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2.06.07 18:38

식사시간의 풍경

(*.179.72.206) 조회 수 4743 추천 수 94 댓글 0
특수학교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는 아이의 풍경, 교내 매점을 습격하다시피 쳐들어가 과자를 마구 뜯어먹는 아이의 풍경, 교사에게 발길질을 하는 아이의 풍경 등.

처음 특수교육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러한 풍경들은 생소하고 불안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9년간 특수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이러한 느낌들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요. 뛰고 싶고, 먹고 싶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화내고.... 방 이곳 저곳을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는 우리집 세 살박이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생각해 봅니다.

특수학교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사시간의 풍경입니다. 여기 저기 밥이나 반찬을 흘리며 먹는 아이, 소리를 지르며 밥을 먹는 아이, 조금씩 얌전하게 밥을 먹는 아이, 고기 더 달라고 아우성인 아이..... 그 속에서 밥을 먹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와 밥을 먹이겠노라고 땀을 뻘뻘 흘리는 선생님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식사를 어떻게 하시나요?
우아하게? 아니면, 게걸스럽게?
저는 밥을 맛있게 먹으려고 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감자나 육류가 나오면 조금 덜어오거나, 아예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신 제가 좋아하는 적당하게 맛이 든 김치나 쌈을 싸 먹을 수 있는 온갖 푸성귀는 많이 가져옵니다. 욕심껏. 그리고 맛있게 먹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맛있는 것은 많이 먹게 되고 맛없는 것은 조금, 또는 먹지 않게 됩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이가 김치를 먹지 않을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 집의 첫째 아이는 김치를 싫어합니다. 대신 고기나, 햄버거, 라면 등은 아주 잘 먹지요. 야채 섭취가 적어서인지 대변보는 일도 쉽지 않아 걱정입니다. 식사 때 아이에게 김치를 먹이기 위해 처음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아이를 꼬드깁니다.
"김치 먹으면 맛있는 과자 줄게" 또는 "김치 먹으면 컴퓨터 할 수 있게 해 줄게"
그래도 김치를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물론, 협박의 단계에 들어서는 거죠. 회초리를 옆에 놓고 바닥을 탁탁 치면서
"빨리 먹어! 먹지 않으면 혼나!"라고 협박합니다.
그래도 안먹으면 정말 회초리로 때리냐구요? 때리지는 않지요.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아들을 보면서 혀만 끌끌 치며
"그래, 너 한 번 굶어봐라..."
로 식사전쟁은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집에서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을 때 매를 들고 위협할 뿐 실제 아이들 때리면서 밥을 먹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조기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입니다.
고백하건데, 그 당시에 저는 식사시간에 밥을 먹으려 하지 않으면 음식물을 입에 넣고 턱을 제 손으로 움직여 억지로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구요. 하루는 7살 짜리(만 6세)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플라스틱 숟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저는 억지로 밥을 먹이려고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야, 심돌, 누군가 너 식사시간에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입에 넣고 억지로 씹게 하고, 게다가 네가 물고 있는 숟가락을 억지로 빼내는 과정에서 숟가락이 부러지면 너는 기분이 어떻겠니?'

또한, 예전에 식사시간에 뺨을 맞는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식사 중에 뺨을 맞았다면 분명 큰 잘못을 했겠지, 식판을 던졌나? 아니야, 저 정도로 혼나는 것을 보았을 때 더 큰 잘못을 하였을 거야... 그럼, 수저로 누군가를 위협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갑자기 교사에게 발길질을 하는 김모 학생도 생각났구요. 제 홈을 찾으신 분들 중에 식사시간에 뺨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 분도 있습니까? 본인은 아니더라도 주위의 사람들 중에...
'만약,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였다면, 아니, 그냥 일반학교의 학생이었다면 어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특수학교에서 식사지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사지도. 필요하지요. 장애인도 결국 일반사회에서 일반인과 함께 섞여 살아가야 하니까요. 장애인이 일반인과 함께 식사할 때 위협이나 불쾌함을 준다면 일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큰 장애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개인적인 생각임), 특수학교 대부분의 식사지도라는 것이 편식지도에, 그것도 강제로 먹이기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록 극소수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장애를 가진 학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밥이 목으로 넣어지고 있다면, 장애학생이라고 해서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공포의 시간이 되고 있다면 식사지도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식사지도를 하자는 이야기인데?

제가 생각하는 식사지도는 이렇습니다.

첫째, 일반아이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인정하자.
일반아이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인정한 상태에서 식사지도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애학생이기 때문에, 의사표현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들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세심함도 일반아이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기본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맛있거나 배가 고플 때 밥을 많이 먹습니다. 배고프지 않거나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물론 먹지 않지요.

둘째, 음식 먹기보다 음식 받기를 지도하자.
일반적으로 식사지도를 하다가 보면 먹는데(먹이는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먹으면 좋겠지요. 이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음식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많이, 싫어하는 음식은 조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도 말입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의 경우 음식을 받을 때
"더 주세요" 또는 "조금 주세요"
라는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음식을 먹이는 것 보다 적당량의 음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셋째, 억지로 먹이지는 말자.
밥을 전혀 먹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이가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라면 정말 억지로 먹여야 하겠지요. 이 때도 부모와 협력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냥 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건강함에도 밥을 먹지 않을 때는 대부분 식사 전에 간식이나 음식을 많이 먹어 식욕이 없거나, 몸이 아파 식욕이 없거나 둘 중 한 경우일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가정과 연계하여 적절한 운동을 시키거나, 간식을 줄이겨나 하여야 할 것이며 후자의 경우는 편안하게 쉬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억지로 먹이는 것은 아이나 선생님 모두에게 힘든 일일 것입니다.

셋째, 심각한 문제 행동이 있으면 식당을 벗어나서 야단치자.
식사 중에 아이가 심각한 문제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문제행동이란 식판을 던져버리거나, 남을 때리거나, 남의 음식에 침을 뱉거나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만약 식당에서 즉시 벌을 준다면, 선생님은 감정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있고, 아이는 더욱 화가 날 수도 있으며, 주변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위협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는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벗어난 후에 벌을 주던지, 야단을 쳐야 할 것입니다. 식당을 벗어나는 동안 선생님은 감정이 사라질 것이고, 아이는 조금 안정될 수도 있으며, 식사하는 다른 학생들은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사시간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것은 장애인이나, 일반인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 한가지란 생각을 해 봅니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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