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02.11.06 19:00

차를 긁어서 죄송합니다...

(*.179.72.206) 조회 수 4776 추천 수 46 댓글 0
제 글을 읽으시다보면
'저 사람은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도구로 알고, 약한 자라도 밟고 일어서 출세하려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참 드믄 것이 현실이니까요.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희극적으로 그려지는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잃고 살아가며, 어느 경우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조차도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물론, 또다른 많은 분들은 우리 문화를 좀더 인간답게 가꾸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 문화의 주된 흐름이 그렇다는 이야기죠...)

오늘은 간만에 흔히 보았으면 좋을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볼까합니다.

며칠 전 오후 처가 학교로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규우 택견 수련장에 왔다가 서 있던 차의 범퍼를 긁었어.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해..."
아직 초보인지라 전화 속에 들리는 음성은 몹시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어떻하긴 어떻게 해. 주위에 운전자 찾아보고, 사람이 없으면 전화번호 적어 놓고 집에 가"

제 차도 다른 사람들이 주차하다가 긁어놓은 자국이 아주 많습니다. 앞, 뒤, 옆....
몇 번 제 차를 받는 사람을 보기는 했지만 차를 보면, 보기엔 좋지 않아도 차를 운행하는데 큰 문제가 없고, 조금씩 긁어 놓은 것을 문짝 통채로 바꿔 달라고 하기엔 너무 도둑놈심보인 것 같아 그냥 가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차를 긁어놓고도 그냥 가지요...
주차장에서 누군가 차를 심하게 긁어 놓고 그냥 가버리면 속이 상합니다. 남의 차를 긁어놓고 그냥 가다니......

퇴근 후 집에 가 보았더니 제 처가 경황이 없긴 없었나봅니다. 어떤 차를 받아 긁어놓았는지도 모르더군요.(차종이나, 번호 등)
다행히 그 차에 연락처가 있어 연락은 했답니다.
"범퍼를 긁기는 했지만 심한 것은 아닌데, 혹시 범퍼 다 갈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왜 지난번에도 그랬쟎아..."
그쪽에서 8시경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며 처는 걱정을 했습니다.

3년 전, 제가 초보일 때 한 번은 학원차량의 범퍼를 긁은 적이 있습니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조금의 흠집이 났고, 흔들어 보았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그 운전자는 5만원을 요구하더군요. 어찌되었거나 제가 잘못했기에 돈을 주고 왔지만 기분은 영 좋지가 않더군요.

제 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8시경, 처가 긁은 차의 차주가 전화를 했더군요.
"제 차를 긁으셨다구요, 메모를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처가 택견 수련장에 갔다가...... 제 처가 초보인지라 댁의 차량을 긁었다고 하기에 연락처를 남기고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제 차도 많이 긁기고 했는데, 사람들이 차를 긁고 그냥 가버리니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보통 운전자들이 남의 차를 긁어도 상대 차의 운전자가 없으면 그냥 가버리는데, 전, 그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지라..."
"글쎄요, 차 범퍼가 흔들리거든요. 이걸 어쩌나....... 연락처까지 남겨주셨는데....."
범퍼가 흔들린다는 말에
'범퍼값을 주어야 할까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했으니 그쪽에서 요구하는대로 해야겠지요...."
그쪽에서 잠시 이야기가 없더니
"그냥 없는 것으로 합시다. 일부러 연락처까지 남겨주셨는데..  저도 실은 누가 제 차 긁고 그냥 가면 기분 나쁘거든요. 대부분 사람들이 남의 차 받고 그 차에 사람 없으면 그냥 가고, 사람 있어도 자기가 잘했다고 소리 지르고..."
"고맙습니다. 언제 아들 택견 수련장에 갔다가 뵈면 그 앞 칼국수 집에서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네요..."

전화를 끝내고 나니 기분이 참 좋더군요.

사람 사는 것이 이래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구요.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0-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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