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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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놈이 개미싸움을 시킵니다.
먼 곳에서 잡아온 개미를 다른 개미집에 집어 던집니다. 병정개미들이 야단스럽게 기어 나와 침입자를 공격합니다.
아들놈은 이 장면을 보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위에 다른 곤충들이 더 있나 둘러보다가 마땅한 것이 없는지 개미집을 발로 밟으며 놉니다.
처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면 안 되지! 나중에 벌 받아요……”』

며칠 전 지성연구소의 김광선 소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왜 아이들은 곤충들이나 작은 동물들을 죽이면서 놀까?’에 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게도 저나 그 분이나 모두 어릴 적에 잔인하게 곤충 등 작은 동물들을 죽이며 놀던 추억이 있었습니다.
개미집에 물을 붇거나 개미집을 부숴 밟아 죽이며 놀던 일, 파리를 잡아 화형을 시키며 놀던 일, 개구리 똥구멍에 볏짚으로 바람을 넣어 공처럼 가지고 놀던 일……
지금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면 호로 공포물 영화에나 나옴직한 짓들이지만 어릴 적엔 너무나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라면서 인류 역사의 한 부분(아주 원시사회일 때 사람의 모습)을 지나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김소장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야뉘쉬 코르착은 그의 저서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자기 죽음에 대한 권리, 오늘 하루에 대한 권리, 그리고 원래 자기 모습대로 있을 수 있는 권리 등 아이가 가지는 세 가지의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혹은 적당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라고 준다. 우유를 너무 많이 주거나, 신선하지 않은 계란 같은 따위를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토해낸다. 우리는 아이들이 소화할 수 없는 지식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쓸데 없는 충고를 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

둘째 아들놈이 곤충을 가지고 노는 일이나 주위 어른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코르착의 말처럼 분명, 아이들이 가지는 고유한 모습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는 원래의 모습과 교육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지극히 ‘교육적’인 관점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지나가던 아이가 교사의 옆구리를 치면 ‘교육적’으로 ‘그건 나쁜 짓’이라며 머리를 쥐어박고, 아무리 지루한 교실의 공부시간일지라도 공부시간에 아이가 떠들면 ‘교육적’으로 벌을 세우며, 교내에서 이동할 때 줄을 잘 서지 않으면 ‘교육적’으로 ‘똑바로 서!’라고 엄하게 꾸짖습니다. 옆구리를 치는 아이가 관심을 끌기 위해 나름대로의 친밀감을 표시했는지, 타인에게 고통과 불쾌감을 주기 위해 그러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부시간에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눈을 보며, 그 아이가 소화할 수 없는 거대한 지식나부랭이에 깔려 고통스러워 하는지,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소리를 지르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고 아이를 대하지요. 이렇듯 행동의 결과를 보고 아이를 대하다보면 아이의 마음 내면과??참 모습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코르착의 말대로 아이들은 원래 자기 모습대로 있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로서 현재의 행복을 누릴 권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원래 자기모습’은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원래 가지는 모습을 이해하려면 아이와 대화하여야 합니다. 교사 스스로 가지고 있는 몸과 마음과 영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아이의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대화이며 이는 바른 교육의 한 모습입니다.

코르착이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원래 자기모습대로 있을 권리’는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아이의 편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주변을 봄으로써 아이의 현재 삶을 있는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와 교사의 진지한 대화는 아이의 현재 삶을 풍부하고 행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교육활동 속에서 아이가 가지는 원래 모습이 드러나도록 대화하는 것만으로는 바람직한 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은 지속적으로 자라고 있고 각 시기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는데, 아이와의 대화만 깊어져 특정 시기의 원래 모습만 강조하게 된다면 아이의 몸은 자라되 마음과 영은 그 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몸과 마음과 영이 조화롭게 자라며 전 생의 행복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건강한 긴장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긴장이 없다면 아이는 삶에 대한 방향을 잃게 되어 마음과 영의 자람이 미숙한 사람이 됩니다. 대화하는 것이 아이들의 현재를 잘 살피고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기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긴장은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고 전 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긴장 없는 대화는 아이들 몸과 마음과 영의 조화로운 삶을 방해하게 되어 전 삶에 대한 방향을 잃게 만들며, 대화 없는 긴장은 아이들 몸과 마음과 영의 피폐함을 가져옵니다.

다시 개미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아이가 개미를 발로 밟아 죽였습니다. 생명을 쉽게 죽이니 안 될 일이죠.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 주어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아이와 대화하여야 합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남 싸움이 구경거리라더니... 재미있겠네.....요렇게 작은 것들이 어떻게 걸어 다닐까?...... 다리를 뜯어보니 재미있네.....’
그런 다음 아이와 적절한 긴장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너의 재미로 인해 개미들은 생명을 잃으니 참으로 불쌍하구나, 개미가 다치지 않게 서로 사이좋게 놀 수 없겠니?”

대화와 긴장의 조화를 통한 교육이야말로 진정 아이들이 ‘원래 자기모습’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영구만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2-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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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영 2012.07.17 09:57
    2005년이라.. 저는 교사 3년차때부터 아이들의 영혼과 몸이 자라는 것을 보았어요. 방학 때마다 껑충껑충 자라기에 너무 신기했어요. 더 신기한 건.. 못 가르치고 방법도 못 찾아 놔둔 학생은 그대로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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