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2.10.02 12:37

주완 어머님 죽음 소식을 접하며....

(*.179.72.206) 조회 수 5466 추천 수 86 댓글 6
1.

지금은 졸업을 했지만, 작년 고등부 3학년에 하주완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였는가는........ 글쎄 뭐라고 말하기 어렵구요, 덩치가 아주 크고 힘도 장사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주완이 어머님이 자가용으로 아이를 등하교 시키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식당과 행정실 사이에서 주완이가 주완이 어머님의 머리를 잡아채고, 주완 어머님은 볏단처럼 쓰러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이 제지를 했는데도요....

고등부 학생을 계속 맡다보니 아이들의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이의 진로를 확보해 줄 수 있는 처지는 못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신지체, 정서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이란 생각을 합니다.

자립.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아이들은 적어도 신변에 대한 자립(혼자 씻고, 혼자 먹고, 혼자 대소변 가리고....)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아이가 시설에 들어갔을 때 소위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지 않을 정도의 신변 자립이야말로 아이가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일 것입니다.

며칠 전 주완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 3때 전학왔으니까 우리학교에 주완이 담임선생님은 한 분이 계십니다.(당시 전 고 1 담임이였죠.) 주완이 담임선생님이 장례식에 다녀오셔서

"불쌍해서 어쩌냐......"

라시며 혀를 차더군요.

워낙 보기가(다루기가, 교육하기가....)어려운 아이였던지라 주완이나 주완이 어머님을 아시는 다른 부모님들에게도 같은 생각이셨을 것입니다. 상득이 어머니도 알림장에 주완이 어머님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적어 보냈더군요.

사람들 모두 비슷한 것 중에 하나가 망각에 대한 것입니다.
저도 지난 99년 누이가 죽었을 때 그토록 가슴이 아프더니, 이제 세월이 지나니 가끔 뜬금없이 생각날 뿐 그 당시처럼 가슴 아프지는 않더군요. 주완이 어머님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많은 분들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질 것입니다.

2.

언젠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업식이 끝난 후 어떤 부모님에게 한 소리(?) 들은 적이 있습니다.(고 1을 맡았었죠...)

'선생님이 아이들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선생님은 아이보다 더 수준이 높게 지도하여 우리 아이가 따라 갈 수 없었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제와 함께 생활하는 정신지체, 정서장애 청소년들이 글 하나 모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학교를 졸업하여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용변보기, 잔 심부름 하기, 주방 정리, 방 정리 등 최소한의 신변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12년 내내 연습을 해도 아이가 가진 근본적인 장애로 인해 그것이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 12년이 지나도 기초적인 신변자립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경우는 교육과정이나 학부모의 요구가 인지력 향상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어 등 발달한 가능성이 많은 초등학생일 때는 인지적 학습과 신변자립의 비율이 7:3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중고등학생일 때는 학습과 신변자립(진로와 관련된)의 비율이 2:8 정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초등부 6년간 해 왔던 "가갸거겨...."를 또다시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개척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자립생활이며, 아이들이 제게 바라는 교사의 모습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고, 아이들이 제게 바라는 모습(스스로 생각하기에...)이 되고자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제 임의대로 재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3.

부모님들께 항상 드리는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면 사람은 죽게됩니다.
부모님의 재산이 100억이던, 1000억이던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 한 그 돈들은 장애로 고통받는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설혹, 만에 하나

'내 죽고 나면 아이가 어떻게 되던 무슨 상관이야....'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아이의 행복한 일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 그리고 실천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고민과 논의 실천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먼저, 국가에 요구하십시오. 장애인을 책임지라고.....

엉뚱하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 알고자 노력한(현재도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몇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의 근본에 대하여 순자의 경우,

"물, 불은 기氣만 있고 생生은 없다. 초목草木은 기와 생이 있으며, 금수禽獸는 기생지氣生知가 있다. 인간은 기생지의氣生知義가 모두 있다"

고 했으며 공자나 서양의 슈타이너 같은 경우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약용같은 분은 성삼품설로 사람의 모습을 그립니다.

"성性에 3품이 있는데, 초목의 성은 생生만 있고 각覺이 없으며, 금수의 성은 생과 각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생과 각을 겸했을 뿐만 아니라 또 영靈하고 善하다. 이와 같이 상, 중, 하 3등급이 분명히 다른 까닭은 그 성을 극진히 하는 방법 또한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본연의 선하고, 영한 마음(心)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 본연의 선하고 영한 마음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면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면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이 사회는 사람이 살아가는 사람사회입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 아닙니다. 사람 하나 하나가 유일한 존재이며, 이 사회는 각자 유일한 존재들의 사회이기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은 사회에 있는 것입니다.

굳이 헌법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가는 각 개인의 행복을 지켜주는 인간이 만든 큰 단위의 사회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무연고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는 지원하여야합니다. 물론, 보호자가 살아있을 땐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여야 겠지요.

곧 전국 장애인 부모회가 열리고, 12월이면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지혜를 모아 국가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지만 못하는 것에 대한 요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책임에 앞서 부모님들의 시각을 조금만 돌려보셨으면 합니다.

많은 경우, 학령기의 장애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아이가 일반인처럼 정상화되거나 인지적 학습의 성과가 높게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누차 말씀드리지만 아이들의 전 생애를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글자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어떤 아이는 글자를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는 등 아이들마다 경우가 조금 다르겠지만) 자립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자립능력, 졸업 후 시설에 갔을 때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립능력. 학령기 장애아이의 부모들이 교육기관에 요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

주완 어머님의 소식을 듣고 장애 아이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부모님들의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장애인 부모가 아닌지라 얼마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남겨진 아이와 가족의 삶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냥 두서없이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애인을 둔 모든 부모님들 힘냈으면 합니다.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면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조금씩 줄어들겠죠. 다만, 내 아이만 위해 무언가를 하기보다도 전체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이라도 조금씩 하셨으면 합니다. 세상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작은 생각들이 모아져 큰 흐름이 되고, 큰 흐름들이 모아져야 조금씩 변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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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학생 2011.04.26 11:32 (*.237.181.91)

    잘 읽었습니다.

    매우 슬픕니다

    선생님께서 부디 학생들을 잘 도와주세요

    장애있는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에요.

    진심으로 다가가고 사랑으로 대해주세요

    왜 우리나라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장애아이들을 교육하거나 보육시설이 터무니 부족하고 열악한거 같아요 너무 슬프네요

  • profile
    영구만세 2011.04.26 23:59 (*.233.104.158)

    오래 전의 글인데....

    장애학생들이 초중고의 정규 교육과정을 졸업을 하면 어떻게 더 지원을 해 주는 것이 합리적인지 등에 대한 많은 고찰들이 있었으면 하네요.^^

  • ?
    하늘호수 2011.05.25 23:01 (*.97.193.191)

    어머니의 존재기간이 짧았던 길었던 간에  누구에게나 다가올 슬픔일거예요.

    특히  자립생활이 부족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큰 슬픔일거에요.

    내 주위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흔적을 떠나 보내야  하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추억만은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 할거에요.

    슬프네요.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아이들에게 가갸 거겨를 가르치는겄보다  어떻게하면자립생활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를  교육에 더 우선시를 두면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 할까요.

    글  잘읽었습니다.^^

     

     

     

     

  • profile
    영구만세 2011.05.25 23:38 (*.239.179.133)

    잘 지내고 계시죠?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조금씩 지쳐가는군요....

    특수교사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에너지를 흡입(^^)할 뭔가가 필요해지나봐요. 정서적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아서 빈 공간을 더 채워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건강하세요~

  • ?
    하늘호수 2011.05.26 22:31 (*.97.193.191)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다영 2012.07.20 12:57 (*.251.18.211)

    우선적으로 신변자립 다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글을 아는 것도 중요해요. 글의 모양을 보다보면 뇌에서 입력시키고 점점 머랄까 바둑알을 놓는 소리를 듣다보면 차분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것이 가능한 아이를 선별하고 어려운 아이는 다시 노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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