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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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타이너교육은 과연 우리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1. 여는 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은 몇 번의 계기적 변화과정을 거쳐 왔다.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교사로부터였다. 슈타이너 교육이 막 소개될 때 나는 공동육아협동조합에 속해있는 ‘우리 어린이집’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애기 어르는 소리, 아이들 노래(전래 동요), 대동놀이, 교육과정의 지역화 등에 대해 초청강연과 연수를 통해 지원하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슈타이너 교육연수를 받은 교사가 있어 인지학, 팔년제 담임, 오이리트미, 에포크 수업 등에 대해 들었는데, 시간표에 대한 태도라든가 이야기, 노래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내 문제의식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용하는 개념이 워낙 특이하고 독일문화 요소가 뿌리 깊어 이론적 소개 및 교육 방법에 대한 참조는 할 수 있지만, 실천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뒤 슈타이너 교육을 열성적으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책이나 직접 만남을 통해 알게 되면서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은 우려로 바뀌었다. 그들의 생각이나 태도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서는 구도적인 열정으로 추구하면서도 우리의 현실과 문화에 대해서는 그 연구와 학습의 중요성을 언급하긴 하지만 몸과 마음은 거기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 문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경우 아기 어르는 소리와 전래 동요를 복원하고 내 몸에 익히는 데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시 풍속과 의식주의 생활의 경우는 인간 사회의 리듬과 전체의 리듬, 생태적 리듬, 외국의 사례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만 그 전모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겨우 그 가닥만 잡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노력해야 나름대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자신의 속한 사회의 문화를 몸에 깊이 새기는 것은 기본이고 그 문화의 관성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 때 시대에 맞는 연구와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슈타이너 초등학교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슈타이너 교육이 단순히 이론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제도로 정착한다는 것은 기층 문화의 수용에 해당된다. 대중문화나 고급 문화와 달리 유치원과 초등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일정한 삶의 방식과 행위 규범들을 몸에 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문화적 영향은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문화와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문화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을 때 과연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이 되어 슈타이너 교육을 한 번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자료를 모으고 슈타이너 교육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도 검색해 보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민들레 김경옥 선생과 얘기를 하다가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글로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다. 처음에는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망설였지만 우리 문화 자원을 복원하고 그것을 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들려고 10여 년간 노력해 온 내 입장에서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 대안 교육과 식민성 문제

슈타이너 교육 이론과 방법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담당자들의 생각과 관계없이 사회적으로는 대안교육운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슈타이너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수용의 사회적 맥락과 한계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펼쳐지고 있는 대안교육 운동은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국가주도아래 억압되었던 사람들의 자주적인 교육참여욕구가 활성화된 것과 우리 사회의 교육학적 상상력을 위해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 역시 많은데,
첫째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인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계급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적 시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현재 대학 진학이 중산층  이상 학생들에게 절대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자립형 사립학교 문제, 영어교육이나 초호화판 유치원 문제 등 빈부 격차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교육개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지배의 조건을 재생산하기 위한 전략의 들러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화교육이다. 대안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역사회에 뿌리 내린 학교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등학교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학생을 모아서 운영하는 방식이나, 친한 사람들이나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인위적인 공동체를 창설하는 방식으로는 참다운 지역화, 즉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환경, 사회·문화환경과 긴밀히 결합된 구체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없을 것이다. 지역화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발휘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사 학생의 교육주체로 나설 수 있는 환경과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대안 교육운동은 그러한 지역기반과 문화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안교육의 식민성 문제이다.
대안교육의 이론가인 고병헌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대안교육의 식민화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대안교육이 식민화 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수용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안교육 운동진영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대안교육 운동 이론가들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인데,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대안교육의 식민화’가 가능한 두 번째 근거는 대안교육운동 이론가와 실천가들의 사고와 행동에 있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대안교육에 관심을 보이거나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이론가와 실천가들 가운데에는 외국의 대안 교육 이론과 사례, 특히 방법을 탈맥락적으로 우리 상황에 적용하려고 한다든지, 외국에서 대안교육운동을 전개하였던 방식 그대로를 도입,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제도교육의 ‘형식’과 ‘내용’이 ‘식문화’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 제도교육의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이 외국의 제도교육 맥락의 뿌리에서 싹튼 외국의 대안교육 경험의 탈맥락적 적용으로 인한 ‘식민화’(제도교육의 식문화에 이은)의 과정으로 돌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와 교육내용, 방법은 미국과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우리사회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 현실의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우리 역사를 살펴보고 내부에서 자원을 찾아가면서 서양의 제도와 학문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삶 자체를 서양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준 것이 그 동안 교육과 관련된 관료와 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는 우리 문화가 다 죽었거나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는 가능한 방식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렇게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우리는 삶의 95%를 과거로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를 거쳤기 때문에 자기 부정의 전통이 없었던 프랑스에 견주어 약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형성해 온 긍정적 부정적 문화의 영향이 80%는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고 있고, 인간관계의 기본 윤리는 유교적인 원리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문화는 단순히 책이나 유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몸짓, 표정, 예의범절 등 구체적인 행동습성이나 성향으로 우리 몸에 새겨져 있고 다양한 상황적 틀 속에서 행동원리로 프로그램화 되어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회의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근대적 기획으로 나타난 학교문화는 또 다른 차원에서 우리아이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다.  질문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 신체 검사를 당연시 생각하는 태도, 공부를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지 자기의 삶의 필요로 느끼지 않는 의식이나 행동은 그 아이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상황과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몸과 마음에  강제적으로 새겨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모습들은 제국주의 지배 이전부터 있었던 모습이라고 하겠지만, 이는 심각한 오해이다. 당시 대다수 민중들은 비형식 교육을 통해 학습했고, 서당교육이나 향교, 성균관 교육 등은 그러한 비주체적인 학습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국주의로 인해 수평적 문화요소인 놀이 문화, 이야기 문화, 마을 공동체 문화 등이 후퇴하고 이 같은 수직적 문화요소가 강화된 것은생활단위의 역동성을 담보하는 수평적 문화가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독재정권의 지배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식민지 지배세력의 의도속에서 형성된 우리 교육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람들, 즉 식민지 인간형을 길러내는 장소가 되었다. 새로운 교육이론.과 교육방법은 이러한 식민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슈타이너 교육 수용과정을 지켜 본 바로는  이러한 식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우 새로운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낡은 모습과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  


3. 슈타이너교육의 기본 전제들

1) 슈타이너는 누구인가?
현재 슈타이너 교육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슈타이너는 예언자, 영혼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한 태도는 슈타이너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슈타이너 사상 역시 그가 살았던 사회와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슈타이너 사상에 대한 몰역사적 이해가 극복되고 그를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독일인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크랄예백인데 당시는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의 속한 땅이었지만 게르만인이었던 그는 독일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독일 문화에 깊이 심취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급격한 변화시기였다. 그 시기, 독일은 여러 나라로 분열돼 있었는데,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있었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 독일을 이루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은 급격한 산업화였다. 19초반까지만 해도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19세기 중반부터 철도와 중공업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해 경제적으로는 영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향했고 도시 생활은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시골에서의 생활하고는 다른 익명성, 물질적 가치관, 공동체 문화의 붕괴 등은 그 시대를 특징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사회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국민에게 의무와 봉사만을 요구할 뿐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일 제국의 가부장적 성격과 독일사회의 미성숙으로 인해 막혀 있었다. 가부장적인 국가는 국민을 다스리고 교육하고 부를 분배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사회복지문제부터 공동묘지의 규칙에 이르는 모든 것을 관장할 정도로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질린 청년들은 기존 제도를 부정하고 경멸하면서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추구했다던 것이 슈타이너 사상형성의 사회적 배경을 이룬다..
다음으로 슈타이너는 사회적 이방인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외로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요한 슈타이너는 사냥꾼이었는데 슈타이너의 어머니와 결혼하기 위해 그가 좋아하던 일을 버리고 철도 공무원이 되었다. 12시간 맞 교대 노동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놀아줄 시간이 없었고 집에 오면 잠에 떨어졌으며 어머니는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슈타이너는 밝고 활달한 가정 분위기가 아니라 외롭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더욱이 아버지가 계속 근무지를 옮겼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마을에서 그는 항상 이방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친구도 없었고 이웃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비 체험을 했다는데 이모가 자살했을 때 그 광경이 멀리 있던 슈타이너에게 보였다고 한다.  또 학교에 다닐 때는 수학과 기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역시 그가 현실 생활보다는 어떤 본질을 추구하는 성향을 형성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속에 자란 슈타이너는 개인의 내적인 정신체험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당시 청년들은 가부장적인 국가를 경멸하면서 새로운 생활 양식을 추구했는데 현실 참여적인 사회주의가 그 한 흐름이었다. 그런데 귀족이나 일부 중상층 출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현실을 벗어나서 자신의 내면 속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신비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신비체험과 신비주의가 모두 보수적 사상인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미륵사상이나 동학. 이슬람교의 수피즘. 서양중세의 천년왕국설같은 것은 종교적인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말을 완전히 장악하고 민중을 억누르고 있을 때, 태초의 순수함, 에덴동산, 미륵정토를 내세워서 말의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슈타이너 신비주의는  그의 주류사회에 대단 강한 지향성, 교제범위의 귀족이나 중상층 편향으로 인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사회주의,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서 일관된 반대입장을 취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2) 슈타이너 교육의 기본 전제들
현재 슈타이너 교육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8년제 담임이라든가, 오이리트미, 에포크 수업, 선그리기와 같은 교육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 그 전제가 되는 인지학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는 이해의 어려움 때문인데,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인도의 베단타 철학·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헤켈의 진화론 등이 결합돼 있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생소한 느낌과 함께 여러 문화 체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슈타이너 학교의 교육활동은 슈타이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의 인지학을 알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깨달을 수 없다.
인지학은 ‘Anthroposophy’ 라고 하는데 이는 ‘안트로포스(사람)’와 ‘소피아(지혜, 지식)’이 합쳐진 말이다. 인간에 대한 학문이란 뜻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정신적 본질에 대한 학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내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을 해보았다.

(1)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와 다른 독자적인 정신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한 정신세계는 현실세계처럼 관찰할 수 있고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 사람만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눈과 귀를 가지려면 스승의 지도를 통한 신비체험과 수련을 해야 한다.

(2) 인간은 물리적 신체와 정신,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 신체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며, 정신, 영혼은 정신 세계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분해되고 정신과 영혼은 혼의 세계와 정신 세계를 통해 정화되어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불교와 달리 인간만이 윤회를 할 수 있음)
인간이 기질(담즙질,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은 유전이나 환경 요인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전생에 어떠한 체험을 했는가에 달려있다. 즉, 성격은 전생의 체험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현재의 삶을 통해서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3) 물리적 신체와 정신은 다른 기원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결합하기 어렵다.
그래서 처음 탄생할 때 인간은 물리적 신체만 탄생하는 것이고 에테르체(생명체), 아스트랄체(감정체), 자아체는 막에 싸여 있다가 7년 단위로 탄생한다. 에테르체는 7살, 아스타랄체는 14살, 자아체는 21살에 탄생한다. 그 신체적 증거는 7살에 영구치가 나오는 것, 14살 때쯤 돼서 성과 관련된 신체적 성숙이 있는 것, 21살에 자아가 확립되는데 신체적인 특징은 나타나지 않는다.

(4)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물질적 신체와 정신-영혼의 두 영역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즉, 교육은 물질적 신체로부터 정신-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며 예술 교육이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색채와 음악은 정신세계로 비롯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이트리미와 수채화그리기 등은 영적 수련의 방법이 된다.

(5) 교육은 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장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신은 지속적으로 윤회하며 그 속에서 정신과 영혼은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이러한 개인의 진화는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인류의 진화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슈타이너는 인류 역사를 아틀란트 시대와 후 아틀란트 시대로 나누었다. 아틀란트는 유럽 전설에 나오는 대륙으로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부터 9천년 전 대서양 밑으로 가라앉아 그 주민가운데 일부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인류 역사가 새로 시작됐는데 고대 인디아 문명 시대에는 인간이 정신세계와 직접적으로 대화했지만 농사를 시작하고 물질적인 생활이 강화되면서 정신세계와의 직접적 교통 능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 뒤 그리스 철학의 발전 등으로 생각하는 힘이 생겼고 바로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 정신 생활과 직접 교통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 진화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예수의 탄생과 부활, 즉 골고다의 신비이다. 예수의 탄생으로 인해 정신세계에 대한 전망이 열렸고 모든 사람은 골고다의 신비를 예수와의 통해서 참다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견해인 것이다.

3) 비판

(1) 서구 문명 중심적 태도(인종주의적 사고)
슈타이너가 정신문명사를 서술한 것을 보면 세계를 유럽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역사적 집단에는 인디안과 폴리네시아인, 아프리카의 흑인들, 극동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사람들이  빠져있다. 또, 예수에 대한 태도 역시 서구중심 기독교 중심적인 슈타이너의 세계관을 확인해 준다. 그는 예수의 탄생을 인간 정신 문명 발달에서 유일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이는 다른 문명권의 역사와 인간의 주체적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윤회설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이 인도 철학에서 그 개념을 빌려 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독자적인 사유라고 대답했다. 인도문화에 빚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서양인들에게 모든 인류의 정신문화자원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까?  윤회설의 내용에서도 슈타이너는 개별적인 정신과 영혼의 윤회만을 인정했을 뿐, 동물의 윤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서구의 개인주의적·인간 중심적 가치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백인들처럼 인종주의 적인 사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2) 현실참여 문제
나는 슈타이너가 제국주의 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가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에도 반전평화운동을 하지 않았다. 다음의 글은 1915년 한 신교도 목사가 슈타이너와의 대화를 적은 것이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도대체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슈타이너는 ‘물론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사건들과 가까이 있는 모든 작용에서 우리는 손을 떼야 합니다. 신비학을 연구하여 얻어진 지식 자체를 행동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권리가 부정당하고 있을 때 그 상황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그런 인간에 대한 학문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그의 인지학을 ‘차가운 관념의 구조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 히틀러가 활동할 때, 나치에 대한 반대를 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온갖 테러를 통해서 반대자를 탄압하고 인종주의를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을 때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 나치의 집권 시기에 슈타이너 학교가 폐쇄되었다고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과 그 이후에 인지학자들이 나치를 반대하는 투쟁을 했다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삼중적 사회질서운동을 들어 그가 현실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사회관이라 할 수 있는 삼중사회론은 사회구성을 인간의 몸에 비유한 일종의 전체적 유기체론으로 사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립과 갈등을 부정하고 통합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고 파시즘의 유기체적 사회관과 친연성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의 해방은 단지 몰역사적이고 사회적 참여정신이 없는 순수한 정신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해방은 사회적 삶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가진다. 신체적,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경험을 관통하고 있는 몸에 대한 억압에 대해 정신이 사유할 때 참다운 해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다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태도는 사람의 시선을 정신세계에만 고정시켜 사회적 삶의 맥락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하여 세계를 향한 진정한 행동 가능성을 빼앗는다. 건강한 정신세계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된 인간의 현존을 어떤 유보도 없이 긍정할 때, 즉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3) 비과학적인 개념의 문제
슈타이너는 끊임없이 자신의 견해가 과학적인 인식과 아무런 대립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과대학 박사 출신으로 당시로서는 높은 과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슈타이너의 자부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비주의와 과학의 차이점을 모호하게 그런 말은 그의 입장을 시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과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슈타이너의 인식체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발견들이 그가 죽은 후에 이루어졌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발견들은 주로 1950-60년대 이루어졌다. 그러한 발견들에 의해 우리는 정신의 진화가 아니라 몸이 진화함에 따라 인간이 형성되었다는 것과 함께 정신의 탄생은 몸의 진화 과정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뇌 기능의 이해, 특히 대뇌 변연계에 대해서는 1950년대 해마의 기능이 밝혀졌고 199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그 기능을 전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슈타이너가 말한 에테르체(생명체)의 작용은 유전자와 뇌간의 역할이고, 아스트랄체(감정체)의 작용이라고 본 감정은 대뇌 변연계의 기능이며 자아의 작용이라고 본 의지와 기억은 대뇌 피질의 기능이다. 물론 이러한 기능과 정신 세계는 같은 것일 순 없다. 눈의 기능과 시각적 세계가 다른 것이듯이..........
문제는 슈타이너가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뇌의 3가지 구성 부분의 기능을 독자적인 실체라고 파악하고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확립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지난 1세기에 걸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슈타이너 이론 속에 수용되고 있지 않다.


4. 우리의 현실과 슈타이너 교육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또 대안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슈타이너 교육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볼 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중산층의 교육열과 복잡한 현실로부터 신경안정제를 찾는 우리사회 일각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며 신비주의를 상품으로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본의 욕구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신비주의 의 수용으로 과연 우리사회의 교육문제, 나아가 우리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외래문화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특효약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와의 심층적인 만남이 가능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참여와 연대정신을 높일 수 있는 사상이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잠재력을 슈타이너 교육이 가지고 있는지 우리 현실에 비추어 살펴보겠다.

1) 우리 문화와의 대화가능성
어떤 사람들은 슈타이너 교육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 원리와 대화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런데 그러한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이 우리 문화의 심층적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슈타이너 사상에 통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상을 우리의 일상언어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말에는 공동체의 역사와 의미지층이 담겨 있어 그 사회의 전통적이 사유체계와 문화적 문맥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 몸에 대한 번역을 할 때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슈타이너는 인간의 신체를 광물로 이해한다. 이는 인간의 실체는 정신이고 몸은 나 밖의 외부적 물질에 불과할 뿐이라는 서구의 주류 철학전통 안에 슈타이너 사상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몸을 광물적인 물리적 신체로 이해하지 않는다. 몸은 정신적, 물질적 존재를 통합하고 있는 나 자체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나 죽는다’라고 하고 유교에서도 정신 수양을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 즉, 몸을 닦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전통을 부정하고 슈타이너적인 물질체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문화의 근본을 이루는 사유체계가 무너져 버릴 것이고,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의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다. 몸과 관련된 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오이리트미와 우리장단, 교착어인 우리말과 굴곡어인 독일어의 차이로 인한 문자 배우기,세시풍속 신화등 많은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슈타이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적 성찰없이 일방적으로 그 방법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화적 충돌을 가져 올 수 있다. 분당 슈타이너 유치원에서 고사와 보조교사, 부모와 교사간에 있었던 갈등 가운데 중요한 지점이 교사의 사상과  스타일 문제 ,즉 민주주의적인 운영방식과 인권에 대한 태도와 함께 우리 장단교육, 우리 현실에 맞는 슈타이너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유 체계는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길을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슈타이너 입장에서 보면 나는 정신이고 몸은 나 밖의 외부적인 물질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슈타이너의 사상은 그의 표현으로는 윤리적  개인주의, 내가 볼 때에는 정치적의미가 탈색된 내면적 자유를 위한 개인주의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공동체는 생활 공동체가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일 뿐이고 오이리트미등은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통일하기 위한 하나의 의례이다.  정신을 나로 볼 때 공동체는 형성할 수 없다. 오로지 생각하는 나가 있을 뿐이고 다른 사람은 몸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는 유아론적 공존일 뿐 참다운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철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슈타이너 사상과 우리 문화는 물과 기름의 관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슈타이너 사상을 수용하는 사람이 많아져 기름덩어리가 커질 수 있겠지만 그게 우리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문제
현재 우리사회는 여러 가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위기는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참여와 연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슈타이너가 현실 문제에 둔감했듯이 슈타이너를 공부하는 사람들 역시 현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슈타이너 이론의 자기 완결성 ,폐쇄성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어쨌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여러 방면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독자적인 체계를 건설했는데, 개념이나 체계가 워낙 독특해서 다른 이론이나 체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다른 이론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뿐 이론적 대화는 불가능하며 현실과 통합도 어렵다. 왜냐하면 슈타이너가 그랬듯이 그들은 현실의 여러 가지 모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정신적 본질 즉, 정신 세계를 알 때만 가능하다는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나라의 경우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는 경우가 있어 그들의 사회적 지향성과 행동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와 그 사람의 삶의 요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슈타이너 이론 속에 내재하고 있는 행동특성은 아니다.
둘째, 슈타이너를 따르는 사람들은 슈타이너를 넘어설 수 없다. 슈타이너의 사상과 이론은  그의 체험 반영한 것인데, 그것을 백년이 지난 지금 이해한다는 것은 해석의 문제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슈타이너 이론의 방대한 체계로 볼 때 거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할 텐데 내가 보기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러한 길을 갈 리가 없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시대와의 공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우고 자기가 처한 현실을 온 몸으로 껴안고 사랑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는 힘.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낡은 교육패러다임 문제
현재 급격한 국제화, 정보화 흐름과 인류의 위기 상황은 학교 중심의 근대적인 교육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하면 학교 교육, 즉 일정한 시기(학생시기), 특정한 공간(학교)에서 학문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교육은 삶의 모든 시기, 모든 생활공간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능력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평생교육과 통합교육 체계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지역화교육이다.. 즉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삶의 의미를 공유하며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데 이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특정한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독단적인 태도가 될 것이다. 슈타이너 교육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슈타이너의 세계관은 지역공동체의 자연스런 삶 속에 녹아들 수가 없다.
슈타이너 교육의 한계는 슈타이너 교수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교육을 담당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앞으로의 교육상황이 학교중심의  형식교육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가르치는 비형식 교육을 요구한다고 할 때 학교교육 중심·교사중심의 슈타이너 교육은 낡은 교육패러다임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슈타이너 교육은 아이들은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활적 요구로부터 교육이 시작되어서는 안되고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잘 알고 있는 인지학 전문가가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학생들이 생활적 요구 속에서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5. 닫는 말

이 글을 쓰면서 매우 어려웠던 것은 우리 문화의 문맥과 슈타이너 사상에  대한 비교연구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수용자들이  우리 문화의 문맥에 대한 분석 없이 일방적으로 슈타이너의 교육이론과 방법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 물론 일부에서는 전통놀이와 세시풍속, 이야기를 가지고 교육과정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슈타이너 교육의 내용과 형식속에 그것이 담길 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고 자칫하면 우리문화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고 슈타이너 교육이론에 우리 문화를 꿰 맞추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강조한 것은 외래문화에 대한 배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문화교류의 장 속에 있고 우리 문화요소 가운데 외래 문화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 기본입장은 필요할 경우 외국이 버린 문화요소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미래를 위해 생산성 있는 문화적 만남을 위해 어떤 기준과 접근방법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슈타이너 교육을 수용하려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이론에 열광하기보다는  인권과  공동체의 가치가 실현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거기서 생기는  즐거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제안할 때  생활운동, 조직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 그래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이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 즉 개인수준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내 가족, 마을사람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 사회역사 환경이 모두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개인 수준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족수준교육과정, 마을수준교육과정 지역수준교육과정 국가수준교육과정 인류수준교육과정을 내 삶 속에서 구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차려져 있는 밥상 하나만 보더라도 조와 콩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벼는 인도에서,, 보리와 밀은 서남아시아에서, 생강과 마늘은 중앙아시아, 옥수수와 고구마는 아메리카에서 들어왔다. 따라서 신토불이의 이데올로기로는 내 앞의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따라서 밥상은 우리 문화뿐 아니라 인류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창으로, 내 학습의 구체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역시 내가 자연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살고 있는 식물, 새들과 비교를 위해 지구의 환경을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내 집안 생활은 지난 수 백년동안 강화되어온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험의 장이다. 그래서 집안 식구 모두가 인권과 민주주의적 규범을 바탕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실천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삶의 의미를 나누는 그러한 교육운동을 하고 싶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러한 삶이 새로운 이론, 독자적인 교육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대안적 교육사회를 꿈꾸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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