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사-심승현 선생님편

** 다음은 예전에 교지에 실었던 원고입니다. 교지에는 지면 사정상 모든 내용을 다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글은 원본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 생활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잡다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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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고민이라는 것은 『'교육과정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고 단순무지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이 엄청난 주제의 글들을 써 낼 수 있을까? 정말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우리의 교육과정이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외국의 교육과정보다 더 상세하게 잘 만들어지는 이 신비로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같은 내용을 가지고 이름만 바꿔가며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과 중심의 엄청난 교수항목들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등등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자가 아닙니다. 다만 학생들의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하루 하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교사일 뿐입니다. 학문적인 일은 여러 학자들이 잘 설명하고 논할 것이며,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반박하면서 '학문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삶 일부분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것, 교사 개인으로서 가지는 결코 '학문적'이지 않은 생각들에 대한 글이라면, 저도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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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지도하에 학생이 배우는 모든 교과와 교재'
'학교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가지게 되는 모든 경험'
'구조화된 일련의 의도된 학급결과, 학문에 내재된 지식 탐구과정의 조직'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가지게 되는 경험의 총체'
.........
위 이야기는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한 교육과정에 대한 정의입니다. 교육과정은 백명의 학자가 모여 그 정의를 이야기한다면 백 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할 정도로 명확하게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그만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겠지요. 저는 학자가 아니므로 '학문적'이지 안지만 평소 제가 생각하는 교육과정을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교육과정은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교육과정입니다. 어쩌면 장애학생만 보아온 제 짧은 생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재물이 행복인 사람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살아가고, 권력이 행복인 사람은 권력을 위해 살아가며, 출세가 행복인 사람은 출세를 위해 살아갑니다. 또한 남을 돕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남을 도울 생각으로 살아가고, 음악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하면서 살아가며, 가정화목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며 복잡하게 얽혀 나타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렇게 얽히고 설킨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는 것까지를 포함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을 이 땅위에 생존하게 하는 자연까지 행복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1946년 미 군정하에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학자들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1955년 제 1차교육과정이 발표되고, 지금 제 7차 교육과정이 실행되는 50여년의 세월동안 우리 교육과정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행복보다는 오직 '서울대'로 상징되는 극심한 경쟁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름표는 교과중심이니, 학문중심이니, 인간중심이니 많이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교육과정의 중심에는 개인과 주위의 행복보다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보다 많이, 빠르게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숨어 있습니다.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어떻게 나의 행복과 더불어 남의 행복까지 걱정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반, 같은 짝이라도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우스개 말을 할 정도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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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특수학교에 근무한지 올해로 9년차입니다. 그 동안 여러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생활하였습니다. 어느 학교에나 교육과정은 존재했습니다.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각 교과마다 가르쳐야 할 목록들이 있고 그것들은 scope와 seguence에 따라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잉글리쉬는 아니고 콩글리쉬는 더욱 아닌 영어맹인 제가 다른 나라의 교육과정을 조금씩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교육과정을 보면서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과정이 너무나 세세하게 잘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외국의 교육과정은 5~6년에 걸쳐 많은 연구 속에 한 학교의 교육과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우리 나라 특수학교 교육과정은 짧게 2주, 길게는 3~6개월이면 모두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몇 개 보지도 않은 다른 나라의 교육과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옳고 그름, 또는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려 함이 아닙니다. 선진국의 그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학생 수와 교사 수의 비율, 재정적 지원의 정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것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외국의 교육과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교육과정에서 많은 기간동안 학생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것과 적어도 우리처럼 빠르고 신속하지 않게 교육과정을 만들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신비스럽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속함과 정확함이.

4
지난 9년간 저는 세 개의 교육과정을 접했습니다.(제 5차-'89, 제 6차-'95, 현재의 제 7차) 고백하건데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교육과정이 변화하였지만 제가 가르치는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도 교육과정에 '분수 알기'가 있다는 이유로 1을 '더한다'는 의미도 모르는 아이들을 붙잡고 '~등분', `분모가 말이야~',`색종이를 4등분하여~'라며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생활단원 중심 교육과정.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이들 주변의 사람들-부모, 형제 등-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 아이가 `지역사회 환경에서 가능한 한 독립적이고, 생산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굳이, `생태학적 접근'이니 `탑-다운 접근'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가 만난(만나는) 많은 동료들은 이미 제가 교직에 첫 발을 딛던 그 때
" 우리 아이에게 1,2,3,4가 뭐 필요 있어요. 집 잘 찾아가고, 집에서 부모 말씀 잘 듣고, 뭐 그러다가 집안 일이나, 주변에 일할 곳이 있으면 일 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 뭐 이런거 있쟎아요. 청소하기나, 밥 해 먹기 같은....."
라고 말하며 요즘의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을 말했습니다. 단, `학문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요즘은 우리학교를 포함한 많은 학교에서 생활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교육과정에 `교통기관 이용하기'나 `몸치장 하기', `라면 끓이기' 등이 등장하는 등 실로 생활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짜여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간을 교내에서 보내는(보내야 하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 교사가 아이들에게 조리에 대하여 지도하려고 `라면 끓이기'라는 제재를 내 놓을 때 대부분의 학교를 경영하시는 분들은
" 거~ 불 안나요?" 라거나 " 가사실에서만 해요" 또는 "어떤 교과시간인데 그런 것을 해요?"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어떤 교감선생님께서는 실제 제가 '라면 끓이기' 라는 제재를 들고 들어갔을 때, "공부나 해~" 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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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이란 무엇일까요?
문자 그대로 학생 주변환경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상황을 단원으로 하여 아이들에게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은 생태학적 접근에 기초합니다. 이는 환경 내의 구조와 자극이 교수 내용과 방법 선정에 기초를 제공한다는 말로, 실생활 환경 자체는 교육한 "내용"을 제공하는 동시에 교수할 적합한 "장소"를 제공하게 됩니다.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이 잘 실행된다면, 정서장애 학생이 통합된 지역사회 환경에서 성인으로 생활하고, 직업을 가지고, 여가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기능적 기술"들을 익히게 됨으로써 졸업 후 일반사회와 조금 더 통합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이 교육과정이 잘 실행되지 않고 종이 위에서만 머문다면, 실생활에 필요한 과제(또는 상황)의 학습은 과제분석의 나열에 그치고 지식전달에 소홀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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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대로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이 성공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학교를 경영하시는 분들의 확고한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경영하시는 분들이
위의 경우처럼 여전히 `가나다라...' `1234...'류의 교과(학문중심의)만 고집한다면 생활단원 중심의 교육과정은 종이에서만 실현될 것입니다.
둘째, 교사는 육체적인 활동에 좀 더 허용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생활중심단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실제로 몸을 부딪히며 많은 활동을 하여야 합니다. 교사로서는 다리 품을 파는 일이 많아지고 이것 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한다면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은 교실 내에만 머무를 것입니다.
셋째, 부모의 적극적인 협조(적어도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특수교육에서 가정과 학교의 연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넷째, 주제 중심의 융통성 있는 시간표 운영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에서 고시된 법정 시간수가 있지만 좀더 융통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을 잘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라면 끓여 먹기'라는 주제가 있다면 학생들이 가게를 찾고, 물건을 사고, 화폐를 계산하고, 버너를 사용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일련의 활동은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약 3~4시간) 이 주제에는 국어, 사회, 수학, 자연 등의 교과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자의적인 판단인지 몰라도) 만약 국어, 사회, 수학 등의 시간을 정확하게 운영한다면 이 활동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국어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제 중심 학습도 허용하는 융통성 있는 시간표를 운영한다면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또래집단과 그 지역사회를 고려한 교육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학교의 생활단원중심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아이들 또래집단의 경험과 그 지역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 위치한 정신지체, 정서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의 고등부라면, 요즘 같은 가을에는 `벼 베기 돕기-참 나르기, 낟알 줍기 등'나 `과일 따기 - 사과 따기, 상자 옮기기 등' 같은 그 학생이 농촌 지역에서 자신과 주위 사람의 삶에 행복을 줄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도시지역에 위치한 학교에 다니는 고등부 학생이라면, `당구장 놀러가기- 위치 찾기, 이동하기, 돈 지불하기 등', `친구집에 놀러 가기- 이동하기, 먹거리 사기 등'처럼 그 또래 아이들의 문화에서 행해지는 것들이 계획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기에 저도 보았는데 의외였습니다. 화려한 영상도, 로멘틱한 이야기도 없이 딸의 친구와 눈이 맞은 남편, 출세만을 최고의 의미로 보고 다른 갑부와 놀아나는 아내, 아빠를 죽이고 싶은 정도로 미워하는 딸 등이 서로 얽힌 이 이야기가 어째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체면따위는 벗어 던진 일상의 진실함이구나....'
라구요.

원고청탁을 받은 뒤 생활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생각은 잡다하리만큼 불쑥불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일상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보는 느낌으로 적었습니다. 아무리 잘 짜여진 교육과정이라도 실행되지 않는다면(못한다면) 그것은 낙서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그리고, 구슬을 꿰는데는 그것을 꿰는 사람의 노력과 땀, 그리고 협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구요.

* 심승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06-12 16:21)
* 심승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2-26 10:13)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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