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10.02.23 23:42

담임을 한 해 쉬며.

(*.177.219.103) 조회 수 6329 추천 수 0 댓글 0
   올해는 교과를 맡았습니다. 참 오랫만이네요.

   92년 처음 특수교육을 시작해서 작년까지 총 18년동안 교남학교에서 직업 1년, 경진학교에서 교과전담(컴퓨터) 2년을 뺀 나머지 15년을 담임노릇을 했습니다. 특히, 경진학교에서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연속 10년동안 담임을 했지요.


   누가 뭐래도 특수학교에서의 꽃 보직은 담임입니다.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무슨 부장이 좋은 보직이고 좋은 선생님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분명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어야 합니다.

   담임으로 역할을 잘 하려면 아이들 행동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며, 교수 실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업을 위해 주위의 여러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지휘자이며 감독이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서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는 능력(미국말로 '멀티플레이어')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말 좋은 특수학교라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담임을 맡아야 하고 담임 선생님은 가장 존경받는 보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임을 맡지 못한 분들이 무슨무슨 부장이 되어 담임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좀 더 밀착하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곽에서는 행정실의 행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고요.

   하지만 실제 특수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담임은 그냥 담임이죠. 부장 아래, 행정보다 더 아래. 그냥 학교라는 조직을 굴러하게 하는 톱니바퀴같은 부속이라고나 할까요?


   많지는 않지만 사람인지라 화를 내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로부터 나의 자주성이 침해받았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대우를 원하는 사람 앞에 설 때입니다.

   어릴 적, 학교 다니면서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때였던 것 같은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승현아, 공부 좀 해라. 그렇게 뒹굴거리지 말고..."

   라며 나무라듯 말씀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 제 기억 속에 공부에 대한 유일한 잔소리였던 것 같은데, 그 소리를 듣고 막바로 그날 공부를 접었습니다. 그냥 두면 스스로 할 것인데, 어머니께서 간섭을 하니 골이 났었나 봅니다. 참 성질 못됐죠...

   지금은 많은 세월 속에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누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나의 자주성을 침해하거나 스스로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화가 납니다. 물론 어릴적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지만 참 오랫동안 무엇이 문제인가를 곱씹어 봅니다.


   2008년부터인가 우리학교에서는 학교장이 직접 각 반 담임을 정하여 발표합니다. 그 이전엔 A,B반으로 나누어 주고 각 담임보직을 맡은 선생님들이 제비뽑기를 했는데 말입니다.

   이게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학생들에 대해서는 해당 담임이 가장 잘 알고 있는데, 학교장은 자신이 아이들을 더 잘 아는 것처럼 직접 학반까지 정해서 담임을 맡기니 말입니다.

   학교장이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잘 보고, 학교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업무를 나누고 보직을 주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인사권자의 재량이니까요. 하지만 권한이라는 것은 정당하고 적절하게 행사되었을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권한행사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고 일방적이라면 폭력성을 띠게 되지요.


   작년(2009학년도)에 담임을 맡으면서 처음 얼마간은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제가 담임을 맡은 학급에 대해 여기 저기의 이야기도 들어보니 무척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장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학부모들을 몰아서 나에게 반을 배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말들이 없어도 실제 그렇게 보였습니다. 시쳇말로 바보가 아닌 이상....(학부모가 요청하여 배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학부모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지만, 나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난 그냥 하나의 도구처럼 된다는 것은 1년 내내 참을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담임을 올해는 맡지 않으려 했던 가장 첫번째 이유입 니다. 사람이란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옮겨지는 장기판의 졸은 아니니까요.


   오랫동안 담임을 하면서 가능하면 꼭 지키려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체벌을 하지 않는 것(가능하면... 정말 가능하면....), 부모님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선물이나 촌지를 받지 않는 것, 마음을 나누고 평화로운 학급을 만드는 것 등.

   특수교사로서 담임역할을 하다 보면 일반학교의 교사와는 달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과도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십 수년 동안 담임을 했지만 늘 어려운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보다 학부모들과의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다 하면, 진심으로 아이들과 생활한다면 교사로서 권위가 생기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생활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더군요. 오세암에서 '길손'이 그러죠. '마음을 다 해 부르면 엄마가 오냐'고... 길손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으려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했지만 여전히 학부모들과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개인적인 선물이었습니다. 담임을 맡으면 연초에 누누이 당부를 했지만(매해 학년 초에 보냈던 글)늘, 매해 크고 작은 선물을 주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보내는 인사를 뭐 그리 민감하게 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늘 이것은 댓가성이 없이 그냥 존경이나 좋아서 주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당신 자식 사랑의 큰 마음으로 내미는 선물이지요. 일례로, 담임생활을 아무리 해도 담임이 지나간 이후에도 선물을 보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죠. 졸업 이후엔 더욱 없죠? (그렇다고 담임 아닐 때 선물 보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참, 꼭 이렇게 말해야 하니ㅋㅋㅋ)

   한 번은(아마 200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이 보낸 선물을 모두 모아 두었다가 학년말에 나누어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참 분위기 썰렁했겠죠.^^

   그리고 지나서 하는 이야긴데, 학부모 개인이 무언가 제게 선물을 했을 때, 그것을 제가 집에 가져 간 적은 피치못한 사정이 있었던 몇 경우만 빼고 거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면 가능하면 아이들과 나눴고(생각해 보니 한 번은-2003년인가?- 여름방학 끝에 집에까지 찾아오셔서 복숭아 선물을 주신 것을 개학식때 여러 부모님들과 나눠 먹은 적도 있었네요. 그 어머니가 우리반 나눠 먹자고 한 턱 내셨다면서..) 물품이었으면 그냥 학교에 두고 썼습니다.(10년 묵은 짐을 정리해서 교실을 옮기려니 사물함 깊은 곳에 와이셔츠 핀과 넥타이핀 세트가 있더군요. 뭐더라...기억이 안 나더군요. 그냥 쓰레기와 함께 버렸습니다.)


   선물과 관련해 이어지는 것인데,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것은 당신 자식에 대한 너무나 큰 사랑이었습니다.

   학급을 운영해보면 예쁘게 보이는 아이가 있고, 밉게 보이는 아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두 아들놈들도 어떤 경우엔 한 놈이 더 예뻐 보일 경우가 있더라구요. 사람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 예뻐 보여라....예뻐 보여라....예뻐 보여라....예뻐 보여라....'

   밉게 보이는 아이일수록 그 아이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기도 하고, 늘 어루만지고 인사하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극복하게 되죠. 학급의 모든 아이들을 품에 안고 행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노력에 의해.

   그런데, 담임의 이런 노력에도 아랑곳 없이 매해 늘 당신의 아이만이 특별대우를 받고자 하는 분이 꼭 있더군요. 정말 많이 배려해 주고, 어떤 경우 역설적으로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받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신경을 써 줘도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매해 있었습니다. 같은 장애를 가진 다른 아이들이나 그 부모들을 보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행복을 나눴으면 좋으련만, 배타시하고 꺼려하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나눔, 참 어렵습니다. 술에 취해 전화로 같은 반 아무개 친구를 헌담하거나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고...헐... )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 이런 경우에 몹시 화가 납니다. 그런데 학부모들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 화를 참으려니 에너지가 좀 많이 고갈되더라구요. 이것이 제가 올해는 담임을 맡지 않으려 했던 두번째 이유입니다. 에너지가 많이 떨어졌으니 오래 이 곳에서 선생노릇하려면 조금 더 멀찍이 떨어져 충전을 해야 될 것 같더라구요.


   언제 담임을 또 하고 싶어질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몇 해 더 쉬고 싶은데 그게 잘 될런지......

   어쨌거나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그냥 별 생각없이 하고 싶은 일이나 재미있게 하며 살아야죠^^


*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들의 애환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죄송하게도 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들을 흉보려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많은 분들은 알것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하는 생각인데, 인간의 이기심이 있는 한 함께 나누고, 함께 평화로워서 행복해지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10명 내외의 작은 사회에서도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 생각해 보면, 차라리 우리 아이들만 있을 때가 그래도 더 많이 함께였고, 평화로웠으며,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요.......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 교육 이야기
  • 심돌이네
  • 자폐증에 대하여
  • 자료실
  • 흔적 남기기
  • 작업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