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사-심승현 선생님편

기사읽기 : “교장은 ‘교사’일 뿐”

2003.06.18 21:57

심승현 조회 수:4877 추천:275

* [한겨레21]에서 가져왔습니다.
** 우리의 천박한 문화가 만들어내는 학교장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해당 학교 교사들이 직접 선출하는 독일의 교장제도, 베를린 레겐보겐 초등학교를 가다]

“교장이요? 그거 왜 합니까? 아이들 가르칠 시간도 적어지고 자리가 높아지면 학생들과 멀어지게 되잖아요. 교장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요. 나뿐 아니라 주변의 동료교사들도 마찬가지에요.” 지난 5월21일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20여분쯤 가면 닿는, 모루거리에 자리잡은 레겐보겐(한국말로 ‘무지개’)초등학교. 교직경력 10여년째인 무용 담당 교사 사비네(여)는 몇번씩이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체구 탓인지 제법 큰 안경이 유난히 인상적인 사비네는 “나중에 교장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뭐 이런 것을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빼꼼히 열린 교실 안쪽에서는 10여명의 아이들이 한창 무용연습을 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 잠깐 나온 그는 “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뒤로 한 채 서둘러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교장 되는 건 승진·출세 아니다”

레겐보겐초등학교 건물은 널찍한 운동장을 갖춘 한국의 학교와 달리 여기가 학교인가 싶을 정도로 겉보기에 일반 오피스텔처럼 건물만 달랑있었다. 하지만 학교 안에 들어서자 뒤편에 자그마한 운동장이 보였고, 계단이며 복도마다 아이들이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린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학교 전체가 온통 일곱색깔 무지개였다. 미술교육은 학생 630명, 교사 45명인 이 학교의 상징이다. 무지개초등학교란 이름은 이런 특징을 따서 지은 것인데, 지난 1998년부터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하이드룬 뵈머(50·여) 교장이 지었다고 한다.

“교장이 된 것을 승진·출세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출세하고 싶으면 다른 길, 예컨대 교육청으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내가 다른 평교사들보다 조금 위에 있지만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명의 ‘교사’일 뿐이다. 교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나의 꿈과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자리다.” 독일의 학교 교장에 대한 뵈머 교장의 설명은 짧고 명쾌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베를린교육청이 교장 초빙공고를 낼 때 미술 전공교사를 자격조건으로 달았다고 한다. 학교의 정체성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은 것이다. 뵈머 교장은 “우리 학교 학생중 절반 가량은 독일인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아이들이다. 언어소통 문제도 있고 해서 아이들끼리 잘 조화를 이루고 지낼 수 있도록 미술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교장이 될 당시 내가 이 점을 교사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독일에는 한국과 달리 교장·교감 자격증이 별도로 없다. 일정한 교직경력(대체로 20년 이상)을 가진 45살 이상의 교사라면 누구나 교장 공개모집에 응모할 수 있다. 독일의 16개 주마다 교장 선출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자격증제에 의한 승진이 아니라 선출(또는 초빙)된다는 점은 어느 주나 똑같다. 교장임기도 따로 없어서 스스로 떠나기 전에는 정년(65살)까지 교장으로 근무한다. 베를린교육청에 따르면, 초빙공고에 응모한 사람 중에서 우선 교육청이 서류심사를 통해 2∼3명을 후보자로 선정한다. 베를린교육청의 라우텐쉬래거 장학관은 “교장 초빙공고를 내면 대개 3∼4명이 응모한다. 교장이란 게 어려운 자리라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응모자가 한명도 없어서 다시 공고를 낼 때도 있다”고 말했다. 후보자를 압축할 때 베를린교육청은 그 학교에 어떤 교장이 필요한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산하 지역교육청 및 베를린주교사노동조합으로부터 의견을 듣는다. 이렇게 선정된 2∼3명의 후보자는 해당 학교로 통보된다.

그런데 실제로 교장을 뽑는 주체는 해당 학교 교사들이다. 통보된 후보자들 가운데 누구를 교장 적임자로 교육청에 올릴 것인지는 교사들이 직접 투표로 뽑기 때문이다. 독일의 학교운영 의결기구는 학교협의회(Schule-konferenz)와 교사전체회의(Gesamtkonferenz)로 나뉜다. 학교협의회는 교사·학부모·학생 등 세 주체의 대표들(각 4명씩)로 구성되는데 교장 선출 과정에서 각 후보자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투표를 통해 교장 적임자를 선출하는 기구는 교사전체회의다. 교육청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투표 1순위자를 교장으로 임명한다. 현장교사들이 교장 적임자가 아무도 없다고 결정하면 교육청은 다시 초빙공고를 내야 한다. 라우텐쉬래거 장학관은 “뽑은 뒤에 실망하지 않도록 평교사들이 학교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적절한 사람인지 여부를 다각도로 따져본다”고 말했다. 교사전체회의에서 교장을 뽑을 때는 학교경영에 대한 소견발표를 듣고 공개토론도 벌이며, 교장 후보자의 시범수업까지 평가한다.

교장도 주당 10시간 안팎 수업

교장 후보자가 시범수업을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의 교장·교감과 달리 독일 교장은 누구나 주당 10시간 안팎의 수업을 해야 한다. 레겐보겐초등학교 뵈머 교장도 1주일에 13시간씩 아이들한테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라우텐쉬래거 장학관은 “교장은 특별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과거에도 교사였고 현재도 역시 교사다. 교사가 수업을 하는 건 당연하다. 교장이 수업을 않고 관리·경영만 하면 학생들과 거리감이 생긴다. 그러면 학교수업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되고, 교장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도중에 교장직을 그만두면 평교사로 돌아와 더 많은 시간을 가르칠 수도 있다.

독일의 학교는 수직적 신분질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조직체계를 띠고 있다.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은 ‘승진’이라기보다 ‘전직’ 개념에 가깝다. 물론 교장이 학교 회의기구의 의장을 맡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여러 의견과 갈등을 조율하고 타협을 이뤄내는 ‘조정자’가 교장이다. 독일 교장이 독선적으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은 학교협의회의 구성멤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교장은 학교협의회 의장이지만 협의회를 구성하는 교사대표 4명 가운데 단지 한명일 뿐이다. 민주적인 토론과 평교사들의 ‘교육학적 자유’를 인터뷰 내내 강조한 뵈머 교장은 “귀찮고 책임이 무거운 ‘교사’가 교장이다. 교장이 되기 위한 좋은 점수를 따려고 나한테 잘 보이는 교사도 없고, ‘피곤하게’ 교장경쟁을 벌이는 일도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라우텐쉬래거 장학관은 “교장 선출과정에서 교사들의 결정권이 크다는 비판이 일부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발생한 적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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