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193.18.178) 조회 수 436 추천 수 0 댓글 0

   번째 책인 『공중부양의 인문학』이 출간된지 보름이 다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장애를 극심하게 느끼는 학생들,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을 넘는다. 그런데, 왜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궁긍해하는 분도 있었다. 굳이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인 건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가 장애를 많이 느끼든, 조금 느끼든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극심하게 많이 느끼는 사람과 장애를 조금 느끼는 사람을 '과학적'으로 분류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 분류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눈다. 사람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눈 후, 장애인에게는 그에 따른 적절한(또는 '적절하다고 여기는') 배려와 각종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실상 곰곰히 들여다보면, 이는 종종 친절을 뒤집어쓴 '웃는 차별'로 변한다. 우리 삶이 차이를 차별화시키고, 그 차별에 '친절한 차이'라는 표식을 남기지 못하도록 극단적 과학과 신화의 영역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은 신화를 신적인 것, 또는 미신으로 치부한다. 과학이 그 모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과학적이고 체계적·조직적인 '친절한 차별'에 작은 균열이라고 내고 싶은 마음에 '인문학'이란 제목을 붙였다. 앎을 아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는 마뚜라나의 이야기에 힘 입어 '인문학'의 이름으로 과학적이고 친절한 차별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보려 했다.

   『공중부양의 인문학』을 쓰기 위해 좋은 책들을 많이 참고하고, 인용했다. 이것들을 모두 참고문헌으로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발매가 된 이후에야 아쉬움이 올라온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공중부양의 인문학』을 읽은 독자의 이해를 좀 더 넓히기 위해 참고한 책 중 몇 권을 수 주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앎의 나무(아우또노미아총서 12)

  앎의 나무(아우또노미아총서 12)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

  저자 | 움베르또 마뚜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역자 | 최호영

  출판 | 갈무리   

  출간일 | 2013.11.13.

 
   람은 어떻게 발생하였을까. 아니, 그 이전에. 46억년 전 지구가 생겨난 이후 어떤 과정으로 생명체가 생겨났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답답할 때 만난 책이 『앎의 나무』다. 『앎의 나무』는 마치 우주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할 때 만났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처럼, 나의 '앎'을 알게 해 주는 오아시스며 신세계였다.
 
   인지생물학, 인지심리학, 철학, 신경과학 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책은 시작부터 머리가 아프다. 특히, 여타 다른 과학서적처럼 인지과학의 용어 하나하나는 낯설기 이루 말할 수 없어서, 한 줄만 읽고 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앎의 나무』는 나처럼 인문학 근처에만 머물던 사람에게도 자신의 영역을 어렵지 않게 내어준다. 특히 마뚜라나의 인지과학은 불교(특히 유식불교)의 세계관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에 불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이 이해하기에 더욱 편한 것 같다. 니체나 들뢰즈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도 마뚜라나의 인지과학은 접근이 쉬을 것이다. 단, 이 책은 단숨에 읽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순환구조이어서 각 장과 장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 2~3일 두고 다시 읽었다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담숨에(길어도 열흘 내에) 모두 읽고 나면 머리가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옴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밝힌 이 책의 두 가지 목표는
  • 첫째,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기제와 우리의 인식능력에 대한 물음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
  • 둘째, 우리가―사랑을 바탕으로―타인들과 함께 산출한 세계만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이며 따라서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 (p15)
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관찰자가 된 저자들과 독자는 끊임없는(순환적인) 이야기의 노정을 시작한다.
 
   인적으로 『앎의 나무』가 내게 준 지적 충격은 너무나 많다. 구분에 대한 정의, 자기생성조직(Autopoietische), 생식, 유전, 구조접속, 섭동작용, 표류, 언어, 사랑.... 이 많은 것들이 서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하나만 딱 떼어내어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딱 두 가지는 이야기하고 싶다.
  첫번째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양립할 수 있는 한, 환경과 개체는 서로 섭동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상태변화를 유발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이해한다. 이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마치' (농부가 마음에 드는 종자를 가지고 하는) 인위적인 종자선택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자연적인 선택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변화가 생겼다."고 말함으로써 생물학의 역사 속에 자연 선택이란 명명법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p119)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개체에게 실제 일어난 구조변화는 마치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면 환경은 유기체의 구조변화에 대한 '선택자인 것이다.(p119)
   여기까지가 보통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선택의 진화론이다. 하지만 마뚜라나와 발렐라는 이런 생각을 뒤집어버린다. 환경이 유기체를 변화시키는 선택자일 뿐만아니라 꺼꾸로 유기체도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앎의 나무』에서는 이를 지구 발생과 산소의 비중을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이 처음 생겨난 뒤 수백만 년 동안 세포들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산소를 퍼뜨려 지구 대기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으며, 이런 역사의 결과로 오늘날 산소는 애기 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대기 안에 산소가 있게 됨에 따라 여러 종의 생물들 가운데에서 구조변이들이 '선택'되어 산소호흡으로 살아가는 형태들이 계통발생을 거쳐 생겨났다. 이처럼 구조접속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유기체와 환경 모두가 변화를 겪는다.(p120)
   여기에서 유기체와 환경의 구조적 양립이 적응이다. 따라서 개체의 구조변천사인 계체발생이란 조직을 유지한 채, 또는 적응 관계를 유지한 채 일어나는 구조변화의 표류인 셈이다.
  『앎의 나무』 속 특정한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이 책 속의 여러 개념들은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런 복잡한 이야기가 닿는 곳은 진화에 대한 관점 변화다.
  마뚜라나와 바렐라는 진화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아래의 <그림 1. 진화 나무>와 같이 보지는 않았다. 이들은 개체가 일방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자생존의 결과로 생겨나는 진화보다 서로 구조접속하여 섭동작용을 일으키며 표류하는 진화를 그렸다. 일반적인 진화론을 뒤집는 엄청난 발상이다.
 

tree.jpg

 

 

 

 

 

 

 

 

 

 

<그림 1. 진화나무>

 

 

 

 

 

 

마뚜라나와 발레라의 자연'표류'에 의한 진화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표류.jpg

<그림 2 생물들의 자연표류에 대한 '물방울 비유'>

 

   이 그림은 물방울들이 산에서 다양하게 자연적으로 표류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표류는 물방울들이 불규칙한 바닥과 바람과 그 밖의 모든 요인들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 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계통들의 진화는 유기체들과 그것들에 의해 정의된 그것들의 환경(적소 Nische) 사이의 구조접속이 어던 경로를 따라 보존되는가에 달렸다.

   자연표류에서는 '더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을' 뿐이다. 적응은 필요조건의 문제이며 그것을충족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서평을 쓰면서 책 한권의 내용을 다 쓸 테세다. 진화에 대한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이들에 의하면 진화란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그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면서 실 한 가닥, 깡통 하나, 못 하나, 돌 한 개 등을 주웠다. 그리고 그것들의 구조와 주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들을 합친다. 그가 그렇게 합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계획도 없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가운데 생겨났을 뿐이다. 우리 모두도 이와 같이 생겨났다.(p135)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상당히 수동적이다. 유기체가 아닌 자연(또는 환경)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면 마뚜라나와 바렐라가 이야기하는 자연표류에 의한 진화는 상대적으로 유기체의 주체성이 느껴진다.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접속에 의한 진화이니 말이다. 이를 사람의 삶에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그 환경 속을 살아가는 유기체인 우리 인간의 상호접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앎의 나무』가 내게 안겨 준 지적 충격 중 이야기하고 싶은 나머지 하나는 '사랑'이다.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뿐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우리는 이 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278)
   마뚜라나와 바렐라는 『앎의 나무』를 읽은 독자들이 이것을 깨달았다면 이 책의 목표를 다 이뤘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Visuelles Feld)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Chromatischer Raum)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체험하는 공간 속 행동과 경험과 삶 모두는 타인과 공존하면서 한 세계를 산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타인을 받아들여 우리 곁에서 살도록 놓아두는 일 없이, 사회적 과정과 사회화 나아가 사람다움이란 있을 수 없다.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모두 사회적 과정을 산출하는 생물학적 과정을 해치고, 사회적 과정을 해친다. 이런 저런 설교에 가까운 이야기를 차치해 두고서라도 단 한 가지 사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사랑없이, 남을 받아들임 없이 사회적 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 없이 즉, 사랑 없이 세상을 산출할 수 없다.
 
   『공중부양의 인문학』을 쓰면서 『앎의 나무』에서 받은 영감이 많이 표현되었다. 특히 '사랑'의 개념, 나와 타자와의 관계, 언어에 대한 생각 등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앎의 나무』는 장애를 극심하게 느끼는 아이와 나와의 관계에서 서로 주체이지만 서로에게는 타자인 각 객체(유기체)가 어떻게 상호접속하며 섭동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한 단초도 제공했다.
   마뚜라나와 바렐라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좋은 책을 이렇게 소개할 수 밖에 없는 나의 한계를 함께 느끼며.
 
 * 『앎의 나무』를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마뚜라나의 "있음에서 함으로" 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몸의 인지과학"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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