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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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래 동화 중 '콩쥐와 팥쥐'가 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계모 슬하의 아이가 온갖 핍박을 참고 견뎌 결국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입니다.
외국의 신데렐라와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지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와 같은 이야기는 많은 민족의 구전동화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를 읽거나 듣다보면 팥쥐 엄마는 참으로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자신의 자식인 팥쥐에게만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것을 주며, 자신의 자식이 아닌 콩쥐는 끊임없이 구박하는 장면에 오면 이런 생각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는 근자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콩쥐 엄마라면 팥쥐를 어떻게 했을까?'
콩쥐가 착한 아이로 나오니까 콩쥐 엄마도 착하다고(통념상 '착하다'는 개념)본다면, 콩쥐 엄마는 콩쥐에게 팥쥐 엄마가 한 것 처럼 팥쥐에게 못되게 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아이처럼 잘 돌봤을까요?

방학을 하고 약 4주간 저는 개인적으로 제 아들놈 2명(만3,5세)과 친척집 아이 2명(만 2,4세)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데, 참 어렵더군요.
어린 아이들이기에 용변처리를 도와주어야 하고,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이기, 청소, 아이들 목욕, 아이들과 곤충 채집 등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시계를 자주 보게 됩니다.
'시간아 빨리 가 다오~~'

며칠 전에 제 처지를 아는 - 방학내내 아이를 봐야 하는 - 어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야~ 애들 보기 힘들겠다. 똥 치우기 바쁘겠구먼...."

만 5세 아이를 제외하고 3명의 아이들은 용변처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바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두 명이나 세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바지에 실례를 하거나, 제가 화장실에서 힘을 주고 있을 때 용변본다고 부르면(정말 괴롭지요...) 혼이 빠지는 것처럼 바쁘더군요.

"똥이야 뭐.... 실은, 내 아이와 다른 사람의 아이를 함께 본다는 게 더 힘들더라구."

실제 그렇더군요. 제가 네명의 아이를 보면서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식사, 용변, 놀이 등 몸을 움직이느 것이 아니라 내 아이와 다른 사람의 아이를 함께 본다는 심리적 어려움입니다.
하나의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싸울 때, 아이들의 의견이 달라 내가 결정해야 할 때, 내 아이의 편을 들자니 스스로가 편파적인 것 같고, 다른 아이의 편을 들자니 내 아이가 너무 울고....

'거 뭐 옳은 것을 주장하는 쪽의 편을 들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은 어느 한 쪽도 '옳다고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할 것입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다툴 때, 누가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한 아이는 잠자리를 잡으러 가자고 하고, 다른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자고 할 때, 이 또한 누가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가지고 돌아가면서 하면 되지...'
이 또한 쉽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 당시의 상황을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장난감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났을 때 10분씩 돌아가면서 사용하도록 해도 만 2,3,4세 아이들은 10분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어른이 자신의 장난감을 뺏앗아 다른 아이에게 주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만 5세 정도의 아이는 이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부모들은 경험해 보았겠지만) 평소 가지고 놀지 않던 장난감도 꼭 다른 아이가 만지면 덩달아 가지고 논다고 하지요. 또 어떤 아이는 그 장난감이 실증나기 전까지는 항상 자기가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피우거나 웁니다.

"그러니까 규칙을 가르쳐야지....."
옳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아이들은 나름대로 기준을 배우고 그 기준에 따라 규칙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2,3,4세 아이들에게 '10분씩' 또는 '한 번씩' 등의 기준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더군요.(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겪으면서 느낀 것입니다.)

스스로
'규칙을 적용하기가 어렵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간의 분쟁(?)이 많아지자 저는 교육적(?) 규칙을 정했습니다.

'항상 동생이 먼저!'
장난감을 가지고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어린 아이가 먼저 사용하게 하고, 먹는 것으로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어린 아이를 먼저 먹이고, 노는 것도 어린 아이가 하자고 하는 것을 먼저 하고......
큰 아이라고 해도 더 간절한 욕구(배고픔, 가지고 싶음 마음 등)가 있겠지만 일단 이렇게 정했습니다. 이렇게 며칠 동안 규칙을 적용했더니, 저와 함께 있는 시간(08:30~17:00)은 조금 안정되었지만 그 이후 어머니들이 모두 돌아오면(17시가 되면 친척집 아이들의 어머니와 제 아들놈들의 에미가 돌아오거든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8:30에 다시 나가고....) 심하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제 눈치를 보더군요.(조금 민망한 느낌....)
4주가 지난 지금은 아이들이나 저나 규칙에 적응해 싸움도 줄고 잘 놀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데, 지난 4주동안 아이들을 보면서 저 또한 남의 아이(친척의 아이)들보다 제 아이에게 더 많은 손과 눈이 가는 것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남의 아이를 스다듬어 주고, 칭찬해 주고, 먹을 것이나 장난감 등을 제 아들놈들이 양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조금씩 내 아이와 네 아이의 구분을 없애 나갔지만 아이들 울음소리에 뛰어나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어는 것이 제 아이인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콩쥐 엄마 이야기를 해 보면, 콩쥐 엄마라면 팥쥐를 어떻게 했을까요.
팥쥐 엄마가 콩쥐에게 한 것처럼 팥쥐를 구박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처럼 돌봐주었을까요? 팥쥐라고 하는 아이의 개인적 품성(붙임성이 좋다거나, 심술을 부린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성격)에 따라, 콩쥐 엄마의 표현 방법(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신의 자식을 먼저 위하는 근본적인 마음만은 팥쥐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 앞에서는 평범한 '아무개 엄마'이지 않을까요?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팥쥐 엄마처럼 자신의 아이가 아닌 많은 '남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교사(선생님, 선생, 스승 등)라고 부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전문성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평범한 팥쥐 엄마나 콩쥐 엄마이기를 거부하지만 실제 교육장면에는 '아무개 엄마' 또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건처럼 사람을 등급매겨 자원으로 키워야 하는(우리나라 정부부처 중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있지요?) 공교육의 흐름과 무게는 사람의 영혼을 이해하며 마음을 어루만지려 노력하는 '가르치는 이들' 조차 '아무개 엄마'가 되기를 강요합니다.
공문처리, 부장이나 교감, 교장으로의 승진 등을 위해 가르치는 것을 콩쥐처럼 내팽겨치는 팥쥐 엄마들과 내 자식(사람-줄서기)이 되기만을 강요하는 교육관료들, 그리고 사람을 자원으로만 보는 저차원적 사고의 교육행정으로 이루어진 낡은 공교육시스템 속에서 영혼과 자아를 '가르치고자 하는 이'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버거운 것 같습니다.

교사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많은 '남의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제가 지난 4주 동안 어려워 했던 것과 같은 난처함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무개 엄마'로만 남아 있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저는 인간에 대한 보다 깊고 다양한 지식, 맑은 영혼과 다른 영혼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부지런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것이 모자라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최소한 이러한 것들을 기르기 위한 노력은 하여야겠지요.

지난 4주동안 아이들을 맡아 키우면서 엉뚱하게 콩쥐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은 스스로 가르치는 자로서 많은 것을 알고 깨닫지 못함과 아이들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 아이들의 영혼을 볼 수 없는 눈, 게으름 등에 대한 반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이'가 될 것인가 '아무개 엄마'가 될 것인가.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2-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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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란 2009.11.19 14:02

    댓글을 다는 일이 자주 있지 않지만 선생님의 글을 보고 있으면 댓글을 자꾸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좋은 생각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개 엄마가 아니라 가르치는 이- 밑줄 긋고 별표 세개 해야할 것 같네요.

  • profile
    영구만세 2009.11.20 14:17

    저도 제가 쓴 글을 오랫만에 보니 새롭군요.

    저도 '아무개 엄마'로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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