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5.12.06 11:47

썰매 만들기-산골소년의 겨울준비

(*.179.72.206) 조회 수 4609 추천 수 41 댓글 0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산골이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은 온통 산입니다. 게다가 강원도 사북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으니 새카만 도로와 물이 흐르는 탄광촌의 모습도 기억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의 산들은 도회지에 있으면 높은 산이라 부를 높이지만(해발 870M 정도) 내 자란 곳엔 그런 산들이 워낙 많아 높다는 생각은 못하고 자랐죠. 그 중 내가 살던 산은 강원도 사북에 있는 ‘지장산’이라는 곳입니다. 지금은 정선 카지노가 들어선 곳이지요.

어릴 적엔 형이나 동네 아이들과 지장산 너머나 건너편에 보이는 이름 모르는 높은 산에 자주 갔습니다. 그곳도 해발 800M는 족히 넘을 듯 합니다. 어린 적이라 해서 사춘기 때는 아니고, 그보다 훨씬 이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도시로 이사 오기 전인 중학교 1학년까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죠.

흰 눈이 녹고 봄이 찾아오면 동네 사람들 남녀노소 누구나 산에 올라 봄나물을 뜯어 오기도 하고, 자루 가득 진달래꽃을 따 오기도 했습니다. 진달래꽃을 따 오면 늘상 ‘술이 웬수’라시던 어머니가 댓병 소주를 넣어 아버지가 드실 진달래주를 담곤 했죠. 술 때문에 싸움도 곧잘 하시던 부모님이었는데, ‘왜 술을 담아 주실까?’하고 궁금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리니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술이 웬수’라면서도 아버지를 위해 진달래주를 담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말입니다.
산은 여름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가을엔 머루며 다래를 따고 더덕도 캘 수 있는 자연농장이 되기도 했지요. 겨울엔 잡지도 못하는 토끼몰이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장산의 늦가을경부터 초겨울경은 아이들에게 무척 바쁜 시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마치 연중행사처럼 톱질을 하고 망치질해 가며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게 뭐냐고요? 뭐냐면, 썰매나 스키입니다. 그 동네 아이들의 입장에서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썰매와 스키는 필수항목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개집을 수리하거나 다시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죠. 개를 기르는 집이 많았는데, 개도 집 식구인지라 겨울채비를 해 주어야 했죠. 어른들은 그 즈음이 되면 집집마다 연탄을 들이고, 김장을 한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연탄이나 김치보다 한 철 재미있게 노는데 필요한 도구인 썰매나 스키, 또는 친구인 개가 겨울을 따듯하게 나는 게 더 중요한 관심거리였습니다.

썰매는 같은 길이의 각목 두개를 앞부분을 어슷하게 자른 후 11자로 놓고 그 위에 판자(그 당시 합판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음)를 가지런히 놓아 못질을 한 후, 각목이 위로 오도록 뒤집어서 각목 위에 철사나 철근, 플라스틱 관 따위를 박아 만들었습니다. 철사나 두께 5~10mm정도의 철근이 들어간 것은 얼음위에서 타는 것이고, 플라스틱을 박은 것은 눈 위에서 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외발로 만든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각목에 양 발을 올릴 만큼의 판자를 박은 후 각목에 두께 5~10mm정도의 철근을 박아 날을 사포 등으로 날카롭게 갈은 것으로, 긴 장대(요즘 스키 탈 때 사용하는 폴 대 같은 것) 두개를 양손에 쥐고 얼음을 지치면서 타는 얼음 전용 스케이트(?)였습니다. 이 외발 스케이트를 날렵하게 타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요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보면 울 정도로 잘 탔던 것 같습니다.
스키는 플라스틱 관을 반으로 갈라 앞 주둥이를 불로 달군 후 구부려 쉽게 만들곤 했죠.

그리고 아이들의 이런 겨울맞이 행사에는 아버지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썰매나 스키를 만드는 재료들은 주로 아버지들의 직장인 탄광에서 조달했거든요. 못이며, 납작한 철근, 플라스틱 관, 못 등등. 아마 겨울이 가까워 오면 아버지들은 조금 귀찮았을 지도 모릅니다. 직장에서 자재를 빼와야 하니까요.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죠.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모든 광부들의 아이들은 겨울을 즐기려 겨울맞이 행사를 했으니까요.

이번 주부터는 아이들과 썰매를 만듭니다. 예전에 제가 만들었던 그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도 세월 지나 나이 들면 지금의 겨울이 그리워질까요?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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