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2.06.07 19:29

약속이라는 것에 대하여.....

(*.179.72.206) 조회 수 3540 추천 수 50 댓글 0
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벌써 늦은 7시가 지났군요......

지난 며칠동안 학생명부, 서약서, 자가통학 조사서, 통학버스 이용 신청서 등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학교에 써서 내야 할 것도 많았고, 교사의 입장에서는 정리해야 할 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저는 각 아이들이 가져 온 것들을 또 타이핑 해서 정리하고 각 부서로 넘겨야 할 과제가 남았지만요....) 학급의 '업무'와 관계된 일들은 이제 조금씩 정리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여러 가지 문서들 중에 어제 마지막으로 정리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서약서'라고 하는 것인데요.....
신입생 예비소집날 서약서를 나누어 드리면서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작성하셔서 보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 대해 묻혀 두었던 제 생각을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예비소집때 나누어주라는 것 들을 보다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위 학생은"으로 시작하여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보호자 연서로 서약합니다"로 끝나는 이 서약서를 보는 순간
'이것이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서약이란
"약속하고 맹세함"
을 뜻합니다.
약속하고 맹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집의 큰 아들과 약속을 잘 합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함으로 일단,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은 꼭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에게 하는 약속은 누구의 압력(?)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 제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노력함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저는 아이에게 약속을 했음에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해명하려고 진땀을 뺍니다.

어떤 때는 아이에게
"##야 우리 약속하자~"
라며 약속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보통 쉽게 약속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면 약속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경우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지요.
"네가 이 약속을 지키면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줄께. 약속하자~~"
웬만해선 이 정도에 넘어가지만 정말 하기 싫은 것은 아이스크림이 무용지물입니다. 정말 고집이 센 놈이거든요.....

아이들처럼 아직 어리고, 자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약속의 의미를 압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이번 서약서를 보면서
'어떻게 한 개인(집단)이 다른 개인(집단)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개인이 다른 개인의 의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의지와 상관 없이 많은 일들이 결정되고 있는 사회구나.....'
등등의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면 우리 아이들이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안전사고를 당할 확률이 많기에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 이해됩니다. 아래 올 학급운영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저 또한 아이들의 안전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라 하여 그런 걱정에서 자유로울까요? 부모님들 또한 아이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쓰실 것입니다. 학교에서 신경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학교와 학부모 모두 걱정인 이 사안이 어떻게 학부모의 전적인 책임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책임이란 말을 떠올릴 수 있습니까?

이는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논의하고, 그에 대해 최선의 노력과 예방을 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다가 진짜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고요? 글쎄요. 종종 다른 학교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를 보면서 학부모와 교사(또는 학교)가 평소 그 아이에 대하여 얼마나 드러내어 논의하고 고민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이루어지는 서약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생활에서 학생과 관련된 사항은 종이 한 장으로 이루어진 서약보다 부모와 교사(학교)의 신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시에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고 이제야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반 학생들이 어렵게 고등부에 올라왔고, 이로 인해 서약서에 대한 제 생각이 여러 부모님들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이었습니다.
이제 1주일 정도의 기간이 지났고 부모님들의 마음도 어느정도 편안해 지셨을 것 같아 이제야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학급, 우리 학교의 주인은 바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입니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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