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247.18.66) 조회 수 7120 추천 수 0 댓글 3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bara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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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olleh 2010.04.29 22:10 (*.7.39.211)

    시가 지금 제 마음에 와닿아 몇번이고 되읽었습니다. 이 우울에서 이제 벗어나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 profile
    영구만세 2010.05.01 10:21 (*.247.18.66)

    좀 더 멀리에서 자신을 보면 좀 덜 우울한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글이란게 쓴 사람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이미 쓴 사람의 글이 아니게 됩니다.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죠.

    잘 쓴 글이란 쓴 사람의 의도와 읽는 사람의 의도 관계에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둘 사이의 공통분모가 많아져 일치에 가까운 글일수록 좋은 글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는 그 의도 에서 읽는 사람마다 다른 의도(감정, 감동)를 전달한다고 해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요.(예외지요.) 고정희의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는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수백가지의 감정을 가지게 하는 좋은 시입니다. 제게도 말입니다......

  • ?
    하늘호수 2010.07.21 23:00 (*.120.223.7)

    시를 읽으니 어느 한켠에 사라졌던  감성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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