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2.06.07 18:53

무엇이 먼저인가?

(*.177.219.103) 조회 수 5447 추천 수 306 댓글 1
** 이 글은 2001년 4월에 쓴 글입니다.**

1

제가 새롭고 큰 학교로 옮긴지 벌써 4년째입니다.

국민의 많은 세금을 들여 새로 지은 국립학교는 외형적인 면에서 새롭습니다.
큰 실내 체육관이 있고, 수영장, 개별 놀이실, 협동 놀이실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기자재 또한 충분합니다.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으며, 학부모의 일반적인 학력, 경제력 등도 높은 편이며, 그만큼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참여 및 관심도 큰 편입니다. 학교 뒤에 있는 조그만 동산은 아이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학교에 근무하시는(나의 동료인) 선생님들은 모두 전국에서 둘째라면 서운할 정도로 나름대로의 실력을 인정받은 분들이 대부분 입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도, 저는 참 불만이 많은 편입니다.

학교운영이 이러저러해서, 상사가 나 자신(또는 동료교사)에게 이러저러해서, 또는 학부모들이 이러저러해서.......

사람은 누구나 여러 상황에서 불만을 가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불만이라는 것을 개인의 사소하고, 이기적인 것들로 치부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불만의 이유를 들어보면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는 것도 있으며 타당성이 있는 불만들은 더 올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데 큰 밑거름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 이유가 개인의 이익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면 더욱......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장황하게 서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제 이야기가 어쩌면 "누워 침 뱉기"가 아닐까, 저만의 개인적인 생각을 횡설수설하다가 끝내지 않을까, 또는 동료나 상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등 여러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기에 나름대로의 방어벽을 쌓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루의 반 이상을 생활하고 호흡하는 학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왕 꺼낸 이야기니 해 보겠습니다. 더 좋은 발전을 위한 이야기라고 스스로의 자위하면서....

2

매년 4월 또는 5월이면 특수교육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합니다.
종목의 변천은 있을지라도 가장 큰 경기는 배구이지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특수교사들이 수고를 한다고 말합니다. 정서장애 학교만 예를 든다면, 교사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이, 매점을 습격하여 교사를 곤란하게 하는 아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교사의 간을 졸이게 하는 아이, 바지에 똥을 싸 진땀 흘리며 처리해야 하는 아이, 자해하는 아이....... 이러한 다양한 행동특성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어쩌면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스트레스가 쌓일지도 모를 일이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런 것처럼 특수교사도 주어진 일(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보다 상사나 주변인들로 인하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쓰도록 하고...)

어찌되었던, 교사들이 그 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함께 모여 체육행사를 하는 것은 좋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구를 한다고 하면서 남들에게 "나는 주전자야"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운동에 큰 자질이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특수교사 체육대회에 참석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이나, 선생님들이 하나되어 소리 지르며 응원하고, 땀흘리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3

특수교사 체육대회라는 하루의 행사를 위해 학교에서는 많은 날들을 연습으로 보냅니다.
다른 학교의 예는 들 필요가 없겠고(잘 모르니까....) 우리학교의 예를 들자면, 4월 30일 행사를 위해 4월 3일부터 연습에 들어갔으니까요.

배구 잘하는 선생님들을 선정하여 선수단을 만들고, 자발적이지는 않지만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 얼마씩 내고, 의무적으로 각 과정마다 돌아가며 하루씩 선수단의 먹거리를 장만하여 선수단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의무적이던, 자발적이던 함께 나누며 무언가를 해 가는 것은 어떤 면 -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는 이 땅의 풍토에서- 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직장의 동료들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데, 함께 참여하지는 못해도 마음이나마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니까 말입니다. 함께 하는 모습들이 자발적일 수 있도록 분위기가 된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 여기에서 잠시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야기 하나>

필자가 예전에 모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 엄청 큰 수족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출근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모 선생님이
"야, 수족관 정말 더럽다. 오늘 물고기들 숨 좀 쉬게 해 주자"
고 제안했습니다.
"그럴까...."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들이 하나 둘 수족관이 있는 중앙현관으로 나왔습니다. 특별히 방송을 한 것도 아니고, 아무개 나오라고 소리친 것도 아닌데.....
하나 둘씩 모인 선생님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손발을 걷어 부치고 수족관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몸과 기분이 개운했습니다.

<이야기 둘>

하루는 아침 교무회의 시간에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오늘은 대청소 날입니다. 오후에 대청소 합시다"
라며 대청소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유리창 청소며, 바닥청소...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언제 하지....'
내심 걱정을 하고 수업을 끝낸 후 주위를 보았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몇몇 남자 선생님은 유리창을 떼어 운동장으로 나르고, 몇몇 여 선생님과 남 선생님들은 비닐호스로 물을 끌어와 유리창을 닦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리벙하고 있던 저도
'아!....!'
라며 유리창을 떼어 운동장으로 가져갔습니다.
모두 너 나 없이 서로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교무부장이 이 선생님은 뭐하고, 김 선생님은 뭐하고, 최 선생님은 뭐하고...... 일일이 지정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이야기 셋>

요즘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담당이 정해집니다. 풀 뽑을 때, 크고 작은 행사 때, 아이들 데리고 밖에 나갈 때.......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그런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냥 놔두면 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믿을 수 없으니까....

------------------------------------------------------------------------

여하튼, 배구 연습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작년보다 그 기간이 조금(며칠) 짧아졌지만 예년처럼 수업 끝나면 모여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4

이러 저러한 말돌리기를 그만하고 이제 하고자 하는 말을 해 보겠습니다.

저는 가끔 학교의 여러 일들을 보면서 학교의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학교의 주인으로서 충분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학교라는 곳에는 교육관료들이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학교를 이루는 주체들은 다만 따라갈 뿐인 현상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잡다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난 배구연습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야기 하나,

학교에 보이스카우트 선서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오후 3시 경부터 시작한 행사였습니다.
보이스카우트 선서식이 있기도 전에 학교 스피커는 시끄러웠습니다.
"전 교사들은 정발산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우리 반 아이들중 5명이나 스카우트인지라 아이들의 선서식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몇 번의 방송에 마치 로봇처럼 정발산 운동장으로 올라갔습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계시더군요. 물론, 스카우트 선서식은 학교의 대표도 없이 치루어졌습니다.(두 분의 교감 선생님 중 한 분이 계셨습니다.)
4시 30분경에 교실로 내려갔더니 학부모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선생님, 섭섭했어요. 예년에는 교장 선생님도 오시고, 선생님들이 많아 너무 좋았는데, 이번에는 교장선생님도 계시지 않고, 선생님들도 없고, 대장 선생님도 급하게 '간식 먹어라'하고 그냥 가시고.....얘들하고 엄마들만 김밥먹었어요.... 운동하시는데 힘들까봐 음식도 많이 준비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 배구 연습도 선수 선생님 몇 명이 스카우트 대장인지라 스카우트 선서식이 끝난 뒤에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야 아이들 활동이 다 끝난 후 배구연습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배구 연습이 그리 중요합니까? 평소에는 아이들의 건실한 교육활동을 마치 소신인양 그리도 강조하더니 배구 연습 앞에서 그 소신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 둘,

스카우트 일이 있은지 약 3일이 지난 4월 28일 토요일.
근처의 일반고등학교와 통합활동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미 그 전날, 교무회의에서
"내일(토요일) 오전에 배구연습이 있겠습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된 내용이지만 외부 학교와 공동 행사 중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두고 배구연습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 당시 배구 연습때문에 정발산 운동장에서 거행된 교무회의가 너무나 비장하여(?) 이의을 제기하지는 못했지만 -

아이들 수업시간에, 그것도 외부에서 일반고등학생 50여명과 선생님들이 통합활동을 하고자 왔는데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두고 배구연습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소속된 고등부 외에도 그 날 배구연습에 징집(징집이란 표현을 쓰겠습니다.)당한 선생님은 약 17명 정도.

오전에 수업이 있는데, 17명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두고 배구연습을 갔습니다.
물론, 보강도 하고, 일부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응원연습 한다며 배구장으로 데리고 가 아이들만 방치된 경우는 없었겠지만 수업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교사들을 수업과 관련 없는 일에 동원하는 일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교육관료의 한 말씀에 의해서 말이입니다. 저는 행사에 오셨던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수도 없이 머리를 굽혔습니다.
"죄송합니다......"

5

학교는 학생의 교육권을 위해 존재하지 교육관료의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학교의 여러 사안들은 학생의 교육권보다 교육관료의 명예나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학습준비를 철저히 하라면서 수업시간에 교사를 과감히 뺄 수 있는 용기, 개인간의 "예의"를 따지면서도 타 학교의 평교사나 학생 등 소위 레벨이 낮은 대중들에게는 예의를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그 용기를 보면서 과연 학교에서 무엇이 먼저인가를 생각합니다.

무엇이 먼저일까요?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학교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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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영 2012.07.17 11:43 (*.251.18.211)
    현실을 참 느끼게 해주는 현장이네요... 제가 이거 보고 철듭니다...
    부조리를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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