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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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홍대용 지음 | 김아리 옮김

    출판
    돌베개 펴냄 | 2006.11.27 발간

 

   목에 눈이 번쩍 띄었다.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우리 선조 선비들 중에도 이렇게 그릇이 큰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릴 적 우리 역사와 선조 선비에 대한 기억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수박 겉핥기의 "태정태세문단세..."와 당파싸움에 찌든 조정, 주리론과 주기론, 사단칠정론 등과 같은 지루한 선조 선비들 간의 싸움, 글만 읽고 세상물정은 모르는 못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부지불식간에 채워졌었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심심하면 나오던 궁중여인들의 암투 때문에 우리 선조 선비의 모습은 허접하고 한심한 형체로 느껴지기 일쑤였다. 선조 선비에 대한 이런 느낌은 오랜 세월동안 마치 가는 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쌓여 갔다.

 

   월이 지나 좀 더 나이가 들고, 교과서에서 배우던 역사의 여러 것들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을 때 눈에 쏙 들어 온 것이 '실학'과 실학자들이다. 학교가 아닌 다음에야 교과서대로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강박관념이 없으니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것만 편식해도 누가 뭐라고 하랴.

   이수광, 유형원, 김석문, 박세당 등 초기 실학자들과 박지원, 정철조,이서구,유득공, 이익, 박재가, 이덕무 등 실학을 설파했던 실학자들 그리고, 최한기, 정약용, 이제마 등 실학의 꽃을 피웠던 이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보배가 아닌가 싶다.

   그 보배들 속에 홍대용이 있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혼천의를 만들었으며, 사람과 만물 모두 평등하고 둥근 지구 위 누구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한 실학자. 자신의 생각을 생각 속에 가두지 않고 실제 이 사회에서 펼쳐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실학자. 북경을 여행하여 '북학파'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낸 실학자 홍대용.

   유학이 최고라는 착각 속에서 망령되고 공허한 논의만 일삼고 함부로 다른 것(불가, 도가)을 배척했던 유학의 나라에서 만약 홍대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생각이 정책으로 반영되고 성공하였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을가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음 출세할 때부터 도둑같은 행동을 한다면 높은 관직에 오르고 싶을 때는 어떠하겠는가? 과거시험 부정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아마 남의 종기를 빨고 치질도 핥으며 아부할 것이니 장차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부"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한 말이다.(자신을 경계하라.)

   남의 종기를 빨고 치질도 핥으며 아부하는 이들이 어디 홍대용이 살던 시절(1731~1783)에만 있는 부류들이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더 요망한 것은 이렇게 해서 높은 관직에 오른 요즘 사람들은 부끄러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빽이나 줄로 낙하산을 타면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눈치를 볼 줄도 알았는데, 요즘은 대놓고 말한다.

   '줄과 빽도 다 능력이야!'

   라고. 게다가 더 가관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는 것이다.

   ' 억울하면 출세해~"

   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나도 빨고, 핥아서라도 저 자리에 가고 싶어. 저 사람이 많은 것을 참고 빨고, 핥아서 이 자리까지 왔으니 너도 빨 수 있으면 빨고, 핥을 수 있으면 핥아 봐!'

   라는 뻔뻔함이 들어있다. 아니, 개인의 뻔뻔함이 아니라 개인의 영혼에 영향을 주는 돈숭배 우리 문화의 뻔뻔함이 들어 있다.

 

   찌 생각해 보면 18세기 유학만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홍대용이 살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지금이 더 강퍅한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18세기, 봉건사회의 석양에 서 있던 홍대용과 신분제가 없는 민주주의 시대라는 이름을 가진 21세기에 서 있는 우리네. 분명 사회제도, 신분질서, 사람을 보는 눈 등이 사람 중심으로 많은 변화를 한 듯 하다. 절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18세기 노비보다 어떤 면에서는 21세기 강아지가 더 호강하는 사회이니 말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과연 역사의 발전에 비해 사람과 사람의 의식은 얼마만큼 발전했을까.

   18세기 봉건사회 조선. 신분제와 유학이 지배하던 사회. 법과 제도가 있었으나 권력자(왕)의 의중이 더 중요했으며, 신분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매겨졌고, 지배계급의 특권의식으로 한글을 무참하게 밟았지만 한문은 숭상하던 시대.

   21세기 민주사회라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  법과 제도는 발전했으나 여전히 그보다 더 쎈 돈으로 그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같은 죽음에 다른 가치가 매겨지고 있고, 지배계급의 특권의식은 '세계화'의 미명으로 한글을 무참하게 밟고 영어를 숭상하는 어린쥐 시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역사는 발전했다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면 세상이 더 강퍅해진 것이 아닌가.

 

  "사람 입장에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나 만물은 균등한 것이오."

 

   대용은 김석문의 영향을 받아 지구가 둥그며 스스로 돈다는 지구지전설을 주장한 학자이며 실학 실천가이다.

   홍대용은 그의 저서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둘글다는 이야기와 함께 둥근 땅 위 어디라도 중심이라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물리적으로 생각해도 둥근 표면 위는 그 곳이 어디던 중심이 된다. 당시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상당히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더구나 위 이야기처럼 사람과 만물까지 평등하다니!!!

    어디 그 당시에만 충격일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홍대용의 이야기는 충격일 수 밖에 없다. 사람과 자연을 보는 홍대용의 눈은 21세기에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입만 열면 녹색, 자연환경, 친환경....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그 기저는 사람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람을 위해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고, 사람을 위해 친환경 아파트를 만들고, 사람을 위해 친환경적으로 강을 파헤치며, 사람을 위해 동물들과 자연을 보호하자고 한다. 사람들을 위해.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진 자들의 끝없는 이윤추구와 가지지 못했지만 가지고 싶어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위해.

   하지만 우리의 선조 선비 홍대용은 말한다. 사람만을 위한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라고. 좋은 세상은 사람과 만물 모두 균등한 세상이라고. 제발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하면)

   1. 돌베게에서 나온 '우리고전 100선'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보물이다.

   일단, 설명이 쉽고 친절하니 나같은 얕은 지식의 사람도 우리 고전의 참 맛을 알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여러 생각들을 지금 우리 후손들의 모습 속에서 견줘보면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 오래된 사람의 생각으로 오늘을 새롭게 함이 참으로 아름답다.(溫故而知新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간혹 '우리고전 100선'의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너무 좋은 걸...

 

   2. 홍대용의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직업병이 도졌다. 과연 홍대용에게 장애인은 어떻게 비췄을까? 동식물처럼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존재하는 만물이 사람과 균등하다고 주장한 분이니 장애인을 보는 관점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3. 나름 기대가 컸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고 시간내어 책도 읽을 겸 글을 써 보자고 한 것이 벌써 세 달이 지났다. 빨리 한 편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니 책에 대한 소개가 잘 써지지 않는다. 역시 욕심이란 놈이 마음에 똬리를 틀면 다른 것을 넣기가 힘든가보다.

   오늘 소개한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우리고전 100선 '홍대용 선집']은 이 코너의 처음 주자가 될 충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선하고 나침반 같은 사상도 사상이지만 자신의 사상을 끊임없이 현실 사회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던 이가 바로 홍대용이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한 번쯤 봐 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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