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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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들이 많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들이 그렇고, 슈타이너 교육이 그렇고.....저 또한 새로운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학교를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조금 피상적이고, 체계가 없기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평소 생각하던 것이기에 부끄럽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것- 교육 환경]

영화 '모던 타임즈'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채플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영화나 채플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제목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전 요즘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보면서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채플린이 돌아가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 맞추어 나사를 돌리다가 나중에는 동그란 것(나사처럼 생긴 것)만 보면 돌리려고 하는 모습 말입니다. 코도 돌리고, 지나가던 사람의 옷에 달린 단추도 돌리고, 자신도 돌고.....

기계화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인간으로서 자아를 잃고 커다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그려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슬픈 모습을 코믹하게 그림으로써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채플린은 광대입니다. 큰 광대이지요. 광대에 대한 생각은 다음에 기회 있으면 다시 한 번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사회는 산업화의 물결이 거셌습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도 이때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생각해 보면 요즘 세상살이 또한 19세기말이나 20세기초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보다 의식주가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매 한가지가 아닐까요.

교육,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는 경쟁을 합니다. 그 경쟁이라는 것은 주류사회로 편입하려는 노력들이지요. 이 경쟁들 속에서 주류는 살아남고, 비주류는 사라지거나 겨우 그 목숨을 연명하게 됩니다. 큰 흐름을 타는 것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류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많이 벌고 (소위) 잘 살려고 하면 학벌, 인맥 등 여러 면에서 줄을 잘 서서 그러한 집단(또는 부류)에 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류에 끼기 위해 경쟁하며, 심지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해서라도 주류에 끼려고 합니다. 살인, 매춘, 어린이 유괴 등 대부분의 일들은 돈과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저는 경쟁하는 그 자체나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르거나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쟁하고자 하는 마음(그것이 욕심이던, 의욕이던, 무엇에 대한 추구이던....)은 우리 사회현상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듯이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또는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을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 경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경쟁 속에는 똑같은 인격을 가진 자아가 다른 자아를 아무런 동의 없이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이 숨어 있으며 더 나가, 힘 있는 자아(힘 있는 자아라는 말이 조금 어폐가 있을 듯 하지만 여기에서 힘 있는 자아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칭해 두기로 하겠습니다.)가 힘 없는 자아의 아무런 동의 없이 어떤 일을 시키거나, 어떤 것을 가지고 가거나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집단화된 폭력성 이 숨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폭력성이 나찌즘이나 세습통치 등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살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 또한 대부분은 이런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쟁하면서....

저는 '사람은 다면적인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는 사람을 이중적인 자아로 그리고 있지만, 제 생각에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셀 수 없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슈타이너의 체질론이나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사람을 4가지 측면으로 나누기도 합니다.-자아입니다. 많은 면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한 면만 보고 판단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부님(또는 스님)이 계시다고 합시다.
만약, 이 신부님(또는 스님)이 어떤 신도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눈이 팔려 다른 신도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합시다.
이 상황에서 신부님(또는 스님)의 이 면을 보고
'아, 저 신부님(또는 스님)은 성직자로서는 부적격자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일 것입니다.

신부님(또는 스님)도 생물학적으로 남자인지라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눈이 더 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신부님(또는 스님)라는 한 인간 자아의 한 면만 보고 그가 추구하고자 하고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그 영혼이 더욱 편안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일들이 무시되어서는 옳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게는 그가 추구하고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또 다른 큰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자아를 인정한다면 타인이 추구하는 큰 면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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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잠시, 개인적인 옛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실은 명색만 그렇지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 성당에서 부르는 용어로 '냉담자'입니다.
제가 성당에 잘 나가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고 3때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는데, 마침 고등학교 3학년을 위한 특별 미사였습니다.
미사 중 신부님의 강론이 모두 생각나지는 않지만 큰 핵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당에 다니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모두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저는 미사가 끝나고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학을 가고자 하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할텐데..... 만약, 우리 성당에 다니는 학생들만 대학에 들어가면,(하느님이 잘 봐 주셔서) 대학에 떨어지는 다른 학생들은 어쩌지?"

그 후 저는 가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까'
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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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교육을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재물이 행복인 사람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살아가고, 권력이 행복인 사람은 권력을 위해 살아가며, 출세가 행복인 사람은 출세를 위해 살아갑니다. 또한 남을 돕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남을 도울 생각으로 살아가고, 음악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하면서 살아가며, 가정화목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 중에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있고 허용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인간 사회"이며 인간은 잠재적으로 다른 자아를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다면적인 존재인지라 이러한 것들이 단편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복잡하게 얽혀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렇게 얽히고 설킨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는 것까지를 포함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을 이 땅위에 생존하게 하는 자연까지 행복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 교육은 사람을 한 면으로만, 그것도 폭력적인 경쟁을 통해 사회적 주류에 껴야 한다는 야만적인 면(행복)만을 키우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로 상징되는 우리의 삐뚤어진 교육 속에서 다른 자아를 인정하고, 다른 자아와, 나아가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할 자연의 행복까지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될 것입니다.

이 속에서 인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장애인은 여러 면 중 어떤 면으로만 보여질까요? 아니 장애인도 다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새로운 학교의 그림]

서울대로 상징되는 교육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자아를 인정하지 않은 채, 혹은 적당히 이용한 채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
공교육으로 이야기되는 국가 중심(국가가 교육을 독점한) 교육과정은 이러한 저차원적이고 폭력적인 경쟁의 흐름을 바꾸어 자아를 이해하는, 스스로 배우며 발전하는 교육으로 돌려 놓기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지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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