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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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0월에 교지에 썼던 글인데, 교지발간일보다 먼저 올려놓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좀 묵힌 후 올립니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 정호승 "연어"의 일부 -
 
 
   2011년 가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인간’ 잡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애플 컴퓨터를 써 본 제게 잡스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잡스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기사들이 넘쳐날 때 저는 우연히 2005년에 잡스가 스텐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다는 연설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잡스는 여기에서 몇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그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점의 연결’에 관한 것입니다.
   잡스의 이야기처럼 삶은 매 순간순간을 점으로 찍으며 어떤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 점들은 결코 현재의 시간에서 앞(미래)을 내다보며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회고하면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저도 길지 않은 삶이지만 돌아보면서 명확해지는 점(일종의 ‘삶의 변곡점’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들이 있습니다.
 
    삶의 점 중 큰 기억 하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그려집니다.
   1981년. 아버지께서 힘들었던 20여년 광부생활을 정리한 직후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강원도 정선군 여량리 아우라지 아래 마을에 집 사시고, 땅도 사셨습니다. 평범한 농부의 삶을 꿈꾸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꿈은 자식의 중병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 저는 ‘결핵성 심낭염’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혈액이 순환되지 못해 온 몸이 붓고 숨이 차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살 수 있는 확률이 50%도 되지 않는 중병이었죠. 자식의 중병을 치료할 생각에 부모님께서는 그토록 원하셨던 농부의 삶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집과 밭을 모두 팔았지만 자식의 중병을 고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생활보호 대상자’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 벌어먹기에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부산대학병원에서 치료하고 수술하고 또 치료하고 수술하고……. 꼬박 3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참 긴 병원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제 삶에 있어서는 너무나 소중한 변곡점을 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물론 여러 신부님과 수녀님들,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가족과 많은 친척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린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 꿈은 어린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 외로움도 함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춥고 어려운 삶의 파편들도 나의 한 부분으로써 사랑하며 품고 견뎌가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1988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제 삶의 두 번째지만 가장 진한 변곡점을 마음에 새깁니다.
   공주에서 자취생활을 하다가 여름방학을 맞아 부산 집으로 왔습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그 때가 아마 저녁 7시 정도는 되었나봅니다. 대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루에 앉아 막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술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생전에 아버지께
   “대장, 술이 그렇게도 좋아? 난 술이 맛있는지 모르겠던데…….”
   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싱긋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술이 맛있어서 먹냐? 취하려고 먹지…….”
   아무렇게나 가져온 먹다 남은 신 김치 몇 조각, 소반이나 쟁반도 없이 마룻바닥에 놓여있는 소주병, 그리고 마치 백발의 노인처럼 머리엔 하얗게 고무가루를 뒤집어 쓴 채(당시 부산지역은 신발산업이 호황이었고, 아버지는 신발재료를 만드는 고무공장에서 일하셨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신 아버지. 무엇에 취하고 싶으셨는지 퇴근하자마자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눈앞에 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지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강한 척하며 살아온 한 없이 불쌍하고 약한 한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와 비슷했던 40대 후반. 얼마나 많은 꿈이 있었을까요? 힘든 광부의 일(선산부. 소위 ‘막장’에서 일을 하셨죠.)을 접고 자신의 땅을 일구며 살고자 했지만 자식의 병으로 원하지 않던 타향살이에 또다시 진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남자. 늘 처와 자식을 어깨에 얹고 그 무게를 견뎌야 했던 남자. 현재의 자신은 힘들게 일해도 가난하지만 미래의 자식들은 좀 더 편하게 일하고, 좀 더 부자로, 좀 더 행복하게 살기를 꿈꿨던 남자. 하지만 모든 꿈이 신기루 같았던 남자.
   아버지를 그냥 남자(필부匹夫)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가는 최후의 힘이며 큰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제 삶의 꿈은 저와 가장 가까웠던 한 사내가 가졌던 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학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동안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생활하였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사람”에 대한 깊은 고민을 지속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요즘은 ‘사람이 산과 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풀, 나무와 같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산과 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풀과 나무는 따듯한 볕과 적당한 비를 맞으며 저 혼자 스스로 그렇게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늘을 향하며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따듯한 볕과 적당한 비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어두운 밤의 달빛, 땅을 태울 것 같은 여름의 볕이나 살을 에는 소한小寒 추위, 산의 수풀에 가르마를 탈 듯 맹렬히 달려드는 태풍, 그리고 땅 속을 이리저리 파헤치는 벌레들과 짐승 등 수많은 관계들이 함께해야 풀과 나무는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사람이 풀과 나무와 다른 것이 있다면, 타인이 가진 꿈의 ‘그림자’를 본다는(느낀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가 아니기에 ‘그’의 실체를 온전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은 ‘나’를 둘러싼 타인의 꿈을 그림자로 볼 수는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렇습니다. 저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그’가 가진 꿈의 그림자를 느끼며 풀과 나무들처럼 스스로의 힘을 키우며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이 관계 속에서 타인이 가진 꿈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는 아이 편에서 관찰하고 아이의 관계를 이해해 주는 ‘진지한 대화’-코르착은 이를 ‘원래 자기 모습대로 있을 권리’라고 말합니다.― 가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망을 이루며 살 수 있는 ‘건강한 긴장’도 필요합니다. 건강한 긴장 없는 대화는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삶을 방해하게 되어 아이들의 전 삶에 대한 방향을 잃게 만들며, 진지한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폭력적인 긴장은 아이들 몸과 마음의 피폐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나름대로 진지한 대화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가진 모습을 읽으려 노력(대화)했고 그와 더불어 사회적 관계를 어렵게 하는 행동에는 매섭게 대처(긴장)하기도 했습니다.
 
   달장애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온 지 스물한 번째 되던 해. 저는 삶의 세 번째 점과 마주서게 됩니다. 
   2012년입니다. 그 해, 우리학교는 장애학생 체벌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전수조사를 받게 됩니다.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그랬겠지만 그 해의 일은 제게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지요.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이 기억의 점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폭력에 대한 옹호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사족처럼 달며 시작합니다.
   당시 선생님과 학부모 등 학교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한국경진학교의 교문을 들어서는 그 자체가 두려움과 혼돈 이었습니다. 15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봐 왔던 한국경진학교의 풍경을 바라보면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의 벽은 너무 높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학 졸업 후,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발달장애 아이들의 전생全生을 관통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었습니다. 꿈만 꾼 것이 아니라 이를 이루기 위해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개똥철학 같이 만들어 온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긴장의 교육’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을 지나면서 이런 것들이 어쩌면 저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다림과 칭찬의 위대함에 대한 함의가 있지만 저는 이 이야기에 담긴 함의는 교육의 단편만 바라보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람은 고래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냥 ‘춤추게 하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왜’ 춤추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기탄忌憚없이 행行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侍中 속에 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춤추지 말아야 할 때 춤추면 당연히 제지당할 수 있지요. 그래야 사람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 관계 속에 있을 때만 사람은 사람다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학부모는 칭찬 속에 춤추는 고래만 원하는 듯 해 보였습니다.
   2012년은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며 가져왔던 교육에 대한 모든 생각이 ‘초기화’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없던 시기였고, 주변 사람들이 가진 꿈의 그림자를 느끼기엔 너무나 강퍅한 시기였습니다.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스처럼 지나온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제게 새겨진 점들을 연결해 봅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발달장애 아이들의 전생全生을 관통하는 행복한 삶과 관련 있는 꿈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꿈입니다. 이 꿈은 태어나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 부모님과 가족들, 신부님과 수녀님들, 발달장애 아이들과 그 부모들……. 수많은 이들이 품었을 꿈의 그림자를 느끼거나 따라가면서 차곡차곡 쌓아진 것입니다.
   성년이 멀지 않은 우리학교는 그 역사와 함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건물 등 외형의 변화도 있었고, 관계나 정신 등 내면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치 않은 것은 이 학교를 보금자리로 하는 발달장애 아이들과 부모들의 꿈이고 선생님들의 꿈입니다. 
   ‘나’는 ‘그’가 아니기에 타인의 꿈은 그림자로만 볼 수 있을 뿐 실체를 영원히 알 수는 없습니다. 서로 관계하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자 가진 꿈의 그림자가 타인이 가진 꿈의 그림자와 관계할 때 그 꿈은 그림자에서 실체로 좀 더 나아가게 됩니다.
   저는 한국경진학교의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 등 모든 구성원이 서로 존중하며 ‘그’가 가진 꿈의 그림자를 보려 노력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꿈의 실체에 다가가기를 꿈꿉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Ubun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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