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2009.04.30 10:41

참 특수교육이란

조회 수 16983 추천 수 0 댓글 6

이 글은 지난 3월 초에  '함께웃는 날' 2009년 봄호에 보냈던 원고입니다. '함께 웃는 날'이 나오기 전에 글을 공개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기다리다가 어제 책을 받아보고서야 올립니다.
' 함께웃는 날'에는 제가 보낸 글의 참 특수교육에 대한 제 생각 중 '인권'과 '개인적인 것(privacy)'에 대한 이야기가 편집되어 삭제되었더군요. 핵심이었는데 말입니다....헐.. 한 번쯤 물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몸을 쓰는 '일교육'부분은 원고를 보낼 때 지면상 제가 생략했던 부분인데, 참 특수교육에서는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원본을 그대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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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중심의 일방통행 특수교육을 아이들 중심의 참 특수교육으로.


   저는 1992년 대전의 어느 조기교육실에서 ‘특수교육’이란 것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 이제 막 특수교육을 시작한 새내기 선생에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식사지도였습니다.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 아이가 있으면 몹시 난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자~ 맛있는 밥 먹자~ 꼭꼭 씹어 먹어야지!”
하면서 달래고 어르다가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자 음식물을 입에 넣고 아이의 턱을 내 손으로 움직여서 억지로라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습니다.
‘밥을 잘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환경보존에도 좋고, 식량도 아끼고…….’
밥을 강제로 먹이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좋은 이유는 다 갖다가 붙였지만 내심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선생이고 너는 학생!’
이란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7살짜리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데, 이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려고 숟가락(유아용 플라스틱 숟가락)을 꽉 물고 버티더군요.
‘이놈……. 고집이 참 세구나…….’
저는 억센 손으로 아이의 볼을 누르면서 숟가락을 천천히 집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때,
“뚝!”
하며 숟가락이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숟가락을 보며, 아이를 부러뜨려 내 아래 복종시키는 것보다 나 스스로 부러지고 부러져 아이의 높이만큼 낮아지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둔하게도 우스꽝스런 권위가 부러져서야 말입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특수교육 진흥법’이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으로 바뀌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겨나는 등 특수교육을 둘러싼 외부의 여러 환경들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속에서 함께 생활하다보면 십 팔년 전 숟가락 하나로 둔한 권위를 세우려했던 사람을 닮은 교사들이 아직도 어렵지 않게 보이고, 이런 교사들로 이루어진 학교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학교 식당에서는 고집 센 아이에게 밥을 먹이느라 뒤통수를 치는 모습이 보이고, 아이들은 빠삐용의 죄수처럼 어깨에 손을 얹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치고 있고, 높은 교사들은 자신 마음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재단하며 ‘교육’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요즘 우리 아이들은 집, 주간교육센타, 체육교실, 방과 후 학교 등에서 더 많은 일반인들(공익 또는 유급 보조원, 방과 후 교실 선생님, 부모님, 복지사, 이웃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공부를 할 때, 쉬는 시간에, 걸어서 이동할 때, 버스를 탈 때, 심지어는 화장실을 갈 때도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교육받고 보호받는 우리 아이들과 교육을 하고 보호를 해 주는 일반인들의 말이나 행동을 잘 관찰해 보면 관계(關係)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관계보다는 일방통행이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장애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인들은 힘으로 자신의 의사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말이나 행동을 끝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장애를 가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대화 단절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불이익과 폭력 앞에 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장애인이기에 즐거움을 표현할 수 없고, 장애인이기에 조용히 있어야 하며, 장애인이기에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거나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먹지 말아야 하며, 장애인이기에 다 큰 어른이 유아기적 대접을 받아야 할 경우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장애로 인한 대화의 단절과 유무형의 폭력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누구일까요? 우둔한 질문이지만 곱씹으며 답하면, 장애를 가진 이 아이들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개인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하며, 나만의 개인적인 것(privacy)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사람인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권과 개인적인 것이 존중되는 행복한 삶. 뻔 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뻔 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합니다.  사람사회에 사는 구성원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인권과 개인적인 것의 존중을 기반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대화하여야 하며, 이것이 학교에서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참 특수교육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학교가 지금의 어른들 중심 일방통행 특수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 중심의 참 특수교육으로 변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밑바탕은 평화(平和)교육입니다. 평화라는 글자가 가지는 속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심코 전쟁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혹은 ‘힘에 의한 우위’로 생각하는 평화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평(平)균, 평이, 평심, 평안같이 고르고 가지런한 것과 밥(禾)이 입(口)에 있을 때의 원초적인 기쁨이 평화라는 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평화라는 말 속엔 힘의 차이에 의한 차별보다 균형 있는 삶이 들어 있으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초적인 욕구가 해결된 삶도 들어 있습니다.

  위의 교육받고 보호받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우리 아이들은 부모, 선생님, 장애가 없는 일반인 등과 불평(不平)한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되고, 많은 경우 욕구가 억압됩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욕구는 삐뚤어져 표출되고, 삐뚤어진 욕구의 표출은 고쳐야 할 ‘문제행동’으로 불리게 됩니다. 또한 부모, 선생님, 장애가 없는 일반인들은 그 문제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 아이들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돌고 돕니다.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일반인들이
‘이 아이들이 장애가 없는 일반 아이들이라면…….’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아이를 대한다면 최소한의 평화교육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최소한의 평화교육이 아닌 좀 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평화교육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꼭 포함하여야 합니다.

  먼저 개인 내면의 조화입니다.
  사람은 개인 내에 여러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와 달, 남과 여, 앞과 뒤, 선(善)함과 악(惡)함, 아름다움과 추함, 동물적인 욕정과 인간적인 이성 등 세상의 일반적인 자연현상이 그렇듯이 사람의 마음 또한 여러 색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 색의 마음 중 주된 것이 주변들의 것들을 가지처럼 모아서 한 인간의 자아를 형성하고, 그 주된 마음이 가고자 하는 지향점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자아, 가치관이 형성될 때 주된 마음과 주변의 마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대화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성찰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평화로운 교육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다음은 사람과 사람 간의 올바른 관계맺음입니다. 대학시절에 개인사전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나’를 ‘개인이 지나온 시간과 그 개인을 둘러싼 모든 관계’ 로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막연히 떠오르는 느낌을 정의한 것인데 나중에 좀 더 공부해 보니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사람이 됩니다. 옛 조상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인(仁)’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나면서 가지는 조건과 자라면서 가지는 환경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며 이 또한 마음이 그렇듯이 다양한 자아와 가치관으로 거대한 스펙트럼을 이루며 관계망을 만듭니다. 이 관계망 속의 다양한 자아들이 서로의 차이를 차별화하지 않고 골고루 수긍할 수 있도록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는 것은 평화로운 교육의 다른 면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자연 간의 올바른 관계맺음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연은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정복하거나 다스려져야 할 존재로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핵발전소를 만들어 인간에게 유용하다고는 하지만 핵발전소 때문에 많은 생명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바다를 막아 농토로 만들어 인간에게 유용하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죽고, 사라집니다. 결국, 수많은 생물이 죽어가는 만큼 사람의 평화도 깨어지게 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 또한 자연이 만들어 내는 큰 스펙트럼의 한 색에 불과하다는 간단한 사실을 간과하고 자연과 대화하기를 거부한 결과일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은 균등한 것이다.’(홍대용(洪大容)의 의산문답(毉山問答) 부분)
라는 홍대용의 이야기처럼 사람과 자연은 함께 소중하며 공존해야 할 존재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평화로운 교육에서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평화교육과 함께 참 특수교육을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는 지역교육과 몸을 움직이는 일교육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장애라는 이유로 지역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일부 부모님들은 ‘장애로 인한 아이들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나 스스로의 창피함으로 인해 아이들을 지역사회에 데리고 나가기를 무서워하고, 일반인들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보다가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면 쉽게 참을성을 잃어버립니다.
  또 한 특수학급을 포함한 많은 학교는 학교대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활동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학령이 높은 고등학생은 지역교육이 더욱 필요함에도 일반 고등학교 특수학급의 경우 그 소극성이 두드러집니다. 그 학교 학교장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전반적인 흐름과 학교의 문화는 지역교육에 역행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새로 개정된 ‘2008 개정 특수학교 교육과정’에 의하면 재량활동과 직업교과는 대폭 줄어들고 국어, 수학 등의 인지교과와 예체능 교과가 대폭 늘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관계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홀로 남아 섬이 됩니다. 사람은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 존재감을 가지기에 사회의 관계망이 너무나 초라합니다. 한정된 학교 환경, 막힌 교실 속만의 교육활동에서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은 만들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지역교육은 가능한 많은 교육활동들이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지역사회의 여러 환경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장애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예를 들어, 오전에 등교하여 한 시간 정도는 하루를 계획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역사회의 여러 장면에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식사도 한 후, 하교하기 전에 학교로 들어와 하루의 교육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구조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를 초빙한 종교체험, 예술가와 함께하는 학급의 작은 예술제 등 지역의 여러 자원들을 학교에 불러들여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교육환경과 계획이 수립될 수 있다면 훌륭한 지역교육이 될 것입니다.

  '일'이란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써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사람의 의식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교육'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일에 대한 본능'을 깨워주고 북돋아 주는 활동입니다. 일교육을 노작교육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는 않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교육은 노작을 통하여 전인교육을 실현시키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인간 내면에 존재한 '일에 대한 본능'을 일깨우려는 것으로 조금 넓은 편입니다. 이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일이란 무엇인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학자가 아닌지라 인간 본능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일에 대한 욕구는 식욕, 수면욕, 성욕처럼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본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에 대한 욕구는 성욕처럼 충족되지 않으면 죽지는 않지만 충족되었을 때 새로운 변화를 가지게 하는 욕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열 세살에서 열 여섯살까지 투병생활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의 꽃을 피우는 시기(사춘기)에 많은 또래의 사람들과 단절된 채, 혼자 집 안이나, 병실에 누워 살기위한 투쟁을 심하게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시기에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일'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또래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놀고, 웃고, 고민하는 등 몸과 머리를 쓰면서 무엇인가를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일에 대한 욕구입니다.

  일에 대한욕구, 이는 개인적인 욕구가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욕구입니다. 정신지체, 정서장애인의 경우도 일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대화의 단절'로 인하여 스스로 '의식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일 뿐이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신지체,정서장애인의 경우 몸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일교육이 더 적합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교육을 통하여 머리를 써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의식적'인 활동에 대한 본능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기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행해지는 몸을 움직이는 일교육은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 사람과 자연과의 대화를 극복하는데 기여하여 참 특수교육을 현실화하는데 중요할 역할을 합니다. 집 만들기, 텃밭 일구기, 바느질 하기, 가구 만들기 등 몸을 움직이는 여러 교육활동들이 지역교육과 결합되어 시도된다면 행복한 특수교육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한번은 동료교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형, 우리아이들에게 학교란 뭐야? 한 마디로 하면! “
“꼭 한 마디로 해야 해?”
“아니, 두 마디 이상도 괜찮아.”
“음…….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란 말이야, 집이고, 놀이터이고, 사회가 아닐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관계가 있다는 게지.”
위에서 숟가락이며 평화며 이런 저런 것들을 들먹이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참 특수교육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란 위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단순하게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학교는 집처럼 평화롭고, 놀이터처럼 즐겁고, 사회처럼 관계망이 형성될 수 있도록 조직화되고 체계화 된 곳’
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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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현 2009.04.30 22:21 SECRET

    "비밀글입니다."

  • profile
    영구만세 2009.05.11 22:18

    잘 지내시죠?

     여러 작은 빛이 모이면 큰 거시기도 이길 수 있다죠?

    담아 가세요. 사람의 생각은 나눠야 오해가 없고 더 좋은 방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 ?
    박용연 2009.05.02 00:23

    선생님!

    공존의 의미가 새삼 다가오는 요즘이랍니다.    관계가 없는 일방통행...어디 우리 아이들 얘기 뿐이겠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은체 서로 자가 잘났다고 믿고 우기고 설득하려하며 일방통행하는 어른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원하고 있는 모습일까?  정작 아이들은 천진무구 남을 헐뜯고 비방하지 못하는 천사의 마음인데 이런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이런 아이들을 방패삼아 마음껏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짓들을 일삼고 있는것은 아닌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말들을 잘하고 똑똑하고 자기만 옳은지...저는 요즘 이런 사람들에게서 염증이 납니다.

    좀 덜 똑똑하더라도 좀 어리숙하여 늘 손해를 좀 보더라도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소통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오월 햇살 좋았던 날...그래서 슬펐던 날...선생님 집짓기프로젝트 열혈 팬 민정맘 넋두리였습니다.

  • profile
    영구만세 2009.05.11 22:12

    사람들이 참 밉습니다.
    아둥바둥,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공기도 나누기 싫은 듯 찌푸리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쓸개라도 빼 줄 양 눈웃음을 치죠.
    그리고 늘 좋은 '생각'만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참 좋을 때가 있습니다.
    아둥바둥,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나눌 것이 없으면 미소라도 나누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래도 조금은 있으니까요.
  • ?
    도금비 2010.09.10 01:43 SECRET

    "비밀글입니다."

  • profile
    영구만세 2010.09.13 22:10

    자주 들러 주세요.^^

    새학기 시작해서 아직 글이나 아이들 수업에 대한 것을 많이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명절 지나면 아이들 수업이나 몇 가지 글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함께 나누고 싶은 화제가 있어 글을 좀 써야 겠다는 마음은 있는데, 분주하기만 할 뿐...


    좋은 특수교사가 되어 다시 만났으면 정말 좋겠네요.

    앞으로 5년 정도만 기다리면 같은 교사로 만나겠죠?

    꼭 기억하시고 찾아오세요. 맛있는 식사라도 함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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