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

by 영구만세 posted Jun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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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로는 센 척, 잘난 척, 평온한 척 하지만 사람인지라 마음 속엔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함, 두려움과 희망 등등이 마치 곡선을 그리듯이 매일, 매 순간 오르내린다. 마치 며칠 전에 그린 아래 사단칠정의 그래프처럼.

   곰곰히 내면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니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아는 척, 잘난 척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7정과인생표.jpg

   발달장애 아이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얼마나 더 낮아져야 이 아이들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

   오늘 수업을 하다가 한 아이의 주먹에 얼굴 콧잔등과 양 미간 사이를 맞았다. 가끔 타인의 얼굴을 치는 학생들이 있어서 학교에서는 다른 안경보다 뿔테 안경을 끼는데, 다행이 안경알이 깨지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친절한 수업이었고 이 아이는 수업에 잘 따라와 칭찬도 많이 했는데.. 아이를 옆에 세우고,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하는 마무리 시간(평가)에 주먹이 날라왔다. 

   왜일까? 지난 20년간 이런 아이들을 수 없이 많이 봐 왔고, 맞아 오면서 아이들이 가진 의사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이상 자세하고 개별적인 것은 알 길이 없다. 의사소통의 부재로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자해나 타해. 

   고백하건데, 나의 대처는 이러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에 레슬링 선수처럼 머리를 걸어(헤드락) 바닥으로 넘어뜨린 후, 주변 사물들을 나무로 치면서 위협했다. 단호하게 소리를 쳤다.

   "사람을 때리면 안 되지!"

   그리 난리를 치고 5~7분 정도 벌을 세운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러 보냈다. 

   '내가 널 좋아하는데, 너는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더 많이 알고 싶다. 더 잘 알고 싶다.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이유를. 야단치고 위협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를. 

   나는 더 찾고 싶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정말 사랑하는 것인지를. 

   병원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코르착이 이런 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책을 다시 한 번 봐야겠다. 코르착의 말처럼 이 아이들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자식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로서 진실로 사랑하는 것일까. 대안 삶이 대안교육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은 그 나이에 맞게 놀면서 "공부(工夫)"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요즘은 그 생각이 '가식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입시현실에 발을 들여 놓으니 외우고, 시험치는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가 늘었다.

   공자의 말처럼 정말 위기지학(爲己之學)은 가능한 것일까. 남에게 보이고, 그로 인해 출세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닌 진정한 공부를 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미친 짓일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지표가 많이 흔들리는 요즘이다. 답을 찾고 싶다.

   부모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여전히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 나는 모른다. 


   아내를 보면서 생각한다. 남과 함께 부부(夫婦)의 연으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녀(그)는 내가 아니고 남이라는 것은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행복한 혼인은 나를 사랑하는 이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남의 소리를 듣고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며 서로의 삶을 인정해가며 서로 알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아내와 생각이 맞지 않는다. 아내는 작은 일에 서로 화를 낸다. 아내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한 동안 이런 생각을 깊이 하다가, 문득 아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내도 삶을 살아가면서 내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고집불통!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찬 사람.'

   공자님 말씀은 지지고 볶는 필부필부(匹夫匹婦) 속에 중용의 도가 있다고 한다...

   아내의 질병이 확인되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수술로 쉽게 치료가능하다고 하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매일 걱정하고 기도하는 아내를 보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느껴져 짜증이 나다가도,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면 코가 찡할 때도 있다... 허.. 실 없이 웃으며 생각한다.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그리고 지금도 모르고 있구나.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의 직장인 학교를 보면서 생각한다. 학교는 어디로 갈까. 가는 방향은 올바를까. 홈페이지를 통해 수 없이 주장했던 국립학교의 불합리함이 정말 불합리한 것일까. 사안들을 보는 내 눈은 과연 맑은가. 두드리고 또 두드려본다. 돌다리 앞에 서서 건너지 않고 서성이는 사람처럼.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교직원은 학생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이나 직원들도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학생의 행복한 삶을 지원하는 것일까. 학교 존재의 주체는 아니지만 학교 존재이유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인 학부모들과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의 주체인 선생님들이 행복한 학교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분명한 것은 좋은 교육은 모든 이해(국가, 집단, 학부모, 종교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아이들 속에서 학교는 존재 이유가 있다. 

학교를 보면서 나름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여러 생각은 있지만 사회의 축소판같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서로 다른 생각을 느낄 때면 그냥 웃는다. 침을 꿀떡 삼키고 잠시 자리에 앉아 생각한다.

   '나는 모른다. 좋은 학교? 정말 좋은 학교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개인에게 오는 날들은 늘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

   하지만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계절은 여전히 바뀐다. 아기가 태어나고, 아이는 크고, 어른은 나이들며, 또 죽는다. 이게 자연이다. 

   주말엔 술이나 한 잔 하면서 특별히 그 무엇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나 찬양해야겠다. 그리고 물어야겠다. 이 많은 나의 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