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것

사람의 행위는 관계의 결과물이다.

by 영구만세 posted Jun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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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주의적 접근법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다른 방식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는 사람이 자연주의 심리학 전체보다 소설을 읽거나 역사나 일상생활의 활동들을 공부함으로써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위하는지에 대해 흥미있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배운다.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나처럼) 일관적으로 믿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이 ‘하늘’에 대해 천체물리학이 열망할 수 없는 인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촘스키) -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의 지칭 의미론 비판(2010). 강진호, 철학 제 102집. P. 113

   많은 이들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간의 삶과 연결되는 순간, 반드시 과학외적(또는 ‘비이론적’, ‘비이성적’, ‘감정적’) 현상이 된다. 때로 인간의 행위는 과학적으로만(또는 이성적으로만) 증명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

   위 인용문에서 촘스키는 인간의 생각과 느낌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 뻔하게 보이는 행위(동)이나 지극히 과학적일 것 같은 ‘하늘’에 대해서도 비자연주의적 이해가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위 인용 논문’ 속에서 언급한 ‘인간 행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마도 영원히 신비로 남을 것’이라는 촘스키의 견해처럼 인간행위는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

 

   나의 책 ‘공중부양의 인문학’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파블로프의 개는 일정한 시간과 조건 속에 주어진 음식에서 침을 흘리지만, 영화 ‘올드보이’의 ‘인간’ 오대수는 같은 시간과 조건에서 주어진 만두를 보며 복수를 다짐한다. 바둑이든, 검둥이든 모든 개는 파블로프의 실험에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조건이라도 반응이 다르다. 만약 홍길동이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 신세라면, 길동이도 오대수처럼 복수를 다짐할까? 길동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 결과는 모를 일이다. 모두의 예측을 벗어날 수도 있다.

   인간의 행동은 과학적 예측이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의 느낌과 생각, 행위(동)은 ‘조건-반응’이라는 원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맥락, 상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과학외적(비과학적이란 뜻은 아님) 현상이기 때문이다. ABA추종자들이 일상에서 (배우자나 자식 등) 타인의 행동을 ‘강화,유지’시키기 위해 타인에게 발달장애 아이들 대하듯 사탕이나 과자 쪼가리를 내미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행동주의자들이 ‘과학적’이라며 주장하는 것처럼 ‘조건-반응’, 또는 세련된 ‘ABA’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 것은 명확하다. 사람의 행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 나타나는 과학외적 현상이다.

   더 줄여 이야기하면, 사람의 행위는 관계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