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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Story_In
2015.05.08 13:51

[Story_In 12호] 사랑, 그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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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Scan0002.jpg

                                                       <마음>

 

대학원 과제로 발표한 글입니다. 사랑의 편린-1.hwp

 

사랑, 그 편린들


   1.
  희소한 것이 가치롭다고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의 희소한 것은 그만큼 적게 쓰이기에 조금 만들어진 것이고, 정말 필요하고 가치로운 것은 많이 쓰이기 때문에 흔합니다.
  금 과 다이아몬드가 희소하여 가치롭게 느껴지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것이 없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반대로 주위의 풀과 나무, 공기, 물, 쌀, 배추..... 너무나 많이 있어 가치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어떤가요? 이것들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가치롭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풍족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어쩌 면 징그럽게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은 꼭 필요합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그 가치가 있으니까요. 사람은 수태되면서 물리적 생명을 가지지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면서 사회적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주위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가 나에게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나는 공기로 숨 쉬고 물로 목을 축이며 곡식을 먹고 사람들과 함께 섭니다. 이 모든 것은 흔해 보입니다.

  2.
  앞면이 없는 동전이나 뒷면이 없는 동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동전이 되기 위해서는 앞면과 뒷면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하며 또 불일치해야 합니다. 앞면과 뒷면이 일치한 동전이란 있을 수 없고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영원히 하나가 될 것 같지만 사랑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처럼 앞면과 뒷면이 일정한 두께(거리)를 두고 함께 있는 것입니다.

  3.
  며칠 전 네팔의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박수치며 좋아하기보다, 함께 눈물 흘리거나 혀를 두 번 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을 잠깐이나마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늘 자신의 운행을 하며 때때로 많은 생명의 목숨을 거두어갑니다.1) 이를 두고 노 선생(老子)께서는 천지(天地)가 불인(不仁)하다고 하셨나봅니다.
  천지불인(天地 不仁). 자연은 어질지 않다고 합니다. 자연의 운행은 스스로 그럴 뿐 특정한 무언가를 위해 그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구를 위해, 동물을 위해, 사람을 위해, 길동이를 위해, 길동이의 내장 속 촌충을 위해…… 자연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4.
  어질지 않은 자연. 자연에게 사랑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느 6월 초여름, 모내기를 끝내고 며칠 후 어떤 농부가 집에 들어오다 보니 자신의 논 벼가 남들 것보다 키가 많이 작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모를 조금씩 뽑아 위로 올려 주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벼가 빨리 자라도록 도왔더니 정말 힘들구나.”
  이튿날 그 벼들은 다 죽었습니다.2)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어질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이 어질면 어진 미소의 뒤편에 있는 더 많은 것들이 힘들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어질지 않은 자연이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5.
  봉단이는 우리집 개입니다.
  봉단이는 눈치가 좋고 오랜 시간 같이 지내서 그런지 나와 마음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퇴근길에 보고 싶은 나의 마음과 현관을 들어설 때 기절할 듯 반갑게 맞아주는 봉단이의 모습을 보면 분명 서로의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난 봉단이를 사랑합니다. 아내의 말로는 사람에게 이성이란 것이 있어서 그 놈이 사랑이라 듣고 (사랑이라)느끼고 (사랑이라)표현하며 사랑으로 가도록 한다고 합니다. 개들이 새끼를 돌보는 것도, 동물들이 본능에 의해 짝을 찾는 것도 사람이 이성으로 듣고 (이성으로)느끼고 (이성으로)말하고 (이성으로)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해 수 만 마리의 애완견이 버려집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똥을 가려 눴으면 좋겠다.’거나 ‘짖지 말았으면 좋겠다.’ 등 사람이 기대한대로 개가 행동해주지 않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대는 비현실적이며 폭력적입니다.
  개를 개답게, 개를 개로 이해해 주는 것. 정말 개를 사랑하려면 자연처럼 불인(不仁)해야 할 것 같습니다.

  6.
  사람을 포함한 유기체의 본질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3) 표현방법이 고상한가 직설적인가를 떠나 사랑을 하게 되는 시작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암수의 짝짓기입니다. 사람은 성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품위 있습니다.
  동물들의 짝짓기는 이성이 없음으로 불인(不仁)에 가깝지만 사람의 짝짓기는 불인(不仁)하지만은 않아, 매우 미묘하고 복잡해 보입니다. 사람에겐 이성과 그 이성에서 분화되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발전된 감정4)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향한 끌림 속에 이루어지는 밀고 당기기와 만나고 헤어짐, 만남과 엇갈림, 그리고 애무와 성교. 이성에 눈 먼 사랑을 해보지 않고서는 다른 모든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성과의 사랑이야말로 사랑의 시작점이며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7.
  사람들은 타인을 판단할 때, 그의 고유한 모습과 목소리, 스타일 그리고 성품 등을 기준으로 ‘그’를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이 타인을 판단할 때의 기준은 ‘그’가 아니라 ‘나’입니다. 나의 눈과 귀, 그리고 내 손의 촉감으로 그를 이성적으로 인식하여 내가 가진 감정의 틀 안에 집어넣은 후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들이 보는 그, 직장 동료들이 보는 그,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이 보는 그 등, 한 사람을 두고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관계라 해도 ‘나’는 ‘그’가 될 수 없으며, ‘그’를 알거나 ‘그’의 마음에 근접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8.
  ‘그를 안다.’는 것은 그와 관계하며 그가 가진 삶의 그림자를 느낌으로써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이 사람 속에서 관계하며 알아가고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환상과 그가 가진 실재(현실)가 마주보고 내달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혹은 거리를 좁혀 만나면 반드시 멀어지는 어긋남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사랑은 끊임없이 같아지려는 마음5)입니다. 같아지기 위해서는 공 선생(孔子)의 말씀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그에게 베풀려하지 말아야 합니다.6) 나에게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만큼의 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같아지려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같아지려는 노력이 있어야합니다.

  9.
  ‘파이란’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현실 속의 사랑이 영화같지는 않지만 파이란에서 그리는 사랑은 현실 속에서 만날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3류 건달 강재와 불법체류자 파이란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지도, 서로이 삶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지만 어긋남(파이란의 죽음)이 있던 이전과 이후 시간을 두고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사랑.
  3류 건달 강재가 느꼈을 사랑의 감정을 파이란의 편지 속에서 잠시 엿봅니다.

    ......
    강재씨에 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씨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좋아지게 되자 힘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강재씨,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 주실래요? 만약 만난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응석부려서 죄송합니다.
    제 부탁은 이것뿐입니다. 강재씨,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합니다.....


  10.
  사람의 감정7)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가브리엘 대천사의 그것에서부터 루시퍼의 그것처럼 넓은 스팩트럼을 이룹니다. 이 색은 삶 속에서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색들이 현실에 나올 때는 서로 간섭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루시퍼의 감정을 지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루시퍼의 감정도 마음 속에 살고 있으며 그로인해 다른 여러 감정들이 살 수 있습니다. 위생가설8)처럼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루시퍼의 감정을 없애려고 한다면 가브리엘의 감정도 죽고 말 것입니다. 루시퍼의 감정을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잘 조절하려 해야 합니다.
  스팩트럼을 이룬 여러 감정들이 서로 하나 되려 하는 것은(하나될 수도 없지만) 자아를 잃는 길이며 기계적으로 분리하려 하는 것은 분열된 정신입니다. 마음의 건강한 숲을 이루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요.
뽀족뾰족 소나무
자작자작 자작나무
죽지 말구 살구나무
마당쓸자 싸리나무

꽃이 있어요.
예쁜 꼬리 제비꽃
낭군 바라기 백일홍
딸 보고픈 할미꽃

풀도 있지요.
앙증맞은 이질풀
가을 날의 구절초
아기친구 강아지풀

벌레는 없나요?
힘찬 청소 쇠똥구리
철갑두른 사슴벌레
얄미운 모기

짐승들도 있군요.
귀여운 볼 다람쥐
돌진하는 멧돼지
깜짝 놀란 고라니

아, 그리고
부드러운 흙이랑
딱딱하지만 정겨운 돌, 바위
상쾌한 바람도 있어요.
그 속을 걷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네요.

숲이예요.
이놈들 모두 손잡고 춤추면 숲이 되지요.
한 놈이라도 서로 이기려 바둥친다면
숲이 아니랍니다.


  11.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환상 속의 퍼즐그림이고 사람은 누구나 그 퍼즐을 맞출 퍼즐 몇 조각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21세기 들어서만 봐도 2004년 인도네시아 아체지진 22만명, 2008년 중국 스촨성 지진 8만 7천명, 2010년 아이티 지진 30만명, 2011년 일본 도호쿠 지진(후쿠시마 해일피해) 만 6천명 등.
2) 맹자 공손추 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말이 나오고 우리는 평소 ‘조장(助長)’으로 줄여서 일상 생활의 언어로 많이 씁니다.
3)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사람은 유전자들이 만든 생존기계입니다.
4) 보통 사람들은 사람에겐 ‘이성’이 먼저고, 이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전 이성보다 감정이 더 먼저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대부분은 감정의 연속이지 이성의 연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어떤 면에서 ‘계산’입니다. 우리의 삶 대부분은 결코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5) 같아지려는 마음이 서(恕)입니다. 나 스스로도 나에 대한 나의 환상과 나의 실재가 같아지려 노력해야하지만 결코 같아져서는 안됩니다. 같아지면 반드시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6)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자공이 “일평생 간직할 말 한마디를 해 주십시오.”라고 공자께 청하자 공자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서호(其恕乎) 기소불용(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7) 우리 선조들은 사단칠정론을 격하게 펼쳤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이 있다고 합니다.
8) 위생 가설은 위생시설이 점점 늘어나고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병원체에 접촉할 기회가 적어지면 면역체계의 대응능력이 약해지면서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1989년 독일의 ‘스트레첸’이란 학자의 가설이었으나 현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입니다. 요즘은 거의 Mysophobia 수준의 청결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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