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오랫만에 고정희님의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148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고정희는 광주 YMCA 대학생부 간사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지내면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 사랑, 정의 실천의 정신으로 대학생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1980년대 초부터 여자와 남자가,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인 <또 하나의 문화>에 동인으로 참가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1991년인가(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지리산에 등반을 갔다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고정희를 한국문화사, 여성문화사의 한 중요한 모범으로 기리고자 할 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인으로서 고정희가 이룩한 업적입니다. 고정희는 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고 그 뛰어난 실천적 전범을 보였던 작가였습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고정희 이전에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성' 그리고 '여성과 사회가 맺는 관계방식'을 특별한 문학적 가치로 강조하고 이론화한 작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정희가 없었다면 한국문학사에 페미니즘이라는 중요한 인식의 장은 훨씬 더 늦게 열렸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시인 고정희는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5년간 <실락원 기행>, <초혼제>,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여성해방 출사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모두 10권의 시집을 발표했습니다. 고정희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실현을 꿈꾸는 희망찬 노래에서부터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치열한 모색, 그리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와 정열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에서 생명에의 강한 의지와 사랑이 넘쳐납니다.

고정희의 시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이땅의 어머니와 여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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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는 것은 사자와 사는 일인가
                                            ―외경읽기

어린 딸들이 받아쓰는 훈육 노트에는
여자가 되어라
여자가 되어라…… 씌어 있다
어린 딸들이 여자가 되기 위해
손발에 돋은 날개를 자르는 동안
여자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발톱이 된다

일하는 여자들이 받아쓰는 교양강좌 노트에는
직장의 꽃이 되어라
일터의 꽃이 되어라 …… 씌어 있다
일터의 여자들이 꽃이 되기 위해
손톱을 자르고 리본을 꽂고
얼굴에 지분을 바르는 동안
꽃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이빨이 된다  

신부들이 받아쓰는 주부교실 가훈에는
사랑의 여신이 되어라
일부종신의 여신이 되어라 …… 씌어 있다
신부들이 사랑의 여신이 되기 위해
콩나물을 다듬고 새우튀김을 만들고 저잣거리를 헤매는 동안
사랑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기상이 된다
철학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권력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종교가 여자를 불러 사자로 둔갑한다

그리하여 여자가 되는 것은
한 마리 살진 사자와 사는 일이다?
여자가 되는 것은
두 마리 으르렁거리는 사자 옆에 잠들고
여자가 되는 것은
세 마리 네 마리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새끼를 낳는 일이다?
그러니 여자여
그대 여자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사자의 발톱은 평화?
사자의 이빨은 고요?
사자의 기상은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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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akjam 2003.05.20 00:40
    시를 읽고 음미하노라니 가슴이 조금 아파집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세상이지만 여성이 설자리를
    찾기 힘든 세상이 분명 있었고 또 살고있습니다.
    오죽하면 살아남기위해 치열한 싸움을 불사하는 여성들을 향해
    여성상위시대라는 전근대적인 폭언을 할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세상으로 옮겨가는건 반갑지만
    그렇다고 철없이 만용을 휘두르는 여성성도.. 사실 눈쌀이 찌푸려지네요.

    안녕하셨어요? 재식이엄맙니다.
    가끔 올려주시는 시를 잘 보고있답니다.
    아이의 노트에 쓰인 시들도 좋고요.
    담임선생님으로서 가깝게 뵈면서 선생님이 바로
    진정한 저희의 페미니스트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부성발언이 아니라 느낀대로입니다.
    아이가 없는 집안은 적막강산 그자체네요.
    방에 같은학년친구가 없어 재미없다고 저녁마다 전화를 해대더니
    이제는 적응이 되는지 전화도 없고 즐거운가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보다 덩치들이 더 커져가니
    같이 교실에 들어오시는데 금방 알아뵙질 못했답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선생님건강에 무리가 없으시길 기도합니다.
  • ?
    심승현 2003.05.20 15:58
    안녕하세요. 재식어머니.
    요즘 재식이는 생활관에서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등교하는 표정도 밝구요.
    알림장에 아기자기하게 여러 이야기를 써 드리지 못해 부모님들께 항상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난 영화보러 간 이야기며, 목욕간 이야기 등 할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도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마음이 바쁘기도 해서 글을 쓰지 못하네요. 제 홈의 글들도 모두 오래된 것들만 있어서 자주 찾는 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구요....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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