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247.18.66) 조회 수 1512 추천 수 0 댓글 0

   사람을 숫자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의미에 따라 많은 수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는 사람을 표현하는 근원적인 숫자는 "2"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젓가락같다고 할까요? 일정한 작대기(또는 쇠꼬챙이) 두 개가 쌍으로 있을 때 젓가락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쁘고 기능이 좋은 것이라도 하나의 쇠꼬챙이나 나무 작대기는 젓가락이 될 수 없지요. 예쁘지 않고 금박을 두르지 않아도 두 개가 쌍으로 있을 때 젓가락으로서의 쓰임이 있습니다. 젓가락의 비유가 사람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숫자와 딱 들어맞지 않을 수 있지만 '2'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많은 삶을 공유하며 배우고, 가르치며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 장애인을 둘러싼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우리 아이들을 대하면서 장애인이기에 이런 저런 일들이 허용해 주기도 하고(불쌍하다거나, '원래 그런 아이니까.' 하거나..), 장애인이기에 사소한 것들(편식, 혼자 다니는 것, 코 파기, 자위행위 등...) 막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저도 교사라는 이름으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여러 일반인(부모, 형제, 여러 활동 속에서 만나는 봉사자, 선생님 등)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던 일반인이던, 어린이던 어른이던, 여자이던 남자이던, 흑인이던 백인이던... 사람은 숫자 '2'의 의미처럼 혼자 살 수 없으며, 혼자 살 수 없기에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장애 아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만을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을 힘들게 하지 않으며 서로 조금씩 참을 것은 참고, 주장할 것은 상대방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 주장을 하면서 말입니다.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암매장한 중학생의 이야기나 피의자를 성폭행한 검사의 이야기부터 수천 수억을 횡령하거나 수많은 해고 등등... 요즘은 너무나 많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권싸움이 뉴스를 장식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동안 우리의 삶과 교육, 그리고 문화가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의 문화는 '나'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는 조금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며 무절제한 칭찬을 합니다. 주위에 친절한 표정과 말을 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친절한 표정과 말로 아이가 주위를 고려하면서 나의 욕구를 절제할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것을 장려합니다. 고래가 춤 출 때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은 다칠텐데, 춤 출 장소와 시기를 일러주지 않고 그냥 춤추게 합니다.

   '자기 절제와 욕구의 해소'도 숫자 2와 닮아 있습니다. 절제만 있으면 안으로 움추러들고, 욕구를 해소하려고만 하면 주위를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절제만 해야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기 절제와 욕구의 해소'는 둘이 함께 있을 때 아름답고 그 쓰임새가 좋아지고 사람을 풍부하게 합니다. '자기 절제와 욕구의 해소'를 잘 이루어 그 쓰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긴장'이 필요합니다.('대화'와 '긴장'도 숫자 2와 닮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래 자기 모습대로 있을 수 있는 권리- 참고) 긴장 없는 대화는 아이들 몸과 마음과 영의 조화로운 삶을 방해하게 되어 전 삶에 대한 방향을 잃게 만들며, 대화 없는 긴장은 아이들 몸과 마음과 영의 피폐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굳이 덧붙이자면, '사람'의 모습을 한 모든 이)이 '사람다움'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조화로운 '대화와 긴장'을 하면서 '더불어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내가 있음으로 그가 있는 삶 말입니다. 

   두 아이를 십칠년간 키우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20년 이상 생활하면서 생각만큼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대화와 긴장을 유지하면서 '더불어 삶'을 실천하지 못하기도 하고(며칠 전엔 둘째 아들과 한 판 함..^^), 아이들 속을 자세히 몰라 여전히 헤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지향점은 숫자 2처럼 "더불어 삶"을 바라보고 가야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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