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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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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교육이 우리 교육에 과연 대안인가?

                                                       김용근/강원 속초 교동초등학교 교사

두해전에 '우리 교육'에 루돌프 슈타이너와 발도르프 교육이 이 땅에 가능한가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단순히 새로운 교육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지만 지금은 다른 뜻을 가지고 접근해 보고자 한다. 혼란에 가까울 정도로 아니 또다른 유행을 몰고다니고 있는 슈타이너 교육이 이 땅에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가(여기서는 발도르프 교육이라 하겠다)

그 동안 어설프게나마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지만 지금으로서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발도르프 교육 전문가(?)라 지칭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위크샾을 하고 있지 않나, 교육부에서는 이번 겨울 방학때 발도르프 교육을 화상 교육시키겠다고 하는데 제대로 발도르프 교육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기 위해 강사로 적극 참여하려고 하지 않나. 대학 교수들 가운데는 학교 현장 경험도 없으면서 자기가 이 땅에서 발도르프 권위자(?)가 되려고 엉터리 같은 책을 써서 출판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발도르프 교육이 돈벌이가 될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 괴테아눔에 저작권을 의뢰하지 않나. 아무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어느 날 갑자기 학교 현장에 발도르프 교육을 하라고 공문이 쏟아질 거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이 애쓰며 꿈꾸고 있는 이 교육도 결국은 실패라는 사슬을 끊지 못한다.

발도르프 교육은 우리 나라에 정식으로 소개된 것에 비해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다. 중심을 제대로 세워 나가기도 전에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에 비해 일본은 어떠한가? 20년 넘게 발도르프 교육을 준비하면서 내년쯤에서야 조심스럽게 교사 교육을 연다고 하지 않는가?

왜 일본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에 발도르프 교육을 못 받으면 무슨 난리라도 나는 것처럼 시끌법적한 우리네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라마다 국민성이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네 국민성으로 볼 때 이것도 냄비같이 금방 끓어오르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 것이 되어 버리지 않나 염려가 앞선다. 발도르프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전부가 발도르프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슈타이너가 원하는 것은 껍데기만 그럴싸한 발도르프 교사를 원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인지학자를 원한다. 그런데도 우리네 모습은 어떠한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에만 빠져서 그것만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가. 뿌리가 없는 나무는 잎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또하나의 유행으로 끝날까 걱정스럽다.

발도르프 교육은 전인적 인간관에 기초한 슈타이너의 교육 이론이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접근이 그리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인지학'이라고 하는 슈타이너의 독특한 인간 이해에 기초한 교육 이론이기에 문화가 각기 다른 모든 나라의 교육에 쉽게 적용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8년 담임제에 맞는 교육 내용, 교과서 없는 교육과정들을 어떻게 적용해 나갈 수 있을까? 단순히 무늬만 가르치려고 한다면 이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오고 만다.  단순히 교사의 그릇된 욕심 때문에 아무런 검증 없이 적용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부정적인 면만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답답함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면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 동안 여러 책에서 소개되어서 여기서는 그 이야기들을 줄일까 한다.  

나는 지금까지 9년이 넘게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천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들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한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연구와 실천들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고, 더구나 이 땅에 맞는 발도르프 교육을 실현해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당장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60년 넘게 고민과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 자기 나라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실현을 해 왔는데 어떻게 3-4년만에 가능할 수 있는가. 아마도 이 땅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훨씬 넘게 걸릴 것으로 본다. 내 경우는 그러한 가능성을 위해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4-5년을 꾸준히 매달리고 있다. 예를 들어 포르멘(형태 그리기) 경우 적용 가능성을 위해 일부러 저학년을 신청해서 시작해서 그 가능성 조금이나마 찾았고, 여기에 우리 전통 문양들을 덧붙여 나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확신과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아 올해 다시 저학년부터 되풀이해서 시작해 볼 생각이다. 물론 내자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슈타이너 교육 사상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하게 적용하고 연구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처럼 무책임하게 위크샾을 통해 방법론만 보이려고 하거나 자신을 발도르프 교육에 권위자인 것처럼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러한 것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가장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발도르프 교육은 이 땅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없다. 금방은 흉내를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뿌리가 없는 나무는 오래 못 간다는 사실. 또한 학교 현장 경험이 없이 머리나 말로만 떠든다면 더욱더 힘들다. 우리 나라에 오는 발도르프 교육 강사진을 봐도 안다. 우리처럼 사범.교육대학 교수들의 학교 현장 경험이 거이 없는 것에 비해 이 사람들은 40-50년을 발도르프 학교 교사로 있었다. 그야말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인지학을 접근하고 있으니 교사 교육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니면 나보다 능력이 나아서 인지 '고야스 미찌고' 가 지은 슈타이너 학교1.2.3 책을 읽고 나서 나름대로 학급에서 몇 가지를 적용하고 있다거나 어설프게 위크샾에 참가하고 나서 실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형태 그리기(Form Drawing) 경우에 하나 하나에는 그 속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이 있는데 어떻게 겉모양만 가르칠 수 있을까? 더구나 학년을 무시해 가면서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슈타이너가 굳이 학년별로 다르게 형태 그리기를 소개한 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런 것을 보면 정말로 우리 교사들은 능력들이 대단한지 무식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능력이 없어서 그런지 형태 그리기 하나를 아이들과 할 때는 어떤 것은 몇 날 며칠을 두고 공부하고 여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준비한 다음에 가르친다. 그만큼 적용이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무엇이 급한지 아무런 검증도 해보지 않고 성급하게 덤벼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발도르프 교육을 하면 당장에 삶에 변화가 있는 것일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동안 내 나름대로 발도르프 관련 자료들을 연구하고 실천했는데 요즘에 그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다. 연구하고 실천했던 사례들은 '우리 교육'에 써 놓은 적이 있어 참고하면 쉽게 알 수가 있다. 그 가운데 '형태 그리기'는 1-5학년까지 각각 150쪽의 책으로 엮어 놓았다. 이것에 대해서 자료를 준비하고 만드는데 꼬박 6년이 걸렸다. 아직도 더 많은 자료들을 덧붙여야 하겠지만 내 몫은 방향과 뼈대를 세우는데 있다. 나머지는 앞으로 발도르프 교육에 뛰어들 사람들의 몫이다. 이 책들을 가지고 3월쯤에는 주위에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할 생각이다. 형태 그리기를 서로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더 좋은 방법과 자료들이 있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다듬어 갈 생각이다. 또한 '우리 나라 전통 생활 문양'도 정리가 다 끝나 학년별로 자료를 만들 생각이다. 이것은 형태 그리기를 우리 것으로 만든 첫 작품이다. 기하학 6-7학년 과정도 마찬가지다. '기질론' 에 대해서도 100쪽 가량으로 정리를 끝냈다. 이 자료에 특징은 단순히 기질에 대한 소개보다는 우리 반에서 어떻게 적용해 갔는지, 우리 나라 '사상의학'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들을 연구해서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놀이도 나이에 맞게 어떤 놀이를 해야 할까 하는 것도 자료로 정리해 놓았다. 단순히 아무 놀이나 아이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 단계에 맞게 놀이를 하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키우도록 하였다. 물론 이것도 우리 나라 민속놀이를 가지고 다시 구성해 놓았다. 이외에도 우리 나라에 맞는 '한국식 발도르프 교육과정'을 짜고 있다. 내가 접근하기 힘든 것은(=오이뤼트미) 뒤로 미루고 우선 가능한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의 틀을 세워 나가고 있다. 물론 우리 반 학급 운영도 이것에 맞게 적용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학급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공작 놀이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회가 있으면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또한 '아이들만이 희망' 이라는 발도르프 교육 소식지로 그 동안 학급에서 실천했던 결과물들을 모아서 내고 있다. 이 소식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8쪽으로 해서 8호까지 내다가 9호부터는 천안에 계시는 윤선영 선생님이 '슈타이너 감각 교육'에 대해서 글을 보내 오셔서 20쪽 가량으로 한 달에 한 번 내고 있다. 부수는 학교 복사기로 하기 때문에 많이 하지는 못하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누어 볼 수 있을 정도로만 펴내고 있어서 여유가 없다. 2월 14호부터는 그 동안 정리해 놓았던 기질론에 대해서 다룰 생각이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이 어찌 보면 어설픈 것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하며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발도르프 교육이 이 땅에 가능한가에 중심을 두고 접근하는 것뿐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내자신이 어떤 위치에 올라서라고 하는 것도 결코 아니고, 단지 발도르프 교육이 무너져가는 학교교육에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천천히 다듬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에 이 발도르프 교육을 하지 못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고 그야말로 소리 없이 아이들에게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천천히 접근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 발도르프 교육의 뿌리가 제대로 내려 참다운 꽂을 피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슈타이너 교육은 우리 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땅에 정식(1997년 9월)으로 소개된 이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음에도 우리에게는 아직은 낯선 것이며,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제도 교육으로 자리잡거나 실천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교과서가 없는 학교와는 달리 국정교과서를 가르쳐야 하고, 8년 담임제, 독립성이 보장되고 일관성 있는 학교 운영, 교장.교감이 없는 학교, 사립학교이므로 학부모들의 재정 부담, 대통령도 정보화 시대에 맞게 학생 개개인에게 컴퓨터 교육을 강조하는데 컴퓨터와 시청각 기자재며 텔레비전이 없는 교육과정, 우리 문화와는 다른 교육 내용에 대한 재구성 문제 따위들 당장에 이 모든 것을 뛰어넘기는 힘들다. 그만큼 준비와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물론 지금 일부에서는 발도르프 교육을 열린교육의 또 다른 방편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부문에서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발도르프 교육은 그러한 교육 방법에 관한 문제가 아니며 근본적으로 교육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인지학)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부분에서 접근은 발도르프 교육의 본질을 왜곡시킬 위험이 많이 있다.

그래서 발도르프 교육은 우리에게 교육을 통합해서 접근하려는 자세와 모든 교육을 예술로 접근하려는 교육 방법은 참된 인간 교육을 위해서는 시사하는 것이 크다. 에포크 수업과 8년 담임제 역시 교과 학습 자체의 효율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 형성의 측면에서도 큰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교과서 중심 수업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즉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다. 75년동안 실험 결과로 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교과 운영의 자율화를 과감하게 추진한 점이 무엇보다도 가슴으로 와 닿는다. 교사 교육의 강화도 더욱 중요한 점을 보여 주었는데 교육 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적극 나서서 하려는 자세와 자율, 창의력이 있는 교사가 가장 필요한 우리에게는 상당히 큰 의미를 준다. 더구나 학교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운영 체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발도르프 교육 방법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교육계에 쓰라린 실패의 경험들을 되돌아볼 때, 교육의 대상과 담당자인 사람이 다르고, 문화 배경이 다른 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근본 원리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한국식 발도르프 교육을 실현할 수 없다.  

*이 글은 '민들레' 2000년 1월호 실린 글입니다. 많은 부분이 내생각과 다르게 글을 편집해 놓았습니다. 여기서는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이 글은 저자의 홈페이지(http://www.waldorf.co.kr)에서 가저왔습니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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