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조회 수 13 추천 수 0 댓글 0

   세상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태어나 자라고, 나이 들고 병들어 죽습니다. 생로병사의 과정은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런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일생 몇몇 중요한 전환점을 지나게 되는데요, 식물의 경우 대체로 ‘씨앗 맺음-정착(독립)-자람-번식-죽음’처럼 조금 단순한 전환점을 거칩니다. 그리고 동물은 ‘태어남-서고 걷기-부모 곁을 떠남(독립)-새로운 영역 확보-후세를 남김(번식)-죽음’ 등의 전환점을 거치죠.

   사람도 동물인지라 동물과 비슷한 인생의 전환점을 지납니다.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기에 개인적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태어남-서고 걷기-이갈이-부모 곁을 떠남(독립)-새로운 영역 확보-후세를 남김-죽음’ 등의 전환점을 거칩니다.

   생명체마다 삶의 전환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똑같은 것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떠나 홀로 섭니다. 식물처럼 씨앗이 생기면서 막바로 부모를 떠나기도 하고, 동물처럼 1~2년 정도 부모와 지내다가 부모를 떠나 홀로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지구의 생명체 중에서 사람의 독립 시기가 가장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보통 20세 전후가 되면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합니다. 요즘은 30대나 40대가 되어서 독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녀의 독립을 위해 정말 많은 열정을 바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보면 잘 알지요. 부모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게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좋은(정확히는 ‘돈 많이 버는 직장을 버는데 유리한’) 대학을 보내기 위해 벌이는 유・무형의 치열한 경쟁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 경쟁을 긍정적 눈으로만 보면 자녀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방법은 달라도 ‘자녀의 독립’을 위해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목표는 같습니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통해 (부모에게) 의존적이었던 사람은 독립적 존재로 재탄생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장애를 많이 느끼는 학생들은 어떤가요? 이 학생의 독립을 위해 부모님은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하려고 애쓰는가요? 35년간 중증 발달장애 학생과 부모님들을 만나왔던 경험으로는 그냥 그렇습니다. 제가 만나온 많은 발달장애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의 개인적 ‘치료’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아이가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성장’은 소극적이었습니다. 부모님 눈에는 늘 ‘아기’인 이 학생과 심리적 분리가 매우 늦거나 어렵기 때문에 타인과 어울려 성장할 충분한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에 가장 많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학생을 예로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폐적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전문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를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s)의 7가지 분류 중 하나로 봅니다. DSM-5를 보면 신경발달장애를 7가지를 분류하고 이 중 특정 조건에 부합할 때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명명합니다. 이렇게 분류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과연 치료할 수 있는 걸까요?

   장애를 많이 느끼는 학생의 부모님 대부분은 초등 저학년까지 ‘장애를 고치기 위해’ 많은 열정을 보냅니다. 무슨 자기장 치료를 받으면 장애가 낫는다더라, 침을 맞으면 말문이 트인다더라, ‘~~치료라는 걸 받으면 정말 치료가 된다더라'…… 와 같은 허황된 말에 많은 돈과 노력을 바칩니다.

   하지만 정말 죄송한 이야기인데, ‘장애’는 낫지 않습니다. 다만 개선될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물론 이 개선도 학생의 장애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만약 ‘~장애가 나았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더 이상은 신체의 다름으로 인한 일상생활에의 장애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영어를 못해 영미권 국가에서는 먹고, 자고, 물건 사는데 ‘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에게 실시간 통역이 되는 스마트폰이 생겨서 언어 장애를 못 느낀다면, 어떨까요? 이 사람에게 ‘영어를 모른다.’는 건 더 이상 장애가 아닙니다. 또는 태어나면서부터 몸 전체나 일부를 움직일 수 없거나 사고로 움직임에 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이 사람이 뉴럴링크(관심 있는 분은 링크를 열어보세요.)와 알로하 프로젝트(관심 있는 분은 링크를 열어보세요.) 같은 AI와 로봇 기술의 진전으로 생각만으로 문을 열고 이동할 수 있거나 요리하게 되었다면, 몸을 움직이지 못해 느끼는 장애는 사라집니다. 이 경우는 소위 장애가 낫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가 주장하는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일시적 증상이거나 병증이었을 것입니다. 간혹 어떤 자폐(라고 주장하는) 아이의 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자폐를 치료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 아이는 자폐로 인해 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치 동공 구조 이상이 시각적 문제를 가져오지만, 난시 정도라면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 정도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난시 정도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본인 스스로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disorder)이라고 합니다. 저는 묻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는 억만장자인데! ”

   부모 형제나 친구와 동료 등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일반적인 삶의 형태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하더라도 타인과 어울려 이런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나아가 어울려 일하고 돈을 벌어 스스로 돌볼 수 있다면 그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명칭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자폐나, 지적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으로 명명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가 누구든 어떤 장애로 명명되든 장애는 없습니다.


   저는 33년 정도 발달장애 학교에서만 일했습니다. 특히 경진학교는…… 1997년 10월 경진학교 개교하고 이듬해인 1998년 3월에 이 학교에 왔으니 26년이 넘었네요. 경진학교에서는 2020년까지 고등학생을 가르치면서 여러 학생과 부모님들을 봐 왔습니다. 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초등학교 정도까지(또는 극히 일부 부모님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장애를 낫게 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십니다. 정말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깨닫죠. 장애는 일반화 되거나 낫는 것이 아니라 완화되거나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부모님들께 ‘우리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 씹어 먹을 수 있는 기회, 스스로 목표를 찾아갈 수 있는 기회, 스스로 학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기회, 누구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기회, 스스로 생활관에서 부모님과 분리될 수 있
는 기회, 부모님과 분리되어서도 잘 지낼 수 있는 기회, 칭찬과 꾸중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기회, 갈등 상황을 극복하거나 참을 수 있는 기회…… 일반 아이들은 굳이 제공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경험하는 여러 기회입니다.

   중학생이 다 되었는데도 '잘 씹지 못하니 음식을 가위로 잘게 잘라달라'(실제는 잘 씹음), '이동할 때 손을 잡고 가 달라'(말로 안내하면 혼자 잘 다님), '잘못했을 때도 잘못했다는 말을 줄여달라. 훈계 등에 화를 내거나 운다'(잘잘못을 알아가면서 실제로는 조금씩 변화한다.).... 등등의 요구로 혹시 부모님 스스로 발달장애 학생들이 이런 기초적인 생활 경험을 배울 기회를 차단하지 않나요? 과도한 아이의 안전이나 보호 또는 평가절하 등 다양한 이유로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여기에서 장은 간장, 된장, 고추장을 이야기함)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장이 없으면 음식을 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해 장을 담갔죠. 지금은 공장에서 장을 생산하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장을 담갔습니다. 제가 강원도 촌사람이라서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 장 담그는 모습을 보고, 일을 거들었던 경험을 했었는데요, 실제 장을 담근 후 관리를 잘못하면 파리가 알을 낳아서 구더기가 생기곤 합니다. 예전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고 장을 안 담그는 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할 생각을 해야지, 구더기 때문에 장을 못 담겠다고 하면 그 집안은 아예 식사를 할 수 없었겠죠.

   비슷한 의미로 서양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와 심리적으로 너무 붙어서, 아이가 너무 아기 같이 보여서, 또는 아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아이들이 직접 경험해야 할 것들을 보호자들이 다 해준다면 그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사춘기를 지나고 있으며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 모두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가능한 더 많은 기회를 주어 신체적 성장만큼 심리적 환경적 성숙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 학급 소식지 '늘차름' 4호에 실은 글입니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공지 가르치는 것 "사람을 잇는 교육"의 모든 글은 저작... 2015.05.29
» 가르치는 것 배울 수 있는 기회 주기 2024.04.15
66 가르치는 곳 생활기록부(NEIS)와 특수문자 file 2024.02.23
65 특수교육 최근 20여년간 발달장애 특수학교 학생의 변화와 ... file 2023.11.10
64 낯설게 보기 [특수교육 낯설게 보기] 공중부양의 시작 2023.09.15
63 특수교육 '특수'를 떼야 비로소 선생이 될 수 있다. 2022.12.28
62 가르치는 것 모두에게 적절한 교육이란 2022.09.30
61 가르치는 것 모두에게 적절한 교육을 위하여 file 2022.09.1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

  • 교육 이야기
  • 심돌이네
  • 자폐증에 대하여
  • 자료실
  • 흔적 남기기
  • 작업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