 transaction이라고 볼 수 있다(Dewey, 1949 : 242-243). 더욱이, 유기체는 진화된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거기에 따르는 transaction이 복잡해진다. 특히, 인간의 경우에는 고도의 transaction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듀이가 transaction의 개념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야말로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인간의 독백도 순전히 고립적인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독백은 그것이 있기 전에 이루어진 타인들과의 대화의 산물이며, 그 반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Dewey, 1925 : 135). 인간의 인식 활동, 특히 사물이나 사태의 인식과정도 이러한 transaction이 수반된 것이다. Knowing and the Known이라는 듀이의 저서 명에서 그대로 시사되듯이, transaction이란 ‘인식작용’과 ‘인식대상’ 간의 상호관계성을 지속적으로 형성해 가는 활동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듀이가 규정하는 이러한 transaction의 개념에는 사실상 인식이 협동적인 것이며 의사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가정이 들어 있다. 거기에서는 고정불변의 단언들이나 그것들을 외부로부터 씌우려는 어떤 기도도 배제될 뿐만 아니라, 인식의 과정 바로 거기에 개방성과 유연성이 들어 있다고 가정된다(Dewey, 1949 : 4). 이러한 관점은 곧 인간의 자유로운 탐구 활동 이전에 어떤 궁극적인 지식의 대상이 있다는 종래의 전통적인 ‘관람자적 지식론’(spectator theory of knowledge)의 관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호 관계적 활동으로서의 ‘transaction’ 개념은, 인간은 결코 그를 둘러싼 세계와 동떨어진, 고립적인 인식의 상태에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조건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제상황과 부딪쳐 사고를 하고 탐구를 하며, 바로 거기에서 의미있는 경험이 발생하고 유의미한 지식이 획득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인식주체와 대상이 계속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참된 의미의 지식이 획득된다는, 그의 ‘참여자적 지식론’(participant theory of knowledge)의 의미에 그대로 상응한다.

  

2. 인식과정으로서의 Transaction

   

앞 절에서 살펴 본 상호 관계적 활동으로서의 transaction의 개념에는 또한 유의미한 인식과정이 동반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식과정이 빠진 활동이라는 것은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과정으로서의 transaction의 개념은 상호 관계적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반이원론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즉, 그 관점에서는 ‘관찰자’(observer)와 ‘관찰대상’ (observed)이 밀접한 조직을 이루며, ‘명명’(naming)3)과 ‘명명대상’(named)간에 어떤 근본적인 분리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식작용과 인식대상도 그것들 자체가 하나의 공통적인 탐구체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Dewey, 1949 : 96-97).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단순한 상호작용의 관점과는 달리, 개인의 직접적인 관찰이나 명명의 과정이 지식획득과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관찰이나 명명의 과정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개인이 능동적으로 지식 형성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물이라는 것도 철학의 형이상학적 실체나 논리적 실재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행동하고 말하고 사고하는 데에 있어 관심을 두는 대상”(Dewey, 1949 : 247)으로 보아야 한다. 즉, 사물은 사물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의 transaction의 관계에 놓여 있는 사물이다. 사물이 인간과의 transaction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은, 사물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 언어, 사고라는 광범위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하나의 사물이 가지는 의미가 아주 광범위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작용이 시간상, 공간상으로 제약을 받지 않고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Dewey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해박한 학식을 갖춘 과학자에게는 일상적 사물이 가지는 의미의 범위는 대단히 확대된다. 하나의 돌은 단지 돌만은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地質學的 地層에서 얻어진 일정한 鑛物學的 形質의 돌이다. 그것은 수 백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해 주며, 地球史를 서술하는 데에 소용되는 것이다(Dewey, 1910 : 20).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관찰의 범위가 시공간상으로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transaction의 측면에서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본다는 것은 그 사건이나 대상 자체가 아니라, “시간적 존속 기간과 공간적 영역”(durations in time and areas in space)(Dewey, 1949 : 4)에 비추어 본 사건이요, 대상이다. 이러한 transaction의 관점은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단순한 상호작용의 수준을 벗어나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시간적으로 연장되고 공간적으로 확대된”(Dewey, 1949 : 60 ; 113), 아주 광범위한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관례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을 폭넓은 안목에서 상호 결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관점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맥락적 전체’로 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맥락적 전체로 본다는 것은, 유기체와 환경을 분리하지 않고 ‘융합적 체계’(fused system)(Dewey, 1949 : 127-128) 또는 공통된 전체적 조직에 놓고 관찰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또한 시공간상 확대된 인식작용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사물의 명명도 인간과 사물간의 transaction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명명’(naming)이라는 것은 사물의 ‘명칭’(names)과는 다르다. 명칭은 이름 그 자체를 가리키나, 명명은 인간과 사물이 전개하는 세계 속에서의 생생한 행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구분에서는, 예컨대 “흑인은 모두 악당이고 백인은 모두 영웅인 그런 통속극적 언어”(Dewey, 1949 : 7)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명칭’이 명사적이요 정태적인 것이라면 ‘명명’은 동사적이요 동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명백히, Dewey의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이름을 이름 그 자체로 간주하지 않고 동사적 의미의 명명으로서, 즉 인간의 인식작용과 인식대상 간에 벌어지는 생생한 행동으로서 이해한다.

이러한 인식작용과 인식대상 간의 transaction에서는, 그 transaction의 결과로 보고되는 인식 대상들만큼 시간상, 공간상의 인식의 확장이 일어난다. 예컨대, 만약 우리가 당구대 위에 있는 공에만 신경을 쓴다면, 공은 유리하게 설 수도 있고 공의 움직임을 상호작용적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구 경기를 사회적 성장이라든가 인간의 적응 문제로까지 충분히 확대해서 문화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단편적인 상호작용의 수준을 벗어나 transaction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돈을 대부해 주는 경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차용자는 대여자없이 돈을 빌어 올 수 없으며, 대여자도 차용자 없이는 돈을 빌려 줄 수 없다. 이것은 표면상 상호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라는 것은, 오직 본격적인 법적, 상업적 체제-그 안에 대부의 활동이 들어 있다-라는 광범위한 transaction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transaction의 측면에서 보면, 명명(naming)그 자체가 직접적인 인식의 한 형식이며, 인식 그 자체가 또한 직접적인 행동의 한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Dewey, 1949 : 134). 즉, 인식작용과 명명, 인식작용과 행동이 상호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융합적 체계 하에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유기체와 환경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양자는 transaction을 통하여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형성한다. 물론,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도 유기체와 환경의 관련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자를 근본적으로 분리된 고정된 두 요소로 보는 관점에 근거해 있다. 따라서, 상호작용적인 유기체와 환경의 ‘통합’은 진정한 통합이 아니라 “부분적인 균열”(Dewey, 1938b : 40)이 있는 그런 통합이다.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transaction은 반이원론적인 상호관계적 활동과 시공간상으로 확대된 광범위한 인식이라는 두 측면이 상보적으로 결합된 일체의 인식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transaction의 개념은 곧 우리의 인식작용이 상호 융합적 체계, 즉 시공간상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환경과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맺는, 그런 광범위한 체계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결코 고립적이거나 초연한 것이 아니라, 인식대상과의 계속적인 싱호작용을 통하여 그 상호작용 자체의 수준이 진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과 경험은 오직 이러한 transaction에 근거해서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공통의 체계 안에 들어 있으며, 인간의 지식 획득은 근본적으로 환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단편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보다 확실하게 관찰하고 인식하고 또 명명하기 위해서는 인식주체와 대상, 관찰자와 관찰대상 간의 긴밀한 계속적 상호작용, 즉 transaction이 필요한 것이다.


Ⅲ. Interaction과 Transaction


듀이에 의하면, transaction의 관점은 물리학적 탐구방법의 발전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리학에서의 탐구 방법은 세 가지의 수준을 거쳐 발달해 왔다. 즉, 자아작용(self-action), 상호작용(inter-action), 그리고 ‘trans-action’의 수준이 그것이다. 이 수준들은 각각 세계를 탐구하는 상이한 관점이다. 첫째, 자아작용의 관점에서는 사물은 그 자체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고대 물리학의 관점이다. 둘째,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사물은 인과적인 상호연결 관계 속에서 다른 사물과 맞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뉴턴의 물리학이 그것이다. 셋째,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敍述과 命名의 체계가 독립적인 ‘실체’나 ‘본질’ 혹은 ‘실재’와 같은 속성으로 귀착되지 않고 행위의 여러 국면들을 다루는 데에 쓰인다고 가정된다. 이 관점에서는 어떤 존재에 대한 단언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상으로 효율성 높은 관찰의 방식을 제시하고, 또 그 방식이 어떻게 발달해 나가는가를 보여 주는 데 主眼点이 있다(Dewey, 1949 : 101-102). 이러한 transaction의 관점은 지식획득에 대한 종래의 인식론과는 상이한 설명방식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물리학적 연구방법으로서의 상호작용(interaction)과 transaction의 관점은 구체적으로 인식의 성격이나 탐구방법 면에서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가? 듀이는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측면에서 양자를 비교하고 있다.

첫째, 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어떤 사건들 간의 관련성이 탐구 이전에 적절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가정을 한다. 그리고, 그런 가정 위에서 어떤 사건들이 속한 유형을 탐구하는 것이다. 반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현재의 사건들에 대한 기술이 오직 가설적, 예비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여진다. 거기에서는 그 형식이 넓든, 좁든 간에 사건의 여러 국면에 대한 새로운 기술을 탐구의 어떤 단계에서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둘째, 명칭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탐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다양한 탐구 대상들이 적절하게 명명되고 인식된 것처럼 가정한다. 그리하여, 그 다음 과제는 대상 그 자체의 상태를 재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대상 상호 간의 작용과 반작용에 따른 결과를 살피는 것이다. 반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일차적 관찰 하에 드러난 모든 내용이 탐구의 대상이 되며,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재결정이라든가 재명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셋째,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상호작용하는 구성요소들을 분리된 사실, 즉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탐구를 진행한다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구성요소들 중 어떤 것도 다른 구성요소들의 내용을 충분히 상세화하지 않고는 그것들 각각을 독립적인 사실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넷째, 요소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이 어떤 특정한 국면의 현대적 지식을 발달시킨다면, transaction의 관점은 관찰과 보고를 통하여 지식의 국면을 확대시키고 지식의 체계를 확장시키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섯째, 활동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사물을 원천적으로 靜的인 것으로 보고 그런 의미의 사물이 드러내는 속성을 연구한다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공간의 확장뿐만 아니라 시간의 연장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관점에서 사물은 작용하는 것이며, 작용은 또한 사물과 마찬가지로 관찰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사물과 작용간의 모든 구분들은 특징적, 일시적인 내용일 뿐이며, 장차의 탐구를 통하여 확립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섯째, 유기체와 환경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유기체와 그를 둘러싼 환경적 대상물이 연합적 탐구 이전에는 사실상 분리된 존재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 반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유기체이든, 환경이든 간에 그것들 따로따로의 前知識을 가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자유롭게 앞으로의 검토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유기체와 환경이 원천적으로 공통의 체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곱째, 인식작용과 인식대상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개별적 認識我에 의해 인식작용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과거의 자아작용의 관점을 대체하기 위해, 작은 ‘實在素들’(reals)이 유기체의 신체부분과 상호작용하여 모든 인식을 증대시킨다고 가정한다. 반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말하고 글쓰고 하는 것을 관찰하는 절차에 초점이 모아진다. 거기에서는 인간의 담화행동은 물론, 사물을 인식하고 조작하는 것과 관련된 여타의 전형적인 인간의 활동들도 관찰대상에 포함된다.

여덟째, 일반적 탐구의 측면에서 보면, 상호작용의 관점에서는 특정한 분야의 특별한 성공이라는 기조 하에서 탐구결과 자체를 독단적으로 단언한다든지, 모든 경쟁자들을 무너뜨릴 만한 권위적인 절차를 확립할 것이 요청된다. 반면, transaction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가설 아래 어떤 방식으로든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는 모든 내용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Dewey, 1949 : 113-115). 

이상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물리학적 탐구방법으로서의 상호작용의 관점이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지식관에 기초하여, 평면적 차원에 머무는, 좁은 범위에 관찰과 탐구의 대상을 국한시킨다면, transaction의 관점은 가변적, 동태적인 지식관에 기초하여, 그 관찰과 탐구의 범위가 시공간상으로 확대된,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transaction의 관점을 일반적 인식과정에 적용할 때,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듀이의 독특한 transaction의 개념이 형성된다. 즉, 그의 transaction 개념은 반이원론적 관점에 입각하여 인식작용과 활동, 인식주체와 대상, 유기체와 환경이 각각 광범위하게 상호 관련되고 계속적으로 ‘통합’되는 일체의 유의미한 인식작용인 것이다. transaction에서 인식작용의 ‘통합’이라는 것은 유기체와 환경 간에 일어나는 단순한 상호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통합과 해체, 재통합의 연속적 과정3)을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Dewey, 1938b : 40). 이 점에서 transaction은 확실히 단순한 상호작용보다 한 차원 높은 지적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Ⅳ. 교육적 경험의 원리로서의 Transaction

  

듀이의 교육이론에서 ‘경험’은 상호작용과 계속성이라는 두 가지 원리에 의해서 설명된다. 상호작용의 원리는 경험에 있어서의 두 요소, 즉 객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에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원리이다. 모든 정상적인 경험은 이 두 조건의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가 합해져서, 또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른바 ‘상황’(situation)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것이다(Dewey, 1938a : 24). 또한 계속성의 원리는, 모든 경험은 앞에 있는 경험으로부터 그 무엇인가를 받아 가지는 동시에, 뒤에 오는 경험의 성질을 무슨 모양으로든지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혹은 발달하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성장은-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적, 도덕적으로-계속성 원리의 예증이다(Dewey, 1938a : 19).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상호작용과 계속성이라는 두 가지 원리는 당위적 차원에서의 교육적 경험의 원리가 아니라, 존재적 차원에서 모든 경험이 갖추고 있는 원리라는 점이다. 즉, 그 두 가지 원리는 그 자체로 교육적 경험의 기준(criterion)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경험이 교육적인가, 교육적이지 못한가 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척도(measure)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어떤 경험이 교육적 경험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판단하려면, 우리는 그 두 가지 척도를 써서 그 척도 상에서 해당 경험의 교육적 가치를 재어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적 경험’(educative experience)과 ‘비교육적 경험’(miseducative experience)의 구분도 바로 그런 척도 상에서 재어낸 가치 판단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측면에서 볼 때 구체적으로 어떤 전개 양상을 띠어야만 교육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두 가치 척도 상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교육적 경험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하는 실제적 기준의 문제이다. 먼저 분명한 것은, 상호작용이 교육적 경험이 되려면, 그것은 단편적인 물리적 상호작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듀이가 의도한 상호작용이 아니다. 상호작용이 교육적 의미를 가지려면, 거기에는 적어도 아동의 경험과 교육내용 사이에 사고가 개입된, 지적 상호작용이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듀이에 의하면, 시간의 낭비를 피하고 정신적 성장의 통일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종 학습자료와 거기서 획득되는 정신력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Dewey, 1899 : 144). 왜냐하면, 교사는 항상 교육적 맥락에서 학생의 반응과 교과가 어떤 관계를 보여주는가를 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사는 교과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교과가 현재 학생의 필요나 능력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교사가 단순히 교과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Dewey, 1916 : 215). 듀이가 말하는 진정한 흥미의 개념도 바로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듀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호작용이 교육적인 것이 되려면, 그 상호작용의 수준이 지적인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 객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 즉 아동의 경험과 교육내용 사이에 능동성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적 경험의 또 다른 척도인 계속성의 원리는, 모종의 경험이 교육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방향과 목표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계속성의 기준은 바로 경험의 ‘성장’ (growth)에 있으며, 과연 어느 정도로 교육적 경험이 성장되었는가 하는 것은 실제적 판단의 문제일 것이다. 듀이의 교육에 대한 유명한 정의, 즉 “교육은 경험의 끊임없는 재조직 또는 재구성”(Dewey, 1916 : 89)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계속성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듀이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은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으며, 학습의 목적과 보람은 성장의 능력이 계속 증대하는 데에 있다.”(Dewey, 1916 : 117) 교육의 목적은 전통적 교육에서와 같이 학습자의 외부에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경험의 성장 그 자체에 두어야 한다. 듀이는 “학교 교육의 목적은 성장하는 힘을 조직적으로 길러줌으로써 교육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Dewey, 1916 : 60) 데에 있을 뿐, 그 이외의 어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외부의 목적을 부가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런 고정된 목적을 당연시한다면, 듀이가 그토록 통렬히 비판한 바 있는 전통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되돌아 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성장은 그 語義 자체가 계속되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며, 어떤 종착점이 있어서 완결되는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듀이의 표현대로 말하면, 성장은 “엉뚱한 순간에 완성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로 이끌어 가는 일”(Dewey, 1916 : 65)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러한 계속성의 원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예컨대 도둑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고자 나선 사람은 그 방항으로 자라서 실천을 거듭해서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Dewey, 1938a : 46). 다시 말하면, 경험의 계속성의 원리에서 나쁜 쪽으로의 성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반문은 타당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성장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비교육적 경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교사의 역할이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계속성의 원리에 있어서의 경험의 가치는 그것이 향하여 움직여 가는 방향과 목표를 기준으로 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교사는 오직 성인만이 가질 수 있는 한층 더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숙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온갖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교육자는 경험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교사가 자기의 보다 큰 통찰력을 미성숙자의 경험의 조건 또는 상황을 조정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공연히 내버려둔다면, 교사가 보다 성숙하다는 것이 아무런 가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Dewey, 1938a : 21). 요컨대, 중요한 것은 “경험의 質”(Dewey, 1938a : 13)이며, 아동들이 그런 교육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 교육적 경험의 두 가지 원리, 즉 상호작용과 계속성은 개념상으로만 구분될 뿐, 사실상으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원리는 “서로 부딪쳐 결합한다. 말하자면, 그 두 원리는 경험의 縱이요 橫이다.”(Dewey, 1938a : 25) 듀이에 의하면, 바로 이 두 원리의 상호결합이 경험을 성장시키는 요체가 된다.


상호간 적극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계속성과 상호작용이야말로 경험의 교육적 의의와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된다. 그러므로, 교육자의 현재 관심대상은 상호작용이 성립되는 상황에 관한 일이다(Dewey, 1938a : 26).


교육적 경험은 곧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두 측면이 경험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성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상호작용을 벗어난 고립적이거나 단편적인 경험, 계속성이 없는 일시적이고 정체된 경험으로는 경험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교육적 경험의 성격을 논할 때에는 상호작용과 계속성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인 안목에서 논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듀이가 교육적 경험의 척도로서 언급한 상호작용은 확실히 물리적 의미에서의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transaction과 일치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듀이가 그의 초기나 중기 저작에서 제시한 상호작용의 아이디어는 사실상 사고가 개입된 인식작용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후기 사상에 이르러서 상호작용의 의미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해석하고 있는(정덕희, 2000 : 232) 듀이는, 그의 상호작용의 의미가 단순한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transaction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종래의 상호작용이라는 용어로는 긴 시간과 큰 공간이라는 광범위한 인식의 맥락이 간과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transaction이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이다. transaction은 곧, 이때까지 교육적 경험의 원리로서 언급되어 온 상호작용의 의미에, 사실상 그런 광범위한 인식의 맥락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듀이의 ‘상호작용’의 의미는 transaction을 의미한다는 데서 그것의 풍부한 교육적 가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상호작용의 관점은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초점에 맞춰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연장되고 공간적으로 확대된 차원에서 대상을 보는 transaction의 관점과 동일한 것이다. 확실히, 그런 상호작용에는 사회적, 역사적인 풍부한 상호 관계적 맥락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그런 시공간적 맥락을 인식하는 가운데,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접한다면, 그는 단편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한 단계 뛰어넘은 차원 높은 인식, 즉 transaction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 요구되는 인식의 사태도 바로 이러한 사태, 즉 확대된 시공간의 맥락 위에서 이루어지는 인식의 사태라고 보아야 한다. 

transaction과 상호 맞물려 있는 계속성 원리에 있어서 그 기준이 되는 성장도 바로 그런 확대된 시간성과 공간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모종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개조 또는 재구성된다는 것은 그 밑바탕에 광범위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적 맥락에서 학습자의 경험의 성장을 지향해 나아간다고 할 때, 거기에 만약 시·공간성이 전제된 유의미한 인식과정이나 지적인 상호작용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험에 있어서 사고가 개입하지 않는 경험이 맹목적인 경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모든 활동과 경험이 개인과 환경적 맥락 사이의 transaction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밀러(H. Miller)가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이러한 “transaction이 진정한 의미의 학습을 설명해 주는 것”(Miller, 1963 : 21)이라면, 그것은 바로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경험의 과정인 것이다. 인식과정으로서의 transaction이 교육적 경험의 기초적 원리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transaction은 인간이 갖는 일체의 경험이 광범위한 상호관계적 맥락에 혼입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transaction이 없는 계속성, 계속성이 없는 transaction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transaction은 항상 계속성과 맞물려 나아가는 경험의 과정이다. 교육적 맥락에서는 경험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transaction의 과정이 보다 풍부하게 일어나고, 동시에 계속성이 성장을 지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 교육사태에 참여하고 있는 교사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 속에 참여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사회적 맥락을 벗어난, 고립적인 개인을 상정할 수 없다. 개인의 경험도 그런 사회 속에서 생겨나고 그 사회 속에서 발달되어 간다. 이것은 곧, 우리의 앎과 삶에는 그것을 의미있게 구성해 나가는 광범위한 상호관계적 맥락, 즉 transaction이 항상 개입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마치 사회를 벗어난 추상적 개인을 상정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듀이가 언급하듯이, “경험을 일으키는 원천은 개인 밖에 있으며 경험은 그런 원천으로부터 언제나 영양을 섭취”(Dewey, 1938a : 22)하고 있기 때문이다.


Ⅴ. 결론


한국 교육사적 맥락에서 볼 때, 확실히 듀이의 교육이론은 우리나라 해방 이후의 교육이론과 실제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듀이의 교육이론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의 교육이론의 眞意가 얼마나 올바르게 이해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듀이의 transaction의 원리에 의하면,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공간적 넓이와 시간적 길이가 확대된, 그런 관계적 맥락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상호작용만으로는 지식 획득이나 유의미한 경험을 반드시 이룬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은 삶을 통찰하는 깊은 안목을 형성하는 일이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못하든 간에 우리는 환경적 맥락에 근거해서 살아간다. 여기에 이전의 지식이 누적되어 있으며, 이전의 transaction의 과정이 들어 있다. 요컨대, 이런 역사성과 공간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거기에 입각한 경험의 계속적 성장에 대한 이해야말로 듀이의 교육적 경험론을 새롭게 이해하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 입각해 보면, 듀이의 경험이론이 지식교육 자체를 과소평가한 ‘반지성주의’에 입각해 있다든가, 그 이론이 오직 ‘생활적응교육’ 또는 아동의 단순한 흥미중심 교육이론으로만 일관되고 있다는 평가는 결코 타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본 연구가 오늘날 교육에 주는 실제적 시사점을 밝힌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듀이의 transaction은 학습이라는 존재적 상황을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라는 광범위한 인식의 측면에서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transaction의 측면에서 학습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시공간상 확대된 통합적 인식의 측면에서 그 의미를 보다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transaction의 맥락에 입각해 보면, 교육의 구체적 사태에서 교사는, 학습자가 배우는 교육내용이 그의 개별적 경험이나 그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의 맥락과 의미있게 연결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사실상, 학습자의 진정한 경험의 성장을 이끄는 교육적 흥미도 바로 그런 사태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듀이의 transaction은 경험과 교과의 관계를 상보적 맥락에서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흔히, ‘교과’는 학습자의 경험과 무관한 것, 또한 지루하고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경험과 교과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인식론적 시각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어 왔다. 사실상 이때까지의 이러한 경향은, 듀이의 관점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transaction의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 경향은 역사성이 담긴 교과와 시공간성을 가지는 인간 경험의 관계를 상보적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교육은 학습자로 하여금 결코 현재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인식수준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교사는, 학습자에게 그야말로 무의미한 정보의 무더기를 전달해서는 안되며, 경험과 교과가 보다 확대된 차원에서 풍부한 관련을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먼저 교사 스스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한계를 초월해서 다른 사물, 다른 사건(events)과의 관련성을 새로운 교육활동의 기초로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교사의 활동을 과학적으로 이끄는 길이며(對馬登, 1974 : 39), transaction에 입각한 교육적 경험의 성장을 촉진하는 길이다.  

셋째, 듀이의 transaction은 학습자로 하여금 가능한 한 사고와 탐구의 기회를 많이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사고와 탐구는 경험과 교과가 진정으로 상호 관련을 맺게 하는 교육적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비록 이때까지 교육에서 사고와 탐구를 촉진하기 위한 수업을 진행해 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로 정형화된 교과서의 학습문제나 旣成의 문제들을 가지고 다루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육에서 교사의 의도나 목적 없이 효과적인 교수 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은 語不成說이다. 그런 교수 학습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단순하고 맹목적인 활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듀이가 말하고자 하는 논의의 포인트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학습자 개개인에게 유의미한 경험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것은 단편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인식의 확대를 가져오는 transaction의 영향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의 계속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이 되려면, 교사는 학습의 내용이 단순히 외부적으로 부과된 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자 자신의 절실한 문제가 되도록, 경험의 풍부한 소재를 학교 안으로 이끌어들이고 그것을 교과와 관련시키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듀이의 transaction의 개념은 보다 포괄적인 안목으로 교육현상을 바라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 등 교육과정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보다 광범위한 시공간적 차원에 입각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는 주로 듀이의 transaction의 원리를 중심으로 그의 교육적 경험론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는, 그 개념이 듀이의 교육적 경험론의 이론과 실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transaction의 개념이 그의 교육적 경험론뿐만 아니라 지식론, 가치론, 존재론, 도덕론, 실재론 등 그의 철학의 광범위한 분야와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 분야와의 관련성도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이루어지면, 듀이의 transaction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교육적 의미는 우리들 앞에 더욱 풍부한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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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Meaning of Transaction in Dewey’s

Theory of Educative Experience


Kim, Moo-Gil


Dewey’s concept of “transaction” is based on the viewpoint of anti-dualistic, integrated cognition. It means not only the reciprocal activities between knowing and the known, but also continuous cognitive processes accompanied with thinking. Mere interaction does not always guarantee to acquire knowledge. Transaction is the intellectual interaction widened in time-space context. In this sense, It can be said that transaction is surely one step higher than mere interaction.

It must be pointed out that transaction is identical with the concept of interaction as a measure of educative experience. Because it is intellectual interaction, too. Dewey’s intention to use “transaction” is to remove the room for mis-understanding that confuses transaction with mere interaction in physical meaning.

Knowledge acquisition and meaningful experience cannot be possible without presupposing the context of transaction : the principle of cognitive process. In this sense, it can be said that transaction is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his theory of educative experience. Dewey’s transaction widens not only our visual field seeing educational situation, but also provides the comprehensive perspective for the curricular discussion on the aim, content, and method of education.



1) 이 점에서 ‘거래’라는 용어는 확실히 듀이가 의도한 본래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주로 상업적인 의미만을 부각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때까지 그 용어는 논자에 따라서 ‘상섭’이라든가 ‘교호작용’ 또는 ‘상관작용’(노진호(1993), “듀이의 반성적 사고와 교육론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그 말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인 transaction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


2) 물론, 그 개념이 비교적 그의 후기 저작에서 체계화되었다고 해서 transaction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그의 초기나 중기 저작에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예컨대, 그의 중기 대표적 저작인「민주주의와 교육」에 나오는 “광범위한 계속적 상호작용”(Dewey, 1916 : 80)이라는 말은 논의의 맥락으로 보아 transaction의 아이디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테이어와 테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transaction’의 개념은 듀이의 초기 저작인 “The Reflex Arc Concept in Psychology” (1896)라는 논문에서부터 발전된 것이다(H. S. Thayer & V. T. Thayer, “Introduction” ; Dewey, 1910-1911 : xxv). 비록 듀이는 그 논문에서 ‘transaction’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호 분리된 실체인 자극-반응 이론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서 양자의 관계를 유목적적 기능의 관계로 해석하며, ‘調整’(coordination)의 개념을 통하여 양자의 분리를 극복, 통합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의 관점에는 이미 transaction의 관념이 들어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Dewey, 1896 : 97-109). 이후, 듀이의 저서 중에서 ‘transaction’의 개념이 언급된 것으로는, Conduct and Experience(1930), Experience and Education(1938), Logic : The Theory of Inquiry(1938), Theory of Valuation(1939) 등이 있으나, 그 개념이 활동뿐만 아니라, 인식과정과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Knowing and the Known(1949)인 것으로 보인다.


3) ‘명명’이라는 말은 듀이의 ‘naming’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듀이는 그 용어와 표면상 유사한 또 다른 용어, 즉 ‘의미 부여’(designation)라는 말을 쓰고 있다. 얼핏 보기에, 양자는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듀이가 그 두 가지 말을 쓰는 이유는 의미상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명명’이 무엇인가 진술하고 상호 관련짓는 것이라면, ‘의미 부여’는 그것보다 더 나아가 그 명명한 바를 개방하고 배열하며, 그 적용범위를 한층 확대해서 기술하는 것, 즉 듀이의 용어로는 ‘상세화’ (specification)의 단계까지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이런 ‘상세화’ 단계까지 나아가는 ‘의미 부여’의 결과, 경우에 따라서는 앞서 이루어진 ‘명명’(naming)이 부정될 수도 있다(Dewey, 1949 : 131 ; 149 참조). 예컨대, ‘天動說’이라는 ‘명명’은 오늘날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듀이의 논의에 따라서 말하면, 그것은 ‘상세화’ 단계에서 개방적인 검토 작업의 결과, 결코 올바른 명칭이라고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의미 부여과정으로서의 ‘상세화’라는 말은 엄밀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를 진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이러한 듀이의 통합에 대한 개념은 표면상 헤겔(F. Hegel)의 변증법적 과정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듀이가 그의 “From Absolutism to Experimentalism”(1930)에서, “나의 사고에 헤겔과의 만남이 영원한 침전물로 남아있다고 하는 말을 무시한 생각도, 하물며 부정할 생각은 더욱 없다.”(Dewey, 1930b : 154)라고 한 말도 그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분명히 듀이의 관점은 헤겔의 관점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듀이 철학에서 헤겔적 관점의 극복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듀이에게 헤겔이 영향을 준 부분은 “절대정신”(Absolute spirit)에 도달한 헤겔이 아니라, 역사적 발달을 공부하고 경쟁하는 역사적인 힘들로부터 어떤 통일성을 추구해 가던 헤겔이었기 때문이다(Ozmon & Craver, 1995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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