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주 안내문_스스로 이동하기

by 영구만세 posted Jun 19,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출근 후 8시 45분 정도가 되면 선생님들과 실무사, 공익보조원 등이 학교 버스 앞으로 모여듭니다. 8시 50분. 1호 차의 신호와 함께 버스 문이 열리면 마치 파도처럼 이 분들이 버스 문 앞으로 모여들어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한명 한명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갑니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의 아침 등교 풍경입니다. 이런 풍경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특수학교에서 이와 유사한 풍경의 아침이 펼쳐질 것입니다.
   어떤가요? 많은 분은 이 모습을 보면서 장애 학생들이 선생님들로부터 받는 배려와 친절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또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워 버리는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땀 흘리는 선생님을 보면서 ‘희생’ 뭐 이런 걸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침 등교 풍경을 보면서 다른 것보다 ‘사람의 자주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이 이동할 때 보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동하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이동이 불편해서 신체적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동적으로 보호자의 손을 잡습니다. 보호자도 아이들의 거의 자동적으로 손을 잡고 이동하기도 합니다.
   손을 잡고(또는 잡혀) 이동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뛰어가서 다칠까봐, 아이가 길을 잃을까봐, 아이가 누군가를 건들어서, 아이가 누군가의 음식을 뺏어 먹어서...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데 어른의 판단만으로 손을 잡고 이동하는 이 모든 경우의 결과는 학생 자주성의 심한 훼손입니다. 혼자 이동할 수 있는데도 일상적으로 타의에 이끌리게 되면 아이의 의존성이 커지고 자주성은 점점 축소될 것입니다. 학생 하나하나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히 타인을 해하지 않거나 안전사고 등의 위험이 없다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급의 한 해 최종 목표는 ‘스스로 이동하기’입니다. 이런 목표 때문에 우리 학급에서는 아이들이 등교 버스에서 내려서 교실로 이동할 때, 하교 버스로 이동할 때, 각 교과 교실이나 식당으로 이동할 때 손을 잡고 이동하는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다만 좀 거리를 두고 봅니다. 스스로 방향을 잘 잡는지만 관찰하고, 만약 스스로 방향을 못 잡으면 그때 도움을 줍니다.
   가정에서도 학생들이 이동할 때 혼자 이동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의존성보다 자주성이 조금이라도 더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미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학생들은 이동의 목표와 이동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주세요.
   장마가 오려는지 일기 변화가 좀 많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