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치료', 개선이 필요합니다.

by 영구만세 posted Sep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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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정신지체․정서장애 고등학생의 담임을 맡아오면서 부모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 장애를 진단받았을 때의 절망감, 치료와 교육에 보냈던 많은 노력과 비용 등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부모님들이 가진 눈물겨운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삶의 무게는 각각의 삶만큼 다양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거쳐 간 연례행사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치료'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은 초기에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보를 바탕으로 클리닉이나 조기교육실, 치료실을 전전하면서 장애 학생의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곤 합니다. 정신과 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언어치료, 통합감각치료, 기공치료, 작업치료 등 많은 치료들 중에서 학생에게 좋다고 하는 것들을 찾아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열정을 쏟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고등학생인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치료라는 것들이 의료적인 것부터 학습적인 것까지 성격도 다양하여 혼란스러웠다는 경우도 있고, 많은 시간과 비용에 비해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학생이 장애진단을 받은 초기엔 ‘치료’라는 말에 혹하다가도 학생이 나이가 들고 여러 치료라고 하는 활동을 해 오면서 그것을 그냥 ‘교육’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부모님들과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문제는 간혹 있는 치료를 빙자한 사기 행위로 받게 되는 장애 학생의 고통입니다.

   10여 년 전 주위학교 선생님으로부터 그 학교 학생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매주 지방 어딘가에 내려가서 혀 아래 침을 맞고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의 고통은 어떠했을까요. 끔찍했습니다.

   혀 아래 침을 맞는 엽기적인 ‘치료’ 이외에 자폐를 고친다는 기공치료, 독일에서 수입했다는 자기장 기기로 자폐를 고치는 치료, 무슨 중금속에 대한 이야기 등 20년 가까이 특수교육을 하면서 장애학생의 부모님들이나 동료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사기성이 농후한 '치료'는 서너 해에 꼭 한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기성 치료는 학생이나 부모 모두에게 큰 고통과 손실을 주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여러 치료로 지불해야 되는 부모님들의 과다한 경제적 손실입니다.
지 금은 바우처 제도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조금은 덜하겠지만 여전히 치료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치료를 위해 주당 두 번 몇 십만원, 한 달에 몇 십만원 하는 치료를 여러 곳 다닌다면 치료비용은 한 달에 백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효과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고비용과 일관되지 못한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제점은 ‘치료’라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오는 혼란과 오해입니다.

   ‘치료’라는 용어는 장애인 부모들에게 ‘이 치료를 받으면 학생의 장애가 나을 수도 있겠지…….’라는 혼란과 오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치료의 일반적인 의미가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장애 진단을 받은 초기의 장애인 부모님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당 치료실이나 클리닉에서 은근히 이 치료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거나 나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학부모, 선생님, 의사 등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장애는 병이 아닙니다. 병이 아니기에 치료의 대상도 아니죠. 현재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들의 ‘~치료’라는 활동이 ‘치료’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사용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는 장애가 마치 병인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가 아주 크게 합니다.


   일반 학생들은 많은 경우 학원엘 다닙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특기와 장래 희망 등을 고려하여 학업 증진을 위한 학원, 예능학원, 운동학원 등을 필요한 학원을 선택하여 다니게 되지요. ‘~치료’는 어찌 보면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심리적 안정, 학업 향상, 직업지도 등 장애학생 개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치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 “~치료”라는 것이 정말 필요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고, 위 세 가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치료’라는 용어의 적절한 사용 여부에 대한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분별한 ‘치료’라는 용어의 사용은 심각한 혼란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과 오해를 막기 위해 의학 전문가들이나 정부 등 책임 있는 곳에서는 ‘치료’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다스려 낫게’하거나 ‘그대로 두면 생명에 위험이 있는 병’에만 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리치료가 대표적인 것이 되겠죠.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들과 생활해 보면 이들이 받는 현재의 언어치료, 인지치료, 직업치료 등은 ‘병에 대한 치료’라기보다 학습을 보충해 주는 “집중교육”에 훨씬 가깝지 않나 여겨집니다. 저도 18년 전 복지관에서 포테이지 프로그램 등을 들고  언어치료라는 것을 해 봤지만 언어치료는 실제로 언어집중교육입니다. 언어치료처럼 ‘집중교육’에 가까운 것들은 ‘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신 ‘~(집중)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면 합니다. ‘예시 언어치료실’이 아니라 ‘예시 언어교육실’처럼 말입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치료 중 승마치료, 원예치료, 심리치료 등의 경우처럼 치료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단순한 집중교육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분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치료’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활동들도 정서적, 심리적 안정으로 목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교육’안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들이 가지는 충동성, 불안한 마음 등은 병이라기보다 장애로 인한 기질적 현상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담임을 하면서 생활한 학생들의 기록을 보면 96% 이상은 ‘뇌병변 장애’ 등 뇌의 역할과 관련된 불분명한 기질적 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아래 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담임을 맡았던 총 학생 수

 84명

 원인이 밝혀진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 수

 3명(다운증후군)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 수

 81명(언어장애, 뇌병변 장애 등)


   이는 정신지체․정서장애 학교의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가지는 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이 뇌와 관련된 기질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의 경우 폭력성, 간질 등 증상에 따라 의사의 약물처방으로 이루어진 ‘치료’가 있습니다. 이 치료들은 약물로 뇌의 일정부분을 자극하거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여 치료하는 것으로 ‘의학적’인 행위에 해당합니다. 치료가 맞지요. 하지만 승마치료나 원예치료, 심리치료 등은 다릅니다. 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과 관련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도 ‘치료’라는 용어보다 ‘~교육’이라는 용어가 더 알맞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 “~치료”라고 불리는 활동들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정리해야 할 또 하나의 사항은 각종 치료(치료사)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입니다.

   요즘 특수교육 현장에서 보면 너무나 많은 치료학회들이 넘쳐납니다. 공연예술치료학회, 미술치료학회, 케어놀이치료학회, 동작치료학회, 웃음치료학회, 원예치료학회……. 특수교육을 20년 가까이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설학회에서는 몇 달의 짧은 기간에 소위 치료사를 마구 방출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지도감독도 없는 상태에서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치료사에 의해  ‘~치료’라는 용어까지 써 가면서 치료실 등이 운영되다 보니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워집니다.

   정부의 특정 부처에서 각종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교육기관, 기간, 이수할 과목 등을 엄격히 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각 치료실(용어가 정리되면 ‘교육실’이 되겠지요.)의 설비 규격, 인원 등을 고려하여 설립허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수강료 등도 일반적인 학원처럼 일정한 금액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주무부서도 정해져야 하고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로 인해 행복한 삶을 제약받고 있는 정신지체․정서장애 학생들도 마찬가지죠. 이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들에게 치료라는 행위가 행복한 삶으로 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 어떤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관심 있는 각 기관과 전문가들의 관심과 의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 이 글은 서울복지재단 웹진의 '복지칼럼'에 기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