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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람 - 2015 과학교사 학술시찰을 다녀와서

posted Aug 15, 2015 Views 133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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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2월에 작성한 것입니다. 어제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책으로 나왔기에 오늘에야 공개합니다.^^

여행과 사람

                                                                             - 2015 과학교사 학술시찰을 다녀와서
여행

   ‘201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자의 한 명으로 선정되어 두산 연강재단에서 후원하는 학술시찰을 떠나기 전날 밤, 일본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과 일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등을 상상하며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렘인가 봅니다. 여행은 여행지의 볼거리와 먹거리 등으로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게다가 여행길에 만날 저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설레었습니다.

   사람이 타인을 판단할 때, 타인의 고유한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성품 등을 기준으로 ‘그’를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이 타인을 판단할 때의 기준은 ‘그’가 아니라 ‘나’입니다. 나의 눈과 귀, 그리고 내 손의 촉감으로 그를 이해하여 내가 가진 틀 안에 집어넣은 후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지요. 가족들이 보는 그, 직장 동료들이 보는 그,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이 보는 그 등, 한 사람을 두고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관계라 해도 ‘나’는 ‘그’가 될 수 없으며, ‘그’를 알거나 ‘그’의 마음에 근접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를 안다.’는 것은 그와 관계하며 그가 가진 삶의 그림자를 느낌으로써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이 사람 속에서 관계하며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진 환상과 그가 가진 실제(현실)가 마주보고 내달리는(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여행은 자신이 우물 밖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과 우물 밖 사람이 지닌 실제가 만들어내는 평행선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가는 여정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멀리서 본 사람들

   ‘두산’은 대기업입니다. 시찰 첫 날 두산 중공업, 두산 엔진 등 두산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기 전까지 두산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환상은 그저 대기업 회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산 연강재단과 두산 중공업, 두산 엔진 등에서 직접 만난 두산의 사람들은 이웃사람이었습니다.
   두산 DST에서 화장실을 찾기 위해 어떤 건물에 들어섰을 때 노동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화장실의 위치를 물었는데, 친절히 알려주고 곧 당신의 일에 집중하더군요. 화장실을 나오면서 다시 살짝 보니 여전히 당신의 일에 열중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꿈에 무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산 연강재단의 박용현 이사장님과 젊은 직원들, 두산그룹 여러 임직원들의 오고가는 대화나 눈빛 등을 보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위트,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 직원들이 농담을 하고 이사장님이나 임원 분들이 그 농담을 웃으며 경쾌하게 받아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제 우물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쇠를 두드리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나 펜을 잡고 일하는 사람이나 모두 꿈을 좇아 일을 합니다. 사람이 아름답게 보일 때가 많겠지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꿈을 위해 일할 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웃사람들도 자세히, 그리고 오래보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두산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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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


   “우리나라에 대입시험이 있지요? 일본은 요즘 대입시험을 보는데 그때도 대입 시험공부가 한참일 때였어요. 그날 한 여고생이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일찍 등교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지진이 일어난 거예요…….”
   비가 오락가락하던 학술시찰 셋 째날, 피로감에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자 그 여학생이 놀라서 발가벗은 채 거실로 뛰쳐나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뭐라도 걸치고 나오라고 해서 다시 욕실로 들어갔는데……. 지진이란 게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그게 그 여학생의 마지막이었다는군요.”
   고베의 ‘사람과 미래 방재 센터’를 다녀오면서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의 일화를 가이드 김성미씨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몹쓸……. '

   사람과 미래 방재 센터’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모습에 울컥했는데 거짓말 같은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니 또 다시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가까이서 보면 우리의 이웃 같이 순박한 모습인데 왜 침략전쟁을 일으켰을까? 저 사람들은 왜 개인에게 정해진 밥만 먹을까? 일본 사람들의 철저함과 섬세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왜 일본 사람들은…….’
   가이드의 고배 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유추해 봤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대자연 앞에 서면 여전히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큰 지진의 공포와 그로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요? 작은 지진이나 해일 등은 삶을 늘 불안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게다가 일본은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없는 섬나라. 삶의 범위가 정해진 우물 안에서 서로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규칙과 배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스스로의 욕망에 대한 통제가 없다면 삶의 범위가 뻔한 우물 속은 아비규환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한정된 곳에서 자연의 힘 앞에 흔들렸던 일본인들에게 ‘타인’은 그 실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환상으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타인의 실제와 환상이 가진 일정한 거리에 대한 견고한 공통의 인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의 문화로 자리 잡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성원이 가진 공통의 인식(문화 현상)이 견고할 때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삶을 예측하기 쉽습니다. 반면 이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못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이들의 삶은 예측하기 어려운 안개 속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으니 말과 생각, 생김새나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이나 수많은 신사에서 가족과 자신의 꿈을 염원하는 모습, 사찰의 ‘말을 헌납하며 소원을 빌던 곳(絵馬掛け所)’에서 자식을 위해 비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희노애비喜怒哀悲의 곡선을 바쁘게 그리며 삶을 살아가는 같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의 사람들이 과거는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현재를 좀 더 오래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본다면 미래엔 좀 더 예쁜 꽃을 피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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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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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일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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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에서 염원하는 일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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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일본 사람>


   조금 가까이서 본 사람들

   일주일의 만남과 소통의 시간은 서로를 알기에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일주일의 시간으로는 단지 그의 외모나 말투 등으로만 상대를 파악할 수박에 없기에 그에 대한 나의 환상과 그가 가진 실체가 그리는 평행선의 간격은 너무나도 멀 수박에 없습니다. 두 선들이 이제 막 시야에 나타날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시작은 늘 그렇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두산 연강재단의 황선홍 대리님입니다. 실은 여행 전에 제 개인 사정으로 인해 비행기 표를 두 번이나 변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행 성수기에 출발을 1주일 정도 앞두고 많이 힘든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여행 전에도 이런 고생을 시키더니 여행을 마치면서는 짐을 호텔에 두고 나오는 바람에 저는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황선홍 대리님을 번거롭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는데, 늘 편안하게 처리를 해 주어 감사했습니다.
   조금은 피곤한 여행길에서 책을 읽는 분을 봤습니다. 백형범 상무님이었습니다. 저도 이번 여행길에 정호승 시인의 시집 한 권과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라는 구조주의 관련 책을 챙겼었습니다. 여행 중에 읽어 볼 요량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다보니 자연히 책은 그냥 기억 저편으로 밀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책을 읽는 분을 발견하다니!
   매일 도톤보리 근처의 선술집 등에서 오사카의 도시풍경을 구경하면서 늦게까지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자리에 고맙게도 백 상무님이 늘 함께하여 주었습니다. 자연히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게 되었는데 기업의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업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더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해박한 말씀을 많이 하시기에 단순히 ‘흠, 대단하군.’했는데, 귀국 후 밴드에서도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소개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진정 책과 가까이 지내시는 분이구나.’ 라고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이 잘나지 못해 늘 꽃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드디어 꽃과 가까워졌습니다. 1조 선생님들로부터 F4(꽃보다 남자의 F4로 이해했습니다.^^)의 일원으로 인정받았으니 말입니다.  F4라 불렸던 선생님들은 백승훈 선생님, 이장훈 선생님, 저, 그리고 같은 방 식구였던 임창균 선생님이었습니다.(당시엔 ‘F4’라는 말이 재미있게 입에 붙더니 이젠 현실에 더 가까워졌는지 매우 쑥스럽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마음이 가까웠던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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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선생님들-오른쪽부터 임창균 선생님, 이장훈 선생님, 백승훈 선생님, 그리고 나>


   코를 심하게 골아서 짐짓 미안했는데 ‘전 금방 잠들어요.’라며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의 손사래를 쳤던 같은 방 식구 임창균 선생님은 참 다정했습니다. 귀국 후 주위 여러 선생님들에게 줄 선물까지 챙기는 모습이나 아침 식사시간이면 늘 주변의 선생님들을 챙겨주시는 모습은 평소의 배려심이 짙게 묻어 있는 듯 했습니다.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백승훈 선생님. 여러 상황에 해박하고 장난끼와 정으로 뭉친 사내였습니다. 장난끼와는 대조적으로 물건을 고를 때의 신중함과 집중력이 뛰어나 ‘일을 할 때도 저렇게 신명나면서도 신중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묵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살짝만 보여주신 이장훈 선생님. 여행 후 웹하드에 올라온 이장훈 선생님의 사진을 봤더니 렌즈의 방향이 제 눈의 방향과 비슷하여 새삼 놀랐습니다. 이장훈 선생님은 파주여고에 근무하셔서 제가 근무하는 한국경진학교와 가깝습니다. 언제 뜬금없이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F4에 끼지 못했지만 시크하면서도 낭만을 간직해 보이는 박기현 선생님, 조장으로 고생이 많았던 변태진 선생님, 친절하고 셀카봉이 부러웠던 김병주 선생님, 버스 옆자리에서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환상과 실제가 가진 평행선의 간격을 조금 좁혔던 이선희 선생님, 그리고 대학시절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을 늦게야 알고 반가웠던 박성은 선생님. 종종 여행에서 함께했던 그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미하 선생님, 김미순 선생님, 박혜림 선생님은 여행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였으니 말도 섞으며 마음도 공유할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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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선생님들과 박용현 이사장님, 백형범 상무님>


여행의 맛

   여행은 타인에 대한 자신의 환상과 타인의 실제가 만들어내는 평행선의 거리를 좁혀가는 여정입니다. 그 속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고, 서로의 삶과 욕망을 살짝살짝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서로의 꿈을 나누게 됩니다.
   제게도 이번 여행은 그랬습니다. 좋은 선생님들, 두산의 사람들과 만나 일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봤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가진 꿈을 살짝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제 삶이 더욱 풍부하게 된 것입니다.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이런 만남들이 여행의 맛이 아닐까요?
   문득 문을 열고 나서면 또다시 여행길로 나서고 싶은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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