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193.18.178) 조회 수 194 추천 수 0 댓글 0

  흔히 사람 사회를 복덕불일치(福德不一致)의 사회라고 합니다.
  많은 이가 지향하는 ‘사람됨의 극치에 다다른 사람’, 그러니까 ‘도가 높고 덕이 넓은 사람’이나 ‘초인’(니체의 표현을 빌자면)이라고 해도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시쳇말로 ‘법 없이도 살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죠. 오히려 도덕적인데도 불행한 사람 아니, 도덕적이기 때문에 더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비도덕적이며 짐승의 무리(니체의 표현에 의하면)에 가까운 사람이 행복한 경우는 허다합니다. 더 비인간적이기에 더 행복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칸트는 이를 복(福)과 덕(德)이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복은 현상계1)의 욕망에서 오며, 덕은 예지계2)의 자유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복과 덕은 각각 다른 영역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사람이 만들어 낸 사회이기에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공자도 복덕불일치를 이야기하며 지성무식(至誠無息)하라고 합니다. 세상은 원래 복덕불일치이니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라고 합니다. 마음은 현상계가 아니고 예지계의 영역이니 동서양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 세상을 보는 눈을 획득한 후 제 삶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하나는 ‘함께 사는 세상 만들기에 도움이 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면서 최소한의 쓰레기만 남기고 죽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점점 미국을 닮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겉으로는 사회적·경제적 위치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세상이나 공정한 세상을 외치는 척하면서 내심 속으로는 ‘돈돈돈돈돈....’, ‘지위지위지위지위....’를 주술처럼 되뇌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이는 생활 속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요.
  보통 사람들이 모이면 집값이 올랐다며 정부를 탓하고 걱정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끝은 ‘내 집이 얼마나 더 오를까?’로 귀결됩니다. “친구야, 좋은 친구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끝납니다.

 

   이렇게 생긴 세상이기에 짐승의 무리가 된 사람들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사람은 그러니까요. 하지만 가끔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내 삶의 꿈’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많이도 올라간 주변 아파트 가격을 알게 되어 자식 세대가 걱정되거나, 나의 신념에 따라 평교사의 삶을 선택한 나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데, 틈만 나면 터져 나오는 “평교사로 힘들지. 교장·교감 되도록 점수관리를 하지!”라는 처의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나만 손해 보나?’, ‘나는 잘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덜 남기고 싶지만, 매일매일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에 많은 죄를 짓습니다. 가정에서 생존을 위해 사야 하는 물건들 하나하나 쓰레기 아닌 것이 없어요. 먹는 것을 사도 쓰레기가 딸려옵니다. 옷을 사면 옷 그 자체가 나중엔 쓰레기가 됩니다. 하다못해 누군가와 선물을 주고받아도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학교에 와서도 매일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합니다. 줄이려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릴수록(젊을수록) 환경문제에 민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뭔 키트, 물티슈, 과자 등은 그리 많이 사는지…. 플라스틱, 플라스틱을 어찌도 이리 많이 사들이는지……. 제 경험으로는 20~30대일수록 오히려 환경문제에 더 둔감합니다. 물티슈 덜 쓰자고 하면 “청결이 먼저”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지구온난화와 위생가설, 플라스틱 없는 건강한 지구를 이야기하면 “꼰대”라고 할 것 같아 입을 닫아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무균처럼 깨끗한 삶,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흰 손을 가진 삶을 원합니다. 그리고 남보다 잘살고 있음을 증명할 다양한 장신구 나부랭이, 남보다 부자임을 드러낼 다양한 도구 등을 걸치거나 가지고 다닙니다. 생활필수품이 아닌 이런 물건들은 결국 그 자체가 쓰레기인데도, 이 쓰레기를 들고 참 많이들 뽐냅니다. 본인들 겉은 깨끗하게 빛나고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만큼 그의 마음과 이 지구엔 쓰레기가 쌓이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욱더 혹독한 환경위기에 놓일 것입니다.

 

  넋두리가 계속 가지를 뻗고 있는데요….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많은 이들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결국 행복은 지각과 감각의 영역이며 지각과 감각으로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 영혼 이런 것들과 거리가 멉니다. 감각적 행복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 곳에 거리낌(어찌 보면 쓰레기란 표현도 맞습니다.)이 있기에 많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씻으려는 듯 종교를 찾지요.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도 인간 사회는 복덕불일치(福德不一致)의 사회인 게 확실합니다. 그것도 아주 “필연코!!”

 

1)현상계(現象界): 지각(知覺)의 대상이 되는 세계. 감성계(感性界), 감각계(感覺界)라고도 할 수 있다

2) 예지계(叡智界) : 인간의 주관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감성적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으며, 순수하게 사유할 수만 있는 이념적 존재의 세계. 그러니까 어찌 보면 초감각적 세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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