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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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부양의 비술(祕術)

   저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한 학기 동안 중부대학교 ‘발달장애융합지원 연구소’로 파견을 나갔다가, 9월에 복귀했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복귀 후, 한참 동안 아이들이나 여러 환경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20년 가까이 매일 드나들던 학교가 낯섦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난 6개월간 나도 모르게 ‘공중부양’이라는 비술(祕術)을 체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공중부양’을 굳이 비술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누구나 새로운 곳에 서게 되었을 때 느끼는 낯섦이 ‘공중부양’의 한 종류일 테니 말입니다. 보통 우리가 어떤 새로운 장(場)을 마주할 때 그 시작점은 낯섦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의 시작점에서 마주했던 낯섦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익숙함 속에 녹아 사라집니다. 어느 장에서 느꼈던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그 장에 들어선 사람이 객체에서 주체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장과 ‘나’의 삶이 서로 물들어가면서 ‘나’는 그 장의 주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장에 설 때마다 알게 모르게 공중부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개인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공중부양의 특징은 어떤 장(장소, 시간, 사람 등 물리적인 장과 관계, 문화, 정치 등 정서적인 장 모두)에서 최대한 ‘나’의 발을 뺀 후 그 장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중부양이 단순하게 ‘나’가 속한 장으로부터 최대한 뜸으로써 그 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중부양의 진수는 ‘뜸’과 ‘가라앉음’을 반복하면서 적절하게 ‘걸침’에 있습니다. 가라앉음 없이 완전히 ‘나’의 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공중부양이 아니라 이탈입니다. 예술적인 공중부양은 ‘나’가 장에서 적당히 뜸으로써 그 장을 조망할 수 있는 상태가 된 후, 다시 그 장으로 내려앉아 살짝 걸쳐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나’의 눈이 그 장을 조망함과 동시에 그 장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공중부양의 진수는 나타납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그(그녀)와 서로 가까이 있어 이어지고 닮아 물들되, 완전히 그(그녀)가 되지 않는 그런 상태입니다.

   어쨌거나, 6개월간의 공백을 뒤로하고 맞이한 낯섦 속 공중부양은 한 가지 질문을 제게 던져줬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도움은 배가된 것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 과연 아이들은 그에 비례하여 성숙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야누쉬 코르착’이 던졌던,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하는 질문과 연결되었습니다.

  장애, 인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저는 1992년에 전남 함평의 한 특수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함평은 대표적인 농촌이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예전에 농촌에는 농사일이 바쁜 봄과 가을에 ‘농번기 방학’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특수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가 근무하던 특수학교에서도 봄과 가을 농번기 방학을 했습니다. 물론, 바쁜 농사일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경우 학교에 보내도 된다는 안내도 있었습니다.

   요즘의 관점으로 보면, 농번기 때 오히려 발달장애(“정상”이라고 정의된 사람들이 디자인한 사회에서 탄생한 “발달장애”지만, 이 용어를 쓰지 않고는 현재 사회에서 이들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발달장애”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아이들이 바쁜 농사일에 방해가 되어 대다수 학생을 학교에 보낼 것 같지만, 실제는 아주 달랐습니다. 가정에서 돌볼 수 없어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열 손가락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대다수 학생들은 농번기 방학 동안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기계화가 덜 이루어진 당시 상황은 모내기하거나 수확할 때 정말 많은 손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가정에서 발달장애 학생까지 돌봐야 한다면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왜 아이들을 농번기 방학 때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일까요? 학교에 보내도 되는데 말입니다.

   ‘그냥, 방학이라고 하니까 보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아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93년 가을에 서울의 특수학교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특수학교에 올라와 학생들을 하교시킬 때의 일입니다. 보통 시골의 특수학교 학생들 대다수는 하교할 때 아주 중증 학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이 스스로 신발을 신으려 애를 씁니다. 그런데 서울의 특수학교 학생들을 하교시킬 때 보니, 운동능력이나 생각의 정도가 대체로 시골 특수학교의 학생과 비슷한 정도인데도 스스로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고 그저 발만 쭉 내밀고 서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는, 그냥 신발장 앞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시골 특수학교의 농번기 방학 때 가졌던 의아함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골 특수학교 학생들은 농번기 방학 때 가정에서 최소한 자신의 역할(그것이 강아지를 돌보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집을 보는 등의 아주 낮은 수준의 것이라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81년 이전까지도 시골 마을에는 ‘바보’라 불리는 사람이 한 명씩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한 명이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여러 친구와 함께 사소한 일로 그를 골탕 먹이거나 놀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이라면 아마 온갖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SNS 속 비난 댓글에 시달리거나 심하면 경찰 조사를 받게 될 이야기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들이 그를 골탕 먹이고 놀리기는 했지만 어떤 역할 속에서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놀 때도 잦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학교에도 다녔습니다. 당시 아주 중증 장애인의 경우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기도 했지만, 그나마 사회에 드러났던 경증 발달장애인인 ‘바보’라 불렀던 이들은 아이들의 사회에서 ‘바보’라서 배제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놀이, 공부 등 아이들의 여러 활동의 장에서 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존재였습니다. 비록 지적 능력이 ‘일반적’이지 못해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어린아이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더라도 말입니다.

“모자란 사람”, 또는 “바보”

   농촌이 아직 ‘공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던 예전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런 호칭은 인권 감수성이 민감해진 요즘 시대에 매우 거칠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농촌공동체에 남아있던 “모자란 사람”이라는 인식은 “장애”보다 “사람(人)”에 더 방점을 두는 존재였습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농업 위주의 공동체 내에서 그 ‘장애’의 강도는 약하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인권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장애인권”을 외치고 있는 현대사회의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장애”에 찍힌 방점이 크지 “사람”에 찍힌 방점은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장애”를 정의하고, 그 정의에 따라 세세하게 장애인을 분류하지만 정작 정의하고 분류할수록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무슨 장애, 무슨 증후군만 남게 됩니다. “장애”라는 장(場)이 펼쳐짐으로써 그에 합당한 편(偏)과 역할을 주고, 그에 맞는 서비스가 결정되면서 주체적이어야 할 사람을 “장애”라는 특정한 장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많은 사람이 40년 전 사람보다 ‘장애를 느끼는 사람’에게 좀 더 친절하고, 배려하려 노력하기는 하지만 이는 “장애”라는 특정한 장(場) 속의 삶으로 한정됩니다.

  디자인된 장애

   푸코(Michel Foucault)의 1961년 작 “광기의 역사”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광인이 우리가 정의한 ‘정상인’들 사회로부터 어떻게 철저히 분리됐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책에 의하면, 16세기 이전,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엔 광인에 대하여 잘 몰랐기에 ‘광기’는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의 ‘한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심지어 ‘광인’은 신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존재로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미쳤지만 여전히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세를 거쳐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오히려 광인은 격리와 수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광기’는 제거되거나 고쳐져야 할 질병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사람들이 잘 몰랐을 때, 광기는 단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속 ‘사람’의 한색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될수록 치료와 배려, 그리고 여러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오히려 광인을 격리와 수용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광인은 ‘건강한 사회’에서 배제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푸코의 견해로 보면 우리 머릿속 ‘건강한 사회’는 대다수 사람이 이성으로 합의한 ‘정상인’을 상정해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씩 배제해나감으로써 만들어진 사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와 규범,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이성의 인간과 광기의 인간은 있을지 몰라도 원래부터 ‘정상인’과 ‘비정상인’은 없습니다.

   “광기의 역사”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제 삶과 함께 살아온 ‘발달장애’라 불리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사회 속에서 ‘장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광기의 역사 속 그들처럼 ‘건강한 사회’로부터 더 많은 배려와 지원, 치료를 받지만 그럴수록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중증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이 그렇듯이 ‘장애’도 대다수 ‘정상’이라고 합의된 사람들이 디자인한 사회의 경계를 벗어났을 때만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장애는 정상적이라는 사회로 들어오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무엇이 됩니다. 왼손잡이가 그렇고, 성적 소수자, 노숙인 등이 그렇고, 특정 시대나 장소에서는 피부색조차 그랬습니다. 장애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는 다수의 이성으로 합의된 “정상인의 사회”가 정의될 때, 이 정상적인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또는 치료되어야 할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람과 사람의 활동, 그리고 그 부산물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돈으로 가치가 매겨집니다.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활동, 그리고 그 부산물로 만들어진 상품을 사고팔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사고파는 주체들조차 돈으로부터 가치가 매겨져 사람도 객체화됩니다. 돈이 주도권을 쥔 사회인 것입니다. 돈이 주체인 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제발전과 개발의 사회로 접어드는데, 이때 경제발전과 개발을 방해하는 것들은 극복의 대상이 됩니다. 경제발전과 개발을 가로막는 것들을 평가하고 분석하여 하나씩 극복해 가면서 경제는 성장합니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고안된 테일러리즘(Taylorism), 포디즘(Fordism) 등도 모두 경제발전과 개발을 방해하는 것들을 극복하려는 방법들입니다. 그리고 경제발전과 개발의 관점이 사람에게 적용될 때 “사람”도 가치가 매겨지고,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이에 따라 발전을 가로막는 사람, 극복해야 할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이 선별, 탄생합니다.

   “발달장애”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달장애인은 생리적, 구조적 제한으로 의사소통의 제한을 받음으로 외부세계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생리적 제한은 신체적, 정신적, 감각적 다름이 가져오는 개인의 주관적 현상이지만, 구조적 제한은 그 주관적 현상을 “정상”이라는 디자인의 틀로 재단함으로써 나타나는 대중적(또는 객관적) 현상입니다. 그리고 현시대에서 이 재단의 기준은 “취업을 하고, 돈을 버는 등 최소한의 경제활동에 이바지해야 ‘정상’”이라고 합의된 대다수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발달장애”는 발달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본래 지닌 속성이 아니라, 대다수 ‘정상’이라고 합의된 사람들에 의해 디자인된 것입니다.

  자람이 억제되도록 디자인된 사회

   앞에서 25년 전에 보고 느꼈던 시골과 서울의 발달장애 학생들을 이야기했습니다. 1992년과 비교해보면 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는 법적·제도적 서비스나, 사람들 문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도움과 배려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움과 배려는 사람 사이의 “동등한 관계”라기보다 “일방적 호의”로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다수 ‘정상’이라고 합의된 사람들이 디자인한 사회 속에서 상정한 ‘비정상’』에 대한 도움과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아니 4~5년 전과 비교해봐도 선생님이나 부모, 또는 주위의 친구들을 때리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학생이 식당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공익보조원의 눈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공익보조원의 안경이 떨어졌고, 담당 선생님은 무척 당황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맞았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아픔보다 수치심입니다. 공익보조원도 어떤 이의 소중한 아들일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그 학생의 학급에 잠시 들렀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이 밥을 꼭 챙겨 먹여야 한다고 했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담당 선생님이 우유에 콘후레이크를 말아 먹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서 교실에 올라왔는데, 식당의 밥보다 더 달콤한 음식을 그 아이는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반복은 소위 아이들의 폭력을 점점 더 완고하게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유(알 수 없다고는 하나,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로 주변 사람들을 때리는 학생이 한 반에 거의 한 두 명씩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기껏해야 한 과정에 한두 명 있던 남을 때리는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진 것일까요?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특정 나잇대 아이들의 신체적 생리적 현상은 변화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디자인된 환경이 20여 년 전과 비교하여 많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 사회는 유아부터 노인까지 삶의 거의 모든 것이 평가되고, 그 평가로 경제적 삶이 결정되는 ‘경쟁의 정글’로 변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직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무한경쟁에 뛰어듭니다. 이 사회가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이없고 불공평하며 자존심 상하는 곳인지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이고 비극적인 경쟁의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 사회를 보편적 정의가 살아있는 곳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기보다 불공평과, 특혜 그리고 특권을 가진 자들을 동경하고 "스스로"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으로 디자인된 사회입니다. 이렇게 경쟁으로 디자인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이 똑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는 아이들을 빨리 성숙하기 바라고 이는 우리 아이들을 발묘조장(拔苗助長)으로 내몹니다.

   또한, 우리 발달장애 아이들은 크면서 많은 행동이 허용되도록 디자인된 과잉보호의 사회 속에 있습니다. 이 또한 근본은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있습니다. 소위 "일반적이고 건강한 사회" 속에서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들 것이란 것을 주위 어른들(부모나 선생님 등과 그 아이들 둘러싼 여러 어른)은 불공정과 불평등, 특혜와 특권이 넘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잘 압니다. 따라서 커가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늘 "아이"로 있기를, 더는 자라지 못하도록 억누릅니다. 그래야 더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잠재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덩치는 큰데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사회로서의 학교"를 국가나 가정은 요구하게 됩니다. 누구를 때려도 칭찬, 규칙을 어겨도 칭찬, 식판을 엎어도 칭찬, 잘해도 간식, 잘못해도 간식……

‘발달장애라잖아…… 정신적으로 어린아이잖아……

이 아이들이 원래 그렇잖아……‘

   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된 사회는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가 어리던, 많던, 사람은 평생 성숙한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하고 무책임한 이들의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많은 어른은 아이들을 경쟁하듯 도와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들의 자존감과 주체성은 떨어지기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묘조장(拔苗助長)과 경쟁적 과잉보호로 점철된 이런 (학교)사회가 가는 길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들이 걸었던 길과 같은 친절한 배제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일상 사회로부터의 "친절한 격리"가 아닐까 염려됩니다. 무분별한 칭찬과 간식, "원래 그런 아이"에게 베푸는 친절한 격리 등으로 디자인된 (학교)사회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은 낮게 휘기만 할 뿐, 결코 하늘을 향해 똑바로 성숙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발달장애”를 더욱 견고하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방법

   사람은 누구나 이미 디자인된 사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고, 알게 모르게 자신도 그 디자인된 사회를 디자인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의 역사는 이미 디자인된 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좀 더 유익한 곳으로, 좀 더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 속에서 비로소 사람이 되며, ‘나’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반드시 ‘타자’와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통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원동력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가족 간의 사랑, 종교적 사랑, 본능적 사랑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 정의하면 “사랑은 내 곁에 『‘또 다른 나’와 ‘그’』를 위한 빈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특정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음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 다른 나’와 ‘타자’』를 위해 ‘나’의 옆자리를 비워둬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또 다른 나’ 그리고 ‘타자’를 받아들여 함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앞의 첫 질문처럼 우리는 어떻게 (발달장애) 아이들을 사랑해야 할까요? 사랑의 방법은 지구 위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과 관계만큼이나 다양하기에 구체적인 방법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옆자리를 비워두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공중부양의 비법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야뉘쉬 코르착은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동명의 저서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인 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나의 아이”라고 말한다.
…… (중략) ……
“내 아이.” 아니다. 임신한 몇 달 동안도 내 아이가 아니다. 출산의 몇 시간 동안에도 그 아이는 당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발달장애) 아이를 『‘내 아이’가 아닌 ‘타자’』로 만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사람일 수 없고 반드시 타자와 관계 속에서 사람이 됩니다. 아이를 ‘나’와 분리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분리되지 않은 ‘나’는 공중부양으로 치면 완전히 “그”에게 내려앉음으로써 나와 그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와 같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관계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내 아이’가 아닌 ‘타자’로 만날 때 비로소 관계는 시작됩니다.

   아이를 위해 비워둔 ‘나’의 옆자리는 아이를 타자로 만나며 서로 가까이 있어 이어지고 닮아 물들되, 완전히 그 아이가 되지 않을 때 생성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 속으로 다가가되 결코 아이의 틀 속으로 내려앉아 갇히지 않고, 아이의 틀을 벗어나되 완전히 이탈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 아이가 가진 삶의 틀을 넓혀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아이들과 ‘나’ 사이의 공중부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무분별한 칭찬과 간식, 무절제하고 외적인 친절로 디자인된 "원래 그런 아이"가 서로 자신의 옆자리를 내 줄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디자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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