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10.04.09 19:08

겸손과 감성(정)의 집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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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과 폭력에 대해 생각을 해 봤다.
   언뜻 생각하기엔 전혀 연관이 없는 듯한 말.

  "근 지구 위 누구나 중심이다."
   실학자 홍대용의 말이다.
   그렇다. 사람이란 게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한다고 해도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여 자신의 입으로 말한다.  게다가 많은 심리적 연구결과와 일상의 삶이 말해 주듯이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이성적이지 않다.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 이성의 동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사람의 생각하는 힘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일 뿐이다.(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이와 유사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감성적 광고와 논리적 광고를 통한 생수 선택에 대한 이야기. 감성적 선택이 약 3/5 정도, 이성적 선택은 약 2/5 정도.)
   자기중심적인 세상, 감성(정)에 더 많이 좌우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자신만을 주장한다면 세상 사는 것이 참 두려워질 것이다.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들이 여러 예의와 범절, 규칙, 법률 등이 아닐까. 여기에서 예의와 범절, 규칙, 법률 등은 개인 스스로의 결과물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간의 외부와 집단의식에 의한 이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예의, 법률 등이 외부와 관련된 이성의 결과물이라면 "겸손"은 인간 스스로 내부 이성의 결과물이다. (종종 아래 이야기에서 사람의 마음이 무지개처럼 다양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 개인은 내적으로 아주 많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어 어떤 경우엔 예수의 모습이었다가 어떤 경우엔 악마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지킬과 하이드를 지은 스티븐슨은 인간을 꿰뚫어보는 참 좋은 눈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을 다스리고, 자연 속에 유일한 자신을 얼마나, 어떻게 드러낼 지 결정하는 것은 이성이다. 그리고 이를(이 결정을) 또 다른 중심들(사람들)과 함께 나누려 노력하고 행하는 행위의 근본이 겸손이다.
   덕분에 겸손은 참 좋은 것이다.

  람은 누구나 세상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이는 생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는 거미줄처럼 얽힌 여러 규칙과 법률, 삶의 양태, 지위, 부의 정도, 마음의 크기, 수양의 정도 등에 따라 나름대로 위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어떤 경우 그 위치를 바탕으로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중심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평상시엔 문제가 없지만 서로의 이해가 상충될 때,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감성(감정)이 사람의 본성을 더 많이 장악할 때 지위에 바탕으로 타인의 중심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점유하려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자신의 중심을 침해받은 이는 인간으로서의 상실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침해는 당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폭력적이며 슬프다.

  손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임을 아는 것처럼 타인 또한 세상의 중심임을 알기에 슬픔을 잠재운다. 겸손은 감성보다 더 이성적이기 때문에 비폭력적이다.
   겸손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여 이미지화하지 않으며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는 욕심을 버려 좀 더 마음이 커지고 좀 더 겸손하였으면 한다. 그리하여 좀 덜 폭력적이고 평화로웠으면 한다.
   좀 더 힘 있고, 좀 더 높은 위치에 있고, 좀 더 부자이고, 좀 더 배우고, 좀 더 큰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힘없고 낮은 위치에 있으며, 부자도 아니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좀 더 배울 수 없는 이들 또한 겸손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 때때로 그들의 겸손은 오만으로 비칠 때가 더 많다. 겸손은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가진 자들에게 더 필요한 경우가 많다.(못 배운 이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인 면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해는 이러 저런 이유로 좀 쉬려고 했지만 뜻과는 상관없이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신경을 쓰게 된다.
   하늘이 주신 천성이 타인과 다르고, 천성이 다르다보니 보는 눈도 다르다.

   싫은 것을 좋다고는 못한다.

   옳지 못한 것을 옳다고 하지도 못한다.

   스스로 겸손하지 못한 걸까. 아님, 겸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나름대로 좀 더 이성적이고 좀 더 겸손하려(내가 가진 그릇 크기에서나마) 노력하고 평화롭고자 하지만 더 감성적인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미 이미지화(낙인화)를 끝낸 이들에게 이성이 들어갈 공간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집단을 이루고 한바탕 종교의식을 치를 때면 더욱 그렇다.

   래서 난 슬프다.
   식스센스의 꼬마 주인공 콜 시어처럼.

 

식스센스-사회적 진실과 절대적 진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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