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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14.04.29 10:12

필부(匹夫)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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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로 어린 생명들을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보내는 가슴아픈 시절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시절, 가슴아프고 어지러운 와중에 지난 주에는 또 한 명의 필부(匹夫)가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저의 아버님입니다.


제 아버님은 해방 전인 1940년에 강원도 골짜기에서 나셔서 해방의 격동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1950년, 11살의 나이에 6.25 전쟁으로 같은 민족인 북한의 인민군에게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로 자라셨습니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국민학교를는 졸업하시고 동생과 구걸하다시피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내셨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옹기 굽는 기술을 배워 강원도 정선에서 옹기를 구웠다고 합니다. 

그 후 혼인하여 스물다섯 전후하여 좀 더 돈을 벌 생각으로 60~70년대 '산업역군'으로 불렸던 광부생활을 강원도 사북의 '동원탄좌'라는 광산회사에서 시작하셨습니다. 

1980년. 박정희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4월 24일 사북에서는 소위 '사북사태'라는 노동자들과 경찰과의 충돌이 이루어졌고, 많은 분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광주항쟁 약 한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우리 자식들에게는 절대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1년. 15년 정도의 광부생활을 청산하고 퇴직금 등으로 땅 사고 집 사서 처자식 데리고 알콩달콩 살겠다고 강원도 여량(아우라지 근처)에 자리를 잡지만 1년도 채 못되어 자식의 병으로 집과 땅을 모두 팔고 부산(당시에는 신발공장이 많았습니다.)으로 내려가셔서 신발의 재료인 고무를 제조하는 공장의 노동자로 10년을 사십니다.

1992년. 자식들 모두 성장하고 아버님에게 어느정도 여유가 생길 무렵, 탄광생활의 후유증인 '진폐증'으로 53세의 나이에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그 이후 아버님은 22년의 투병생활을 하십니다. 22년의 투병생활 중에 중환자실에 내려가신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정신(정신력이 정말 좋은 분이었습니다...)으로 이겨내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올 설을 지나면서 찾아온 위기는 어찌하지 못하시고.. 끝내 지난 19일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을 묻고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아버님이 살아오신 길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어찌보면 참 특별할 것 없는 필부(匹夫)의 삶이지만 또 어찌보면 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몸으로 느끼며 사셨던 우리 세대 모든 부모님들의 삶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높은 산 출중한 소나무나 주목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낙락장송이나 천년주목 또한 들판에 나뒹굴며 살아가는 못나거나 소용없을 것같은 들풀들이 없으면 빛나지 않고 심지어 그 존재마저 위태롭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는 비싼 보석이나 금괴가 아니라 풀, 공기, 나무, 물처럼 '너무 많아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풀, 공기, 나무, 풀처럼 결코 두드러지지 않거나 못나 보이거나, 존재감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삶이야말로 진정 소중하다고.


지난 주 필부(匹夫)로서 성실한 삶을 살다가신 제 아버님을 생각하며 가슴 먹먹할 때 찾아주셔서 위로해 주시고, 멀리에서 마음으로 위로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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