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사-심승현 선생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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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 또는 감각이 아픔입니다. 하지만 아픔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감각 또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람 아니, 생명있는 그 무엇이라도 아픔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픔은 우리 삶 곳곳에서 당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아픔을 느낍니다. 아픔을 느낀 사람은 그 아픔의 강도와 비례해서 아픔의 지점을 강하게 기억하게 되고 그 기억은 다시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을 피하는 일종의 평생 게임에서 조금씩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니 시중의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결코 흰소리는 아닐 겁니다.

  

   어릴 적 살았던 강원도 사북 지장산에서 겨울은 아이들에게 놀거리가 참 많은 계절이었습니다. 눈 오면 썰매타고, 얼음 얼면 외줄 스케이트를 탔지요. 그리고 겨울 내내 쥐불놀이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지장산에서 웬만한 아이들은 10살 전후만 되어도 쥐불놀이 도구를 혼자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쥐불놀이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분유 깡통을 구해서 대못과 망치를 이용하여 아래부분에 수 많은 구멍을 냅니다. 그런 다음 못쓰는 부엌칼을 이용해 옆 면을 길게 세로로 여러 번 잘라 바람이 잘 들어오게 자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으로 깡통의 상단 양쪽에 구멍을 뚫은 후 가는 철사를 연결하면 쥐불놀이 도구가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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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이런 모양?^^)

   쥐불놀이 도구(깡통)가 완성되면 불을 피우고 깡통을 돌리면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쥐불놀이를 할 때의 짜릿함과 따듯함이란...

 

   저도 쥐불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친구들이 쥐불놀이를 하면 조금 꺼려지더라구요. 왜냐하면 쥐불놀이를 하면서 크게 화상을 입은 적 있었거든요.

   쥐불놀이 깡통에는 나무 외에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넣으면 안 됩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녹아서 날아가니까요. 그런데 한 번은 친구 동생 녀석이 쥐불놀이 깡통에 라면 봉지를 넣어서 돌리는 바람에 불타는 라면 봉지가 날아와 제 손등에 떨어졌습니다. 불타는 라면봉지가 손 등에 떨어졌을 때의 아픔과 공포란.... 아직도 왼손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그 후 쥐불놀이가 조금 꺼려지더라구요. 그리고 만약 쥐불놀이를 해야할 때는 주변 친구들이나 스스로의 깡통에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잘 살피게 되었습니다. 물리적 고통(아픔)을 느낀 후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환경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졌지요.

   물리적 고통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 고통도 마찬가지죠. 대학 다닐 적, 서툴렀지만 열병 같았던 첫사랑의 실패는 심리적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고통스럽게 돌아봄으로써 좀 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잃는 아픔으로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픔은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사람의 적응력을 키워주는 결정적인 감각입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통점(痛點)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몸에 통점이 없고 따듯하고 포근한 감각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수 개월을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뜨거운 불 위에 앉아서 몸이 타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의 생명은 허망하게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못을 밟았는데, 몸이 알 수 없다면 파상풍에 걸릴 수도 있지요. 우리 몸의 통점(痛點) 마치 전장의 최전선에서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병사처럼 몸을 위협하는 그 어떤 징후가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려 대비하게 합니다. 따라서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좀 더 잘 살기위한, 좀 더 잘 살 수 있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요즘 특수학교의 교육형태에서 통점(痛點)이 사라짐을 봅니다.(폭력 옹호자로 오해하는 무지한 사람은 없겠죠? 특수와 관련된 글은 늘 이런 사족을 붙여야 하니..ㅋ) 몸으로 치면 특수학교는 통점이 제거된 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다칠까봐(그 다친다는 것이 활동 중에 살짝 긁히는 등인데도) 몸을 많이 움직이거나 조금 격렬한 활동에 소극적입니다. 혹은 야단쳐야 할 상황인데도 다른 구성원(학부모나 보조원, 다른 선생님 등)의 눈치가 먼저 생각나 그냥 '잘했어요.'로 마무리됩니다. 다른 물건을 만질까봐, 다른 친구에게 가까이 갈까봐... 혹시 다른 아이와 시비가 붙을까봐 등 여러 이유로 어떤 아이들은 거의 모든 시간 타인의 손을 잡고(손에 잡혀) 다닙니다. 모든 교육활동에서 '긍정적'만 강조되다 보니 아이들이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일 것 같은 모든 활동에서 아이들은 제거됩니다.

   우리는 통점(痛點)이 깨끗이 제거된 무균·무통의 교육환경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소위 특수교육만의 고민은 아닌듯 하지만. 어쨌건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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