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9.09.17 12:20

꿈, 하늘이 참 높기도 하다.

(*.177.219.103) 조회 수 5087 추천 수 0 댓글 1

250px-Clear_sky.JPG 글을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진솔한 마음이 녹아 있는 글은 더욱 그렇다.
  진솔한 마음이 녹아 있는 글은 그 길이가 짧던 길던, 문장이 유려하던 투박하던 감동을 주기에 더욱 그렇다.
  좀 솔직해지자면, 내가 여기에 쓰는 글들엔 진솔함이 많지 않았다. 교사이기에 아무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나름대로의 자기검열을 하다보면 이야기해야 할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이야기할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기껏해야 나름대로 돌려서 표현한다는 것이 유식한 척 고사성어를 빗대거나 생각 많았던 척 짧은 시로 내 놓고 만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솔직한 이야기는 거의 못하는 것 같다.


  오늘 오랜만에 나의 홈페이지를 자주 찾는 여러 사람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방문했다.(나는 주기적으로 나의 홈페이지를 들르는 이에 대한 예의상^^ 그들의 홈에 들러본다.) 모두들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러 홈을 둘러보다가 한 학부모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한참이나 읽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마음이며, 교육에 대한 생각,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마음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저렸다. 특히, 졸업 이후의 걱정에 대한 생각과 啐啄同時의 비유로 부모의 안타까움을 표시한 부분은 더욱 그랬다.
  새 학기 들어 한 달이 다 가도록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학급의 아이들은 조금씩 더 안정되고, 학교의 여러 일들에 관심을 끊은 탓에 학교생활이 특별히 힘든 것도 아니지만 왜 이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걸까. 1년 가까이 피우지 않던 담배를 다시 피우며 마음의 소리를 듣고자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목마름이다. 헌데, 학부모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어떤 목마름이 마음의 안정을 앗아가는지 알았다. 특수교육을 시작하고 그 다음 해인 93년부터 늘 생각하고 바라던 꿈.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공동체의 건설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 설명할 때는 쉽게 이해하게 하려고 '캠프힐과 같은'이라고 설명했지만, 캠프힐과는 조금 다른 공동체다. 철저하게 지역에 기반하고, 우리 아이들이 그 지역 곳곳에서 생활하는 공동체이니 말이다. 나서 교육을 받고 취업하고, 병들면 병원가고, 나이 들어 죽을 때 보살핌을 받는, 사람의 일반적인 과정을 우리 아이들도 가질 수 있는 공동체 말이다.


  새해 첫머리엔, 멀게만 보이던 공동체의 꿈을 법인을 만들어 실현해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들 떠 있었다. 사람들과 의논하고, 사무실을 알아보며 눈이 반들거렸다.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자 학급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학급의 여러 활동들도 교육적 상상력이 표현되어 즐거웠고, 집에 들어가도 즐거웠다. 하지만 1학기 끝날 쯤 법인 만드는 일도, 비영리 사회단체를 만드는 일도 나의(우리의) 객관적 환경 속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 즐거움이 급격히 내려갔다. 마치 주둥이를 묶지 못한 채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처럼.
  보편적으로 교사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된다. 학교에서 일 한 만큼 보수를 받아 가정을 꾸려나가면 행복하다.  늘 윗분들에게 공손하고, 윗분이나 국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비판 없이 따라가 주고,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고 딱 대다수 교사들이 하는 만큼만 해 주면,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교사는 참 편안한 직업이다.
  그런데 다 알면서도 그게 안 된다. 그렇게 해도 행복하지 않다. 내가 늘 만나고 생활하는 이 아이들이 평생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뭐 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도 아닌 것도 안다. 남들보다 더 많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많은 연수를 듣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친화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없어도 꽃 피고 눈 오며, 내가 없어도 이 사회나 학교가 잘 굴러간다는 것도 안다. 잘 알면서도 그렇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전 생을 고민하는 사람들(학부모 등)에게 비전을 보이고, 이들을 조직하고 자본을 끌어들이면 어렵더라도 이룰 수 있는 공동체인 것 같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교사를 하면서 전면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두 아들에게 '손에 무엇인가를 꼭 쥐고는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게 안 된다. 나의 가정이 소중한 탓이겠지.


  매해 10월쯤이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고향. 시골, 어릴 적 친구들과 산딸기도 따 먹고 발가벗고 물놀이도 하고, 짓궂게 새집을 털어 새알을 깨던 그 곳. 철철이 산에 올라 산나물 뜯고 다람쥐 잡던 그 곳 강원도 정선. 꼭 그 곳이 아니더라도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솔직히 이젠 좀 무겁다. 혼자서 하는 푸닥거리 같지만 15년 이상 꿈꾸며 이루려 했던 것들이 나의 몫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여전히 주위 동료들은 이룰 수 있는 꿈이라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장애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 이들과 그 부모의 가슴 아픔을 생각하며, 누가 시키지 않고 스스로 짊어지고 왔던 꿈이지만 이루기엔 너무 크다.
  지금은 9월. 조금 있으면 내신을 낼 수 있는 계절이 또 돌아온다. 잊지 않고 고향에 대한 향수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는다.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출퇴근하면서 집 주변에 푸성귀 키우고, 특수학급에서 좀 더 장애 정도가 덜 한 아이들과 편안하게 만나며 가벼운 어깨를 가지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이 생기고 난 후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은 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도 잘 돌아갈 테니 말이다.


  꿈. 사람에게 꿈은 뭘까. 하늘이 참 높기도 하다.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 ?
    김승현 2009.09.17 22:46 (*.193.29.156)
    제 아이와 제게 선생님이 마지막 희망이라면 너무 버거운 짐을 지워드리는 걸까요? 늘 멀리서 마음만 드리는 것이 염치없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공지 "사람을 잇는 교육"의 모든 글은 저작... 2015.05.29
327 사는담(談) 두번째 북 콘서트를 하다. 2020.08.14
326 책과 영화 계몽의 변증법-우리가 알고있던 이성에 대한 새로... 2020.07.22
325 책과 영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_언어의 쓰임에 ... 2020.07.08
324 시(詩) 숲 속 마을 맹꽁이 2020.06.27
323 봉단이 반려견 발톱 관리 file 2020.06.23
322 시(詩) 살구 세 알 2020.06.17
321 책과 영화 앎의 나무-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 file 2020.06.15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57 Next
/ 57

  • 교육 이야기
  • 심돌이네
  • 자폐증에 대하여
  • 자료실
  • 흔적 남기기
  • 작업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