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사는담(談)
2021.05.25 21:51

노동자 대학생과 의대생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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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 작업하던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대학생 이선호씨가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이선호씨의 죽음으로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이지 마라'는 여론이 좀 더 모아지고, 노동자가 목숨걸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야 하는데, 포털에서 이선호 씨의 사고와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뉴스들은 뜸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21년 4월 14일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도 산재사고 사망자는 882명이었습니다. 하루에 2.4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을 뺀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죽음을 멈추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이 누더기로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조치 부실로 노동자가 숨질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벌금의 하한선이 없습니다. 백만원, 십만원의 처벌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처벌대상이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이기에, 대표의 책임 전가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뿐만아니라 이조차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 법의 적용이 제외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80% 이상인데 말입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전체 사업장의 99%인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동안 적용이 유예된다는 것입니다. 관련 공무원 처벌 조항도, 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모두 빠졌습니다.

 

  21대 국회에서 180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어 줬는데도여전히 노동자들을 하루에 2.4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힘 써야 할 곳에서는 머뭇거리고, 기웃거리고, 분열됩니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법률은 누더기로 만들거나 만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유-공화-정의….힘’ 사람들이 노동자의 편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보고 바늘 귀로 들어가라는 것처럼 불가능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 180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은 대책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20대 국회에서는 노동자의 죽음이 있는 곳에 깃발이라도 휘날리면 함께하던 정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21대 국회에서는 그런 정당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론의 농간인가요? 글쎄.. 그나마 작은 기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6명의 국회의원으로도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지만, 이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젠더와 노동, 환경 등은 한 몸인데 젠더만 보이고 노동이나 환경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하다가 죽어가는 노동자를 줄이기 위한, 안전한 노동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이야기를 매일 보는 포털 뉴스에서 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다수 기자는 스스로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는지, 노동자의 이야기를 많이 쓰지 않습니다. 정태춘이 “다시는 종로에서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92장마, 종로에서)며 울부짖듯 노래한 1992년이나 2021년 지금이나 대다수 기자는 노동자의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에 대다수 기자는 권력자의 편이었던 것 같고, 지금은 자본가의 편인 것 같습니다.

  1992년 이전엔 권력자의 편에서 지면을 채우던 이들이 2021년 지금은 자본가의 편에서 포털을 채웁니다.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알아서 여론을 몰아갑니다. 삼성 일부 대주주인 이재용에 대한 연민으로 포털을 채웁니다. 돈 되는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 충혈된 눈을 부라립니다.

 

   이선호 씨가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지 이틀 후인 4월 24일. 한강에서 의대생 대학생 손정민씨가 사망합니다.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아직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까운 인재가 갔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나오고 여전히 하루 평균 55건 이상 쏟아지고 있습니다.(손정민 '1708', 이선호 '460'이 말하는 것 미디어오늘, 5월 25일자 뉴스) 포털 뉴스만 보면 이런 여론에 힘입어 국민 대다수의 추모열기가 올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죽음에 경중이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공연히 사람에게 가치를 매기고 있습니다.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사회적 강자나 회장님, 사장님 등 연봉이나 재산이 많은 이들, 유명 연예인 등은 1등급이죠. 이들은 죄가 있어도 언론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연민의 대상으로 만듭니다.(단, 언론의 적은 제외.) 1등급에 들지 못하는 모든 노동자(특히 육체 노동자)가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등급 외입니다. 언론이 나서서 이들의 주장을 떼쓰기, 나라 망치기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결국 막강한 화력으로 쏟아붇는 기사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과 직접적인 노동환경의 열악함보다 자신과 먼 재벌가의 상속세에 애통함을 느낍니다.

 

   지난 4월. 이틀을 사이에 두고 두 젊은 대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명은 알바를 하던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한 노동자 대학생 이선호, 또 한명은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실종된 후 사망한 의대생 대학생 손정민. 이들의 죽음으로 더욱 선명히 보이는 기막힌 현실과 어이없는 광기를 함께 보면서 울분마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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