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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Story_In
2022.08.27 18:46

[Story_In 24호] 어긋남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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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수록, 어릴 적 함께 공부하던 친구나 함께 일을 시작했던 동료들과는 다른 세상을 걷게 됩니다.

   십여 년 만에 만난 어릴 적 배꼽 친구는 반갑습니다. 처음엔 반갑기만 하죠. 하지만 조금 이야기하다 보면 불현듯 어색함이 묻어올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이야기, 자식 키우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이 삐거덕거리며 겉돌 때도 있지요. 시간만큼 어긋나 있습니다.

   불의에 함께 분노하던 청춘시절 벗들도 수십 년이 지나면, 많이 어긋나 있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지위가 달라지고, 지위가 달라지니 지킬 것들도 달라졌기 때문이죠. 서로 다른 지위와  ‘지킬 것’을 가지고 마주 앉은 사람의 거리는 화성과 목성만큼 멉니다. 오랜만에 만나 공통점을 찾겠다고 오래 논쟁하다 보면 십중팔구 둘 중 하나의 마음은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기도 맙니다. 왜냐하면 서로 자기 생각의 폭을 넓혀 그 거리를 메우려 하기 때문이죠. 둘 다 자신을 비우면 이내 만날 수 있지만 둘 다 자신을 버릴 생각은 못 합니다. 그건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시간은 필연적으로 나와 관계한 예전 것들을 어긋나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여러 SNS를 이용하다 보면 온라인 속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좋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나보다) 멋있는 상을 타고, 좋은 책을 쓰며, 맛있는 걸 먹고, 부러운 집에 삽니다. 게다가 운동 잘하는 분도 많고 자식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경쟁 없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그렇습니다. 경쟁 없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은 암묵적으로 옷이나 집, 돈이나 지위 등 소위 세속적 경쟁을 자제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경쟁적이죠. 자기 생각(사상 또는 세계관)을 타인을 통해 넓히려고 기를 쓰고 더 경쟁합니다.

   SNS는 계정만 등록하면 누구나 자기 세상을 가질 수 있는 가상공간입니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SNS의 가상공간이지만, 모두 똑같은 값어치의 공평한 세상은 아닙니다. 실제 공간과 아주 닮아있습니다. 왜냐하면, SNS의 계정은 현실 속 ‘그의 세상’을 과장되게(크거나 작게 또는 괴이하게) 재현하기 때문입니다.

   SNS는 계정 스스로 창조하고 확대한 세상이 아니라 현실의 ‘나’를 재현한 세상입니다. (나중엔 계정 스스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할 날도 오겠죠.) 그리고 그 재현은 단순한 복사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SNS는 때때로 돋보기가 되고 졸보기도 되며, 또 때론 프리즘이 되어 “현실의 ‘나’와 닮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처럼 ‘나의 세상’을 무한 확장하기 위해 타자와 경쟁합니다. 이 경쟁의 가상공간은 현실의 그 누구도 만족하지 않고 (현실의) 모두가 욕망만 하는 참 이상한 세상입니다.

   실제 공간이든 가상 공간이든 사람들은 특정 공간 위에 자기 세상을 세우고, 타자가 세운 세상과 함께 살아갑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 다른 세상을 만들고 만나며 살고 있지요.

   같은 공간을 다른 세상으로 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건 참으로 까슬까슬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공간 또한 필연적으로 나와 관계한 그것들을 어긋나게 하니까요.

 

   시공간을 포함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우리의 삶은 어긋남의 연속입니다. 눈 뜨면 만나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매일 같아 보이지만 ‘지금’ 내 앞의 가족은 이미 어제 만났던 남편이나 아내, 자식과 어긋나 있습니다. 매일 만나는 직장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늘 이미 어제와는 어긋난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뿐만 아닙니다. 매일 출근하며 걷는 길이 어제의 그것 같지만 (우주의 눈으로 보면) 그 길은 이미 어제와 어긋나 있습니다. 매일같이 들러서 “역시 이 맛이야!”라고 감탄하는 그 카페의 커피, 매일 내 손을 떠나지 않는 휴대전화, 매일 마주하는 자동차……. 이 모든 것들은 나와 만나는 순간 어긋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어긋남은 필연입니다. 그리고 어긋남의 껄끄러움을 얼마나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긋남이 모든 것을 어긋나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긋남은 ‘만남’이기도 합니다. 어긋남으로 인해 새로운 만남이 시작됩니다. 어긋남이 없다면 새로운 만남도 없습니다.

 

   난 그저 어긋남을 잘 느끼며 완전히 벗어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난 그저 만나되 너무 가까워 완전히 하나 됨을 경계하고 두려워합니다.

   잘 어긋나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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