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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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다 보면 여러 사람과 약속할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은 그 약속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스탠리 밀그램이 쓴 “권위에 대한 복종(2009. 에코리브르)”에 따르면, 사람은 약속을 깨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속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의 발전 속에서 약속을 지켜지기 위한 다양한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크게는 UN의 여러 협정이나 국가 간의 조약, 회사와 회사 사이의 계약부터 작게는 개인과 집단, 개인과 개인과의 다양한 계약까지 정말 많은 형식의 약속이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회사와 회사, 개인과 영리 목적의 단체(회사 등), 개인과 개인 등의 관계에서 약속은 일정한 형식(이를테면,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고 서로를 강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약속(계약)을 파기하면 파기한 쪽에서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발생합니다.

   일정한 계약의 형식이 없는 약속도 있습니다. 가족, 형제, 친구 등 일상생활에서 늘 만나는 사람과의 약속인데요, 이들과의 약속은 대부분 말로 이루어지고 강제성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연인의 약속, 한 턱 낸다는 친구의 약속, 공부 열심히 한다던 아들의 약속, 잔소리 안 한다는 어머니의 약속......

   저도 살면서 일상생활 속의 가까운 사람들과 약속을 하지만 다 지키지는 못하며 살아갑니다. 밥 한 끼 먹자는 고등학교 친구와의 약속은 벌써 7년째 지켜지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 여행 한 번 시켜드린다는 것도 오래 미뤄진 숙제고, 좋은 선물 해 준다는 아내와의 약속은 마음속에 담긴 채 수년째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중하게 약속하고,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려는 대상이 따로 있는데요, 바로 우리 아이들입니다. 사실 심한 장애를 느끼는 아이들은 복잡한 상징체계인 언어를 이해하는 게 많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혹, 상징체계로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만약, 걷기 싫어서 주저앉은 아이에게 “과자 줄게, 일어나자.”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걸으면 반드시 과자를 줍니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엔 과자를 주지 않습니다.

   여기, 버스 타기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버스에 태우려면 실랑이해야 하니, 교실에서 현관까지라도 편하게 가기 위해 예를 들어, “자, 지금 버스 타러 가는 게 아니고, 맛있는 과자 먹으러 나가는 거야.”라고 하면 안됩니다. 아이는 “먹는다”는 생각으로 이동했는데, 막상 “버스 타는 행위”가 발생하면 무척 화가 나겠지요. 그러면 아이는 “버스 타기”의 상황을 점점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현관 쪽으로 갈 때마다 버스를 떠올리며 강하게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현관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매번 실랑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심한 장애를 느끼는 아이들은 상징(symbol)으로서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1대1 대응관계(sign)는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장애가 심하여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비록 복잡한 상징체계는 아닌 단순한 1대1 대응관계일지라도 그것이 나름대로 체계를 이룬다면 아이는 타자와 관계를 긍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A는 B다.”와 같은 1대1 대응(예를 들면, “버스”라는 소리와 “버스 타는 행위”의 관계)은 아무리 장애를 심하게 느끼는 아이일지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잠시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지키지 못할 약속’이나 ‘안 해도 될 약속’은 1대1 대응관계마저 구축할 수 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도 부정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잘못된 약속은 아이의 성숙을 가로막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사람의 약속이 먹이를 구하러 떠난 후 시기에 맞춰 돌아오는 암컷 황제펭귄처럼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약속은 반드시 이성(계산)을 기반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약속은 단순히 약속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약속은 관계의 질을 결정하고 관계 속에서 사람됨을 쌓아가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주말입니다. 사람만이 가진 약속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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