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8.12.23 12:39

매우 친한 사내들

(*.177.219.103) 조회 수 6216 추천 수 0 댓글 0
P1010156-5.jpg부자유친(父子有親)!
중학교 1학년인 아들놈이 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놈은 아비에게 늘 말을 놓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친구에게 말하는 투가 그대로 제게도 날라옵니다. 세대차인지몰라도 그 말투가 언젠가부터 귀에 거슬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잘 주고받다가
"졸라~", "짱나~", "~해!"
같은 류의 말이 들어간 이야기를 듣다보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아들아, 넌 왜 아빠에게 말을 놓냐?"
해서, 하루는 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잖아, 아버지와 아들은 제일 친해야 한데."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네 마음이 갸륵하다. 네 마음만은 알아주마....ㅋㅋㅋㅋ 하지만...OTL'

지난 주말에 어머니 생신으로 고향엘 다녀왔습니다.
“나이 들수록 남자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여자들은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하던데, 우린 딸이 없다....”
아내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가봅니다. 아들놈 이야기처럼 부자유친(父子有親)이죠.
물론 어머니를 뵙는 것도 반갑지만,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첫 직장을 잡아 사회로 첫 발을 딪던 1992년 12월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강원도 정선의 어릴 적 살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이장의 확인을 받고, 동원탄좌(석탄회사)에 들러 확인서를 끊은 후, 정선병원에서 진폐 판정을 받은 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 생각해 보면 그해 아버지의 연세가 53세였습니다. 아직 꿈도 많고, 하시고자하는 일도 많았을텐데 병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대장, 잘 지내셨어! 살이 조금 빠져서 그런가? 미남이 되셨네?”
저도 제 아들처럼 아버지께 말을 잘 놓습니다. 아들녀석도 닮았나봅니다. 그런데 제가 한 수 위죠. '아버지'라 부를 때보다 '대장'이라고 부를 때가 더 많으니 말입니다. ㅎㅎㅎ
아들의 흰소리에 더욱 많은 주름을 만드시는 아버지의 얼굴.  덥수룩한 수염에 얼굴을 한 번 문지리고, 병실에서 운동부족으로 솟아오른 배를 한 번 만져보고, 가느러진 다리와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만져봅니다.
눈빛 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찡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 부자간의 정인가봅니다.

사춘기적엔 “이해할 수 없는 어른”중의 한 인물로 느껴졌던 아버지였습니다. 주사가 셌죠. 술 마시는 어른이 싫었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술을 잘 못마시는-안마시는- 것도 어릴적 기억인지 모르죠)
제가 대학 1학년이던 여름. 그러니까 아버지 연세가 49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우리가족은 부모님의 일거리를 찾아 부산으로 내려왔고, 아버지는 우리가 터 잡은 집 근처 고무공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공주에서 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왔는데(당시 공주사대에 다녔거든요), 마루 위에서 아버지께서 소주를 마시고 계셨습니다.
머리엔 흰 고무가루를 가득 뒤집어 쓰시고, 김치쪼가리 안주에 소주 한 병을 놓고 마시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소주 한 잔을 하며 일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이 왜 그리 제 가슴을 울리게 하던지....

꿈을 가지고 살았던 한 사내.
젊어서 탄광생활을 하고 좀 더 좋은 삶을 찾아 탄광생활을 정리하고 밭뙈기 천여평 사서 농사짓고 살려고 시골에 정착했던 사내.
하지만 둘째 아들의 병으로 1년도 못되어 다시 대도시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내.
진폐증세로 기침이 마르지 않는 사내.
꿈과 희망이 별로 없어보이는 그 사내.....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한 인간, 그리고 같은 사내로서의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여름 이후로 “삶의 아픔을 간직한 한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아버지입니다.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온 이후로 아들놈이 반갑습니다.
아들놈의 반말도 반갑구요.
부자유친(父子有親)해야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서로을 잘 알면 알수록, 서로를 잘 배려하면 배려할수록 따듯한 정이 생길텐데....'
하는 마음이 드는 주말이었습니다.

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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