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사-심승현 선생님편

내게는 부모님 병간호가 더 중요하다.

2006.07.21 14:10

영구만세 조회 수:5501 추천:38

방학을 했다. 공휴일 제외한 26일간의 방학.
다른 직장에서 더운 여름에 땀 흘리는 분들에게는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 것 같다.
방학내내 병 드신 아버님을 가슴졸이며 돌봐야 한다. 두렵고 안타깝다.

2002년까지 때로는 연수로 인해, 때로는 개교학교의 업무로 인해, 때로는 학교장의 등살에 방학의 절반 이상은 늘 연수원이나 학교에서 보냈고, 2003년부터는 교육공동체 차름의 계절학교로 인해 휴가 몇일 보낸 것이 전부였던 방학. 방학이래도 늘 쪼들리는 살림에 지난 여름 아이들 수영강습 한 번 시킨 것을 빼면 아이들이나 나나 본가와 처가에 인사차 다녀오는 것 외에는 여행 한 번 못하고 방콕신세를 져야만 했다.
하지만 '차름'의 여러 사정으로 '2006 여름 계절학교'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니 빚을 내서라도 여행도 좀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껴왔던 정신지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교육에 대한 책을 좀 써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맘먹고 리눅스 서버에 대한 공부를 해 볼 생각도 들고, 처음으로 아이들과 텐트를 메고 전국일주를 해 볼 계획도 세웠다.

지난 6,7일 아버님이 위독하시다고 해서 급히 동해로 내려갔다.
5일 수요일, 다섯시가 지나서야 어머니께 연락을 받은지라 교무부장선생님께 전화로 연락만 하고 고향엘 내려갔다.
거동을 못하시고, 잘 드시지도 못하고, 사람을 잘 알아보시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어느 누군들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아버지를 뵈러 동해로 갈 때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생각에 눈물이 났고, 다시 일산으로 올라올 때 산소호흡기를 꽂고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워 계속 눈물이 났다. 집에 들어서면서는 아비를 반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전에 나도 아버지를 보면 저리 좋아했겠지..... '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 급히 화장실로 가 샤워를 했다.

10일 월요일. 갑가기 고향에 내려가느라 미뤘던 연가결재를 받으러 교장실에 갔다. 이제 막 간부회의를 하려나 양 교감선생님과 행정실장, 그리고 교무선생님이 동석해 있었다.
결재판을 보이니 학교장은 아무말과 표정 없이 결재를 해 줬다. 조금은 서먹했다.
아무리 원수지간과 같은 사이라 하더라도 부하직원의 아버지가 위독해서 고향엘 다녀왔다고 결재를 들어오면
"잘 다녀왔느냐, 부친은 좀 어떤가"
뭐 이정도의 질문은 그냥 예의상으로라도 하지 않을까?
묻지 않기에 답하지 않았다. 내 아버지 아파서 직장에 못나온 것이 큰 죄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묻지도 않는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아침회의를 한다는데 바쁜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 그랬다.

19일 수요일.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그나마 조금씩 드시던 음식도 이제는 아예 드시지 못해 코로 튜브를 통해 음식을 투여하고 있단다. 아침에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아 놀랐다시며 방학은 언제하냐고 물으신다. 당신도 힘드시다며.
방학하면 곧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생각엔 그게 자식의 도리다. 방학하는 날 직원 연찬회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이 모두 놀러 가는 행사가 있지만 내 생각엔 그보다 한 시라도 빨리 또 고향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선이다.
오후 4시 전후해서 교감선생님께
'아버지가 좋지 않아 어머니가 힘드시니 방학식날 연찬회는 못가겠다'
는 내용의 말씀을 드렸다. 그러라고 하신다.
20일 목요일. 자가 연수원을 내러 교무실에 갔더니 교감선생님께서 내일 연찬회에 가면 안되겠냐고 물으신다. 솔직이 좀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러는지.
직원회의를 하는데, 연찬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 조퇴를 쓰란다. 이의가 없다. 아무리 방학식으로 아이들이 오전에 하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출근한 후 근무시간 내에 근무지를 벗어나니 조퇴를 쓰는 것이 맞다.

21일 금요일. 오늘이다. 조퇴를 썼다. 교감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하라신다.(조퇴결재는 교감선생님 결재) 교장실에 가지 않았다. 교감선생님께서 결재를 냈으면 그 이유를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될 일 아닌가. 또한 교장선생님께서는 연찬회 결재 내셨으니 그 때 불참인원에 대해서는 이미 이유 등을 다 아시지 않았을까. 그냥 도장만 찍지 않고서야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장의 위치에 오를 인품 정도면 구태여 인사를 하지 않아도 잘 이해하시지 않을까.

직원들이 연찬회를 간다고 버스를 탔다. 학교장과 교감선생님이 함께 지나가신다.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아무말 없이 버스에 오르고 교감 선생님께서 내게 이야기를 한다.(교장 선생님이 인사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셨나보다.)
교감 선생님께서 함께 가고 밤 늦게나 내일 고향에 가면 되지 않냐는 말씀을 하신다.
......
나도 조금 흥분되어 여러 말을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왜 시경, 서경을 배우는 사람들이 문왕과 탕왕의 선정을 즐겨 노래할까.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일생에 찬양과 경배를 보낼까.
왜 불교인들은 부처의 말씀에 경의를 표할까.

그들은 모두 약한 자에게 자애로왔으며 스스로 낮아지려 했고, 남에게 강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쨋거나 지금 나에겐 놀러 가는 것보다 아버님을 간호하러 고향가는 것이 더 급하다. 누가 뭐라해도 그것이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버스는 가고, 조퇴를 쓴 13시 40분까지 학교에 남아 2학기 교육과정을 본 후, 학교를 나가기 전에 잠시 글을 쓴다.
덕분에 조금 늦은 시간은 고속도로에서 좀 세게 밟아 만회해야겠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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