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사-심승현 선생님편

조회 수 14727 추천 수 0 댓글 5

사진 072.jpg 가수와 특수교사


지난 일요일 밤, 늦게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틀었습니다.

오래되었지만 기억이 생생한 여러 노래들이 나왔습니다. 양희은씨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더군요. 오랜 세월 노래를 해 오던 분이라 그런지 부르는 노래나 무대에 서는 모습 등에서 연륜이 묻어났습니다.

어디, 노래 부르는 이만 그렇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한 분야에서 10년, 20년 지속적으로 일하다 보면 이력이 붙고, 이력과 함께 연륜이 생깁니다. 전문성도 생기고요. 10년 경력의 목수, 20년 경력의 엔지니어, 15년 경력의 의사, 30년 경력의 교사, 17년 경력의 광부, 5년 경력의 청소부, 25년 경력의 비서…….


다양한 직업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특수교사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륜, 경륜?……. 특수교사인 나에게 '교사'로서 살아온 삶의 날만큼 연륜과 전문성이 쌓여가고 있기는 한 걸까? 특수교사의 전문성이란 무엇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퍼졌습니다.
일반교사의 경우 하나의 교과서로 여러 반을 몇 년 정도 지도하다보면 교과에 대한 지식은 의식하지 않아도 외워질 것 같습니다. 교과에 대한 전문성은 연륜과 함께 채워지고, 학생지도에 대한 연륜들도 세월과 함께 거의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도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노력하지 않는 이에게 전문성이나 연륜 등이 생긴다면 세상은 참 불공평한 곳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특수교사는 어떨까요? 아이들이 매 해 다르다보니 가르치는 것도 매해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지난해에 적용했던 것들이 올해는 적용해 봤자 필요 없는 것들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수준에 의해 교육과정이 매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보니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매해 새롭습니다.
일례로, 지난해에는 곱셈을 하였는데, 올해 아이들과는 덧셈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많다, 적다'같은 기초적인 인지수업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도 있죠. 같은 학년인데도 말입니다. 이렇다보니 특수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특수교사에게 전문성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있다면 무엇이 특수교사의 전문성일까.
특수교사의 전문성을 생각하며 떠오르는 세 가지 단어(가르치는 능력, 끊임없는 연구, 아이들과의 정서적 교감)와 현재 특수교육 판에 실재하는 왜곡된 전문성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특수교사의 전문성

가르치는 능력 그가 어떤 교사냐를 떠나 교사라는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능력입니다. 교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교육내용을 선정하고 계획을 세워 일정한 순서에 따라 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첫번째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지체․정서장애 아이들의 인지적 발달을 도모하는 것은 어릴수록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장애가 심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의 경우 전 생을 통틀어 가장 좋은 생리적 토대(언어의 발달, 뇌의 발달이 계속 되고 있는 등)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개인차가 심하다 보니 이런 생리적 토대는 보이지 않는 요소입니다. 또한, 교육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잘 배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교사 본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인지적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쓰기와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인지, 아이들의 '학습수용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지(수행평가 같은)1……. 

잘 가르치는 것이 분명 교사 전문성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특수교사가 잘 가르치는지, 못 가르치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상당히 주관적인 눈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평가로도 그것을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연구 교사에게 '가르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연구입니다. 좀 더 나은 교수방법과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것은 부지런함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학교의 교사들의 경우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많은 특수교사들이 석사나 박사학위를 따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 또는 방학을 반납하고 열심히 대학원 공부를 하여 학위를 땁니다. 참 부지런합니다.

여러 석사나 박사의 논문을 읽어보면 나름대로의 의미를 도출였다고 주장합니다. 동화를 들려주는 수업을 했더니 인지력이 향상되거나, 비장애 학생과 통합하여 수업했더니 장애정도가 감소하거나,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했더니 교과의 성취도가 높아졌거나, 특정 운동이 정신지체인(또는 정서장애인)의 사회성을 좋게 하더라 등등…….
그런데, 저는 수 없이 많은 석사들과 박사들의 이런 논문들을 보면서 가끔 농담조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특수교육과 관련된 많은 학위논문들이 있는데, 그 논문들이 모두 옳다면 아마 우리 나라는 금세 장애인이 없는 국가가 될 것 같아……."

물론, 특수교사의(교수도 포함) 이런 여러 연구들이 장애학생들의 꾸준한 통찰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리라 믿지만 어떤 경우엔'제한적 환경'이라는 말로 말장난을 일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 연구자의 반 아이들은 전혀 변화가 없는데, 연구자의 논문 속에서 아이들은 거의 장애를 극복한 경우도 왕왕 보입니다.

전 박사나 석사가 아닌지라 그들의 심오한 연구를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서 부딪치는 몸과 마음입니다. 장애인의 교육과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연구야말로 참다운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수교사들이 대학을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대학들이 특수교육과 관련된 대학원을 개설하여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연구들이 특수교사의 전문성과 관련이 있을까요?


정서적 교감 우리 아이들이 가지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화'입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죠.

사람들이 커 가는 과정에서 주변 환경2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과 주변 환경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으며 우리는 보통 이것을 '관계'라고 부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반인과 더불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가진 기질적인 문제로 인한 대화의 단절과 함께 주변 환경이 가지는 문제에서 오는 대화의 단절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 중 주변 환경의 문제에서 오는 대화의 단절이 더 큰 원인입니다.

일반인들은 자아가 형성되고 그 자아의 힘으로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은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만큼 자아의 힘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신지체․정서장애인들은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열려있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정서적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특수교육의 더 많은 부분은 이러한 주변 환경을 잘 조직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특수교육은 인지적 학습의 신장과 함께 정서적 안정이 매우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주변 환경의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는 아이를 부모나 교사가 바라는 방향으로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참특수교육은 이러한 환경3을 잘 조직화하고 지속성을 유지하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는지 어떻게 계량화하여 측정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 물어봐서? 부모의 판단에 의해? 이 또한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주관적 판단은 현재 위선의 교육판에서 이루어지는 근무평정에 의한 학교장의 주관적인 평가와 내용상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4


현실에서 그려지는 전문성


측정할 수 없고,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했지만 여전히 모든 교사에게 잘 가르치거나 열심히 연구하는 일, 그리고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등의 능력은 교사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이 잘 갖춰진 특수교사들이 얼마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참특수교육을 이루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나눠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이야기처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하니까요.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현 특수교육 현장에서 이는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5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는 계량화될 수 없을 뿐더러 겉으로 봐서는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특수교사가 어떻게 교육활동을 하는지, 그 방향이 옳은지, 더 나은 교육방법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하여 아무도 열어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인 이야기 같지만 특수교육의 전문성을 알아볼 요소는 있지만 그 요소를 측정할 객관적인 것이 없다보니 현실의 특수교육 판에서는 그 이외의 별 이상한 것들이 특수교육의 전문성이라는 탈을 쓰고 존재합니다.


잡기 현재 특수교육 판에서 이루어지는 ‘잡기’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간단하게 정의해 보면,
잡기란 아이들의 ‘문제로 보이는 행동'에 매를 들거나 호되게 야단을 쳐서 대응하는 것
입니다. 이는 현실적인 특수교육 판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왜곡된 전문성의 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지 않거나(못 앉거나), 밥을 먹지 않거나(못 먹거나), 공부 시간에 집중하지 않거나(집중하지 못하거나), 오줌을 싸거나, 오물을 집어 먹는 등의 잡다한 여러 행동에 ‘문제’의 딱지를 붙이고 매를 들어 애를 잡습니다.
어떤 선생님의 경우
“얘들은 원래 이렇게 해야 해!”
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정말 무식하게 아이들을 잡는 경우도 봤고6,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선생님이 자랑스럽게 당신 반의 아이를 잡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또한 많은 경우 특수교사들은 아이들을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학교 관리자, 부모님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잡기’는 특수교육의 해괴한 '문화'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수교육을 하는 이들은 이 문화 속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도 92년 처음 특수교육 판에 들어섰을 때 그랬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특수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유독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해괴한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뿐이죠.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 해괴한 문화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이 ‘잡기’문화가 특수교사 전문성으로까지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경우 자리에 착석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 아이가 왜 자리에 앉지 않으려 하는지 고민하고, 먼저 아이를 이해하며 서로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천천히 기다리는 선생님보다 ‘잡기’를 통해 아이를 자리에 앉힌 선생님이 더 나은 것처럼 보여집니다. 부모들의 경우에도 아이 행동의 이유나 과정보다 그 결과에만 집착하다보니 ‘잡기’를 잘 하는 선생님을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전 아직도 약 4년 전, 아이들을 잡아서라도 문제행동을 없애야 한다는 다른 선생님의 말에 기간제로 잠시 같이 있던 한 선생님의 말이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때려서 문제행동을 못하게 할 바에야 왜 특수교육을 전공했습니까. 그냥 힘 센 아무나 특수교육 하라고 하면 되지…….”


사무(일)처리 능력 현실적인 특수교육 판에서 그려지는 왜곡된 전문성의 또 다른 모습은 사무처리 능력입니다. 개별화 기록을 작성하고, 누가기록 쓰고, 더 많은 학습지를 만들고, 행사를 보기 좋게 기획하고7, 때론 누구 보기 좋으라고 설문조사 같은 데이터도 조작하고…….

이런 일들은 수치로 계량화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얼마나 사무(일)를 누구의 마음에 들도록 잘 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무를 잘 처리하는 것도 교사로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사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충성도 잡기, 사무(일)처리능력과 함께 현재 특수교육 판에서 요구되는 또 하나의 해괴한 전문성은 '충성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충성'이란 말이 조금 느낌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사전적 표현으로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란 뜻으로 참 좋은 말입니다. 문제는'대상이 누구냐?'는 것이죠.

교사는 기본적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아니,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직업인('프로'라고들 하죠.)은 누구나 충성해야 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을 들여 교육하여야하고, 물건을 파는 이는 물건을 사는 이에게 진정으로 우러나는 정성으로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국민을 받들어야 하고, 자식들은 진심으로 우러나는 정성으로 부모님들을 봉양해야 합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정성을 쏟는 것이(충성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충성의 대상을 잘못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위로는 특정 이념이나 계층, 종교에 충성하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자신에게 월급 주는 국민들을 홀대하는 하급 공무원까지.

특수학교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의 사안이나 내용 등이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가, 합당한가를 따지기보다 윗분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윗분들 보기에는 어떨까 등을 먼저 생각하고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일수록 교감이나 교장, 교육장, 장학사 등 교육계의 고위직에 더 많이 진출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대상을 향한 충성. 애석하게도 이것이 현재 특수교육 판에 실재하며 교사를 재는 해괴한 전문성 중에 하나입니다. 이 해괴함에 잘 부응하면 담임 일 년 하지 않고도 교감 자격을 딸 능력이 생기며8, 윗분들에게는 사랑을 받습니다.


새소리 듣기

산에는 산새/들에는 들새/물에는 물새/들고 나는 새/하고 많아도/울음소리 예쁜 새는/열에 하나가 드물지./웬일이냐구?/이유는 간단해./듣는 사람이/새가 아니란 거야.(‘이문구’의 ‘새’ 전문)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제 홈페이지를 장식할 때 쓰기도 했고요.

이문구님의 이 시가 좋은 이유는 ‘다름’에 대한 통렬한 ‘돌아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예쁜 소리를 내는 새, 풀, 나무, 곤충, 강, 산, 바다들이 즐비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가 예쁘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뻔한 이야기죠? 사람은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는 넓은 자연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소리를 내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봅니다. 이 아이들이 나름대로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며 말합니다. 하지만 이문구의 ‘새’에 나오는 사람처럼 우리 대다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가 아닐지라도 그는 우리가 맞습니다. 한 생명이며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고 말하며 다른 인간에게 관계를 갈구하는 한 인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 특수교사의 전문성은 아이들을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참 특수교사의 전문성이 아닐까요? 조금 해괴한 현재의 특수교육판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1. 제 경험상 어떤 경우엔 아이의 인지적 발달이 '성숙'에 의한 것인지, '교육'에 의한 것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2. 물리적 환경과 교사, 부모등 주변인들의 정서적 환경 모두 포함합니다.

3. 여기서도 환경이라 함은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모두 포함합니다.

4. 본래 교육이란 것의 본성은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독립군을 때려잡고 천황에게 충성하자고 가르치던 일제 강점기의 그 교육 관료들로부터 현재 교육을 좌우하는 교육 관료들로 이어지는 이들의 출세를 향한 단선적인 뇌구조의 발달이 아이들을 입에만 담는 위선적인 교육판을 만들지요.

5. 일반교육현장은 어떤가요? 특수교육 현장은 일반교육 현장보다 약 15~20년 정도 뒤쳐진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상황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6. 초기엔 정말 정신지체․정서장애 아이들은 잡기로 길들여지는 존재인줄 알았습니다. 엄청난 차별의식이죠.

7. 그것도 아이들을 중심에 세우기보다 어른들이나 높은 분들을 중심에 세우는-예를 들면 이런 것

8. 이것과 관련된 글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 글이 조금 거칩니다. 나름, 오랫동안 다듬었는데, 별 진척이 없네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의견 바랍니다.

Who's 영구만세

profile

모두 같으면 재미 없는 세상.
아름다운 꽃과 나비 벌레
그리고 사람 모두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세상.

Atachment
첨부 '1'
?
  • ?
    하도롱빛 2009.12.03 13:50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제가 부단히 노력하고 집중해야할 분야입니다. 늘 많이 배우고 갑니다.

  • profile
    영구만세 2009.12.03 14:32

    앗! 하도롱빛님 블로그가 사라졌네요? 간만에 들러 보려 했더니 말입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저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지요...

    건강한 날 되세요. 하도롱빛님.

  • ?
    하도롱빛 2009.12.03 20:13

    앗. 제가 댓글 쓸 때 홈페이지에 주소를 안적어서 그런가봅니다^^

  • ?
    다영 2012.07.17 10:02
    참... 할말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맞는 말들입니다. 어쩜 그렇게 제 마음을 썼나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제 생각이 맞는지 모르지만 선생님 앞에서 5년 정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는 좋은 교사만 만난다면 좋은 교사에게 좋은 학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과 악을 공존시키면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
    나캔디여 2012.10.03 18:03
    정말 완전 200% 공감하는 말씀이시네요~ 2009년에 작성한 글을 오늘에서야 접하게 되었지만, 기간제교사로서만 10년 세월을 넘기며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더라도 정말 완전 공감!!합니다... 올 한해 자폐성장애 1급인 제 애제자를 접하면서 정말 아이의 마음읽기가 얼마나 특수교사로서 중요한지 깨달아고 있답니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돼 새롭게 힘을 얻고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 참특수교육
  • 심돌이네
  • 특수교육 자료실
  • 우분투
  • 커뮤니티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