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_In

[Story_In 32호] 다른 세상에 함께 살기

posted Nov 10, 2023 Views 72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많은 사람이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큼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연말이면 가족이나 벗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서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같은 맛의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음식이지만 사람들 눈과 미각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한 가족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모두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나 청각기관의 차이로 인해 사람들은 각자 다른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에서 자막을 켜고 드라마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배경음으로 나오는 소리를 누구는 듣고 누구는 못 듣지요. 아마 음역에 따라 사람마다 듣는 것이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청각만 그런가요? 시각도 그렇고, 미각도 그렇습니다. 아니, 인간의 감각은 모두 뇌가 정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감각을 받아들이는 각자 경험에 따라 정보는 달리 해석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 각자 다른 세상을 구성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구성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같은 물리적 토대(인체)를 공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물리적 토대를 기반으로 어떻게 해야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물리적으로 뛰어난 동물들 사이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공감입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지만 ‘다름보다 같음’을 느낄 수 있는 마음. 공감 말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세계를 사는 것 같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우주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나의 세상을 강요하는 것은 공감하는 게 아닙니다. 공감은 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다름’을 찾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와 같음’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나는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닌지, 더 나가서 ‘내가 만나는 그’에게 나는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니었는지 요즘 제 반성문의 주제입니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