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것

교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1.다면적인 인간

by 처음처럼 posted Jul 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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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면적인 인간

아주 어릴 적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란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의 공산당 읍장 페뽀네와 그의 친구인 힘 세고 무식해 보이는 돈 까미로 신부간의 싸움과 우정이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따듯한 이야기로 펼쳐진 소설이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인지라 그 분위기 이외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장면, 다섯 자루의 초에 얽힌 이야기, 벼락맞은 읍사무소와 성당이야기, 그리고 여러 가지 일에 감초처럼 끼어 일을 중재하는 예수의 재치있는 이야기 등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여기,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고, 읍장이면서, ........ 인 페포네가 왔습니다."
한번은 공산당 읍장 페뽀네가 무언가를 항의하러 성당에 찾아가 큰 소리로 화를 내며 까미로 신부를 부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페뽀네를 보며 까미로 신부는 태평하게
"다른 사람 다 가고, 페포네만 들어오도록 하세요."
라면서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래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이 결코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 소설의 이야기로 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은 "교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앉았지만, 글도 말처럼 한 번 쏟으면 담기 어려운지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도 다듬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고,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 다 가고 페뽀네만 들어오라'는 까미로 신부의 말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면적인 존재입니다.
한 개인은 그가 가진 생각과 표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 주어진 사회적 위치에 따른 표현양식 등 나(我)와 너(他), 그리고 우리(社會)라는 관계 속에서 서로 얽혀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 냅니다.

마당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마당 쓰는 개인은 마당을 쓸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더러운 마당, 깨끗이 쓸어야지....'
'조금 더운데.... 쉬었다가 할 까?'
'아냐, 빨리 쓸고 집으로 들어가야지...'
.......

마당을 쓰는 사람을 보고 주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참 부지런한 사람이군'
'별난 사람이야. 마당을 쓸려면 물이나 뿌리던지....'
'야, 저 집에 오늘 손님이 오나....'
.......

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개인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빠가 모범을 보여야지....'
'이거 하면 엄마가 용돈을 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이 기관의 장인데, 이런 것을 해도 되나....'
'아무리 내가 청소부지만 사람들 너무하네....'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

나(我)와 너(他), 그리고 우리(社會)라는 관계가 서로 섞이면서 그 자아는 자라고, 성장하여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온전한 자아(참과 거짓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요...)는 다시 개인의 다면적,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자아와 개인의 다면적, 사회적 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떤 모습의 존재일까요?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 직장의 부하, 어떤 이의 친구, 어떤 이의 선배, 어떤 이의 후배................ 이 많은 관계 속에서 "교사"라는 부분을 똑 떼어 그 모습을 그려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계속 이어짐.>
* 심승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2-26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