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2013.01.31 01:21

사랑의 원형

(*.139.50.88) 조회 수 2636 추천 수 0 댓글 0
아버지의 흰 머리, 지애의 눈 빛과 지애 어머니의 손, 입원한 아내의 웃는 모습, 칠순 어머니의 계단 오르시는 모습, 아들 놈들이 곤히 잘 때, 숭연이 동생의 얼굴, 특수학교가 싫어 다시 태어나면 홀트학교에 다닌다던 상훈이 결연한 눈빛.


설거지를 하면서 곰곰히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니 참 난해했다. 남녀가 만나 서로 위하며 아기를 낳고 살아가는 것을 사랑한다고도 하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끊임없는 염려와 돌봄을 사랑한다고도 한다. 이런 것이 사랑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과연 사랑의 원형은 무었일까.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당시 부산 대저동에 세들어 살던 집에 잠시 내려간 적이 있다.

대문을 여니 아버지께서 마루에 앉아 맨 바닥에 김치 한 조각 담긴 종지에 젓가락 하나 걸쳐 놓고 소주 한 잔 들이키고 계셨다. 1980년대 말. 당시 부산엔 삼락동, 감전동, 엄궁동 등에 신발산업이 발달하여 대저에도 고무공장이 많이 있었고 아버지는 집 근처 고무제조 공장엘 다니셨다. 하루의 공장 일에 뒤집어 쓴 흰 고무가루로 머리는 온통 뒤덮힌 채, 퇴근과 함께 80촉은 되어 보이는 백열전구 빛을 받으며 노동의 고단함을 소주 한 잔으로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며 흰 머리의 아버지께서 소주잔을 꺽는 보았고, 순간 나는 한 사내를 만났다.

광부생활 수십년, 광부생활을 접고 고향 강원도에서 자영농이 되고자 했으나 자식의 병으로 순식간에 땅도, 집도 없는 도시 하층 노동자로 전락한 사내. 자신처럼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는 사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자기보다 더 배우는 자식을 보면 그냥 웃음짓는 사내. 그 사내를 만난 그 날은 내가 비로소 사랑의 원형을 본 날이기도 하다. 

사랑의 원형은 관계를 떠나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봐 주고 인정하는 것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공자의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사랑의 원형을 잘 표현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사람이던, 동물이던, 상대가 그 무엇이던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과 마주한 그것이(사람이던 동물이던, 무엇이던) 스스로 그럴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원형인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지애... 특수교육을 막 시작한 92년에 새내기 교사가 만났던 5학년 다운 소녀였다.

초임 특수교사는 그의 임무가 발달장애 학생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습을 향상시키는데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구구단 숙제를 내고, 그 구구단을 암기하게 하고, 중학교 통학버스가 나갈 때까지 붙잡아 놓고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내 준 문제를 틀리면 손바닥을 때려 주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참 똘똘한 녀석이었는데, 하루는 옷에 대변을 실례했다.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리더니 장에 탈이 난 것을 늦게 알았던 것 같다. 당시엔 유선 전화밖에 없던 시절. 집에 전화해도 농촌의 바쁜 일에 지애의 부모님과 통화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여서 특별히 가정과 소통이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문화는 그냥 '학교에 맡겨 놓으면 선생님이 다...'하는 분위기여서 더욱 소통이 쉽지 않았던 면도 있었다.

옷에 대변 실례를 한 후 지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순간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12살 소녀를 보았다.

12살 아가씨에게 이 상황은 너무 창피한 일 아닌가. 눈 빛이 흔들리고 있었고 애절했지만, 곧 소녀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스물 다섯 새내기 총각 선생에게도 12살 소녀의 현재 상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어찌 둘 지 몰랐고 순간 정신을 차려 옆 반 여 선생님을 불려오는 기지를 발휘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풀 죽은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던 것 같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뭐."

사랑의 원형은 관계를 떠나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봐 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껍데기를 하고 있는지보다, 그가 누구인지보다 '그가 그'임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사랑의 원형이다.

간단하다. 똥을 담으면 똥 단지고, 금을 담으면 금 단지다. 하지만 금을 똥단지에 잘 담지 않으며, 똥을 금단지에 담는 일은 더욱 없다. 사람의 모습을 하면 사람의 마음이 있고, 동물의 모습을 하면 동물의 마음이 있고, 돌의 모습을 하면 돌의 마음이 있다. 늘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그러하니까. 따라서 사람은 사람 그 자체로, 동물은 동물 그 자체로, 식물은 식물 그 자체로, 돌은 돌 그자체로 있을 때 행복하며 그가 그 자체로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그(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다.


사람 살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다.

사람은 다양하다. 껍질도 다양하고, 마음도 다양하다. 한 사람의 마음도 조변석개 같아서 무지개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무엇이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좋다~.'는 풍경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느끼는 것처럼,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지만 '맛있다~'는 식당의 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마다 체력은 다르지만 '힘들다~'는 일은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처럼,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 몸을 던지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 아이를 보며 졸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사람이기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가지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 마주 한 것(사람이던, 아니던)을 인정하고 그대로 봐 주려는 경향성'이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원형이다.


그러니 사람살이의 긴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 동물, 식물, 돌덩이조차도 당신 마음대로 재단하려 하지 마라. 손톱만큼 작은 돌 하나도 부서지면 다시 그 성질의 돌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나'다. 마치 신인양 그(그것)를 마음대로 재단하려 말고 그(그것)에 마주 서서 그와 소통하려 해야 한다. 앞에 서 있는 그(그것)를 알아야 그(그것)를 그(그것) 자체로 볼 수 있고, 그(그것)를 알아야 그의 삶(속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그(그것)'도 역시 소중하다.

TAG •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공지 "사람을 잇는 교육"의 모든 글은 저작... 2015.05.29
369 봉단이 봉단이의 세상이 멈추다. file 2023.04.17
368 Story_In [Story_In 28호] 농부는 철학자 file 2023.04.10
367 봉단이 무거운 출근 file 2023.03.10
366 Story_In [Story_In 27호] 이 시대 전문가 2023.02.23
365 사는담(談) 잘 살아 보세~~(나만) 2023.01.03
364 사는담(談) 미성년 돌봄 휴가가 필요하다. 2022.12.29
363 Story_In [Story_In 26호] 살짝 조금만 열심히 보기 2022.11.1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7 Next
/ 57

  • 교육 이야기
  • 심돌이네
  • 자폐증에 대하여
  • 자료실
  • 흔적 남기기
  • 작업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